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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책임을 질까

지금 막 참세상에 보낸 글이다.

 

형편없다고,

참세상에서는 퇴짜를 놓을지 모르는데,

여기다가 덜렁 올려놓아도 되나...............?^.^

 

글에서도 썼지만

책임지고 내가 먼저 사퇴를 하든지

그만큼의 내용있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나도 세월이 갈수록 강승규와 똑같은 놈으로 수렴하지 않을까.

 

이미 그런가-^^

 



 

오늘도 여러 동지들을 만났다. 지난 며칠간, 만남은 어김없이 술을 동반했다. 술잔이 오갈 때마다 서글픔과 분노와 허탈함이 서로 뒤섞인 감정들이 눈물이 되기도 하고 실없는 웃음으로 새어나오기도 했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강승규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필이면 나는 술자리에 있었다. 백기완 선생께서 새로 낸 책을 거저 주는 자리였다. 백 선생께서는 책에 일일이 서명을 하셔서 오래 정들었거나 믿어왔던 동지들과 선생을 존경해온 사람들에게 직접 나눠 주셨다. 그렇게 즐겁고 기꺼운 자리가 민주노총의 참담하고 절망적인 신세를 타령하는 자리로 바뀐 것은 아주 짧은 시간으로 충분했다. 그 날, 나는 그것을 핑계삼아 퍽 많이 취했다.


처음엔 강승규에게만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강승규가 누구던가.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다. 기아자동차노조에서 노조 간부가 취업비리를 저질렀을 때 그는 진상조사단장이었다. 체포되던 당시까지 민주노총 혁신위원장이었고, 민주노총 대전본부 임원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졌다면서 지역본부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맡았었다. 혁신이란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가죽을 새롭게 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가죽을 벗기는 아픔을 감수하고라도 조직혁신 제대로 한번 해봅시다, 하고 혁신위원들 앞에서 연설하던 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언제나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세상을 살아온 듯 그는 위풍당당하게 간부나 조합원 대중들에게 훈화 수준의 말을 하곤 했다. 89년 여름 전노협 건설을 위한 몽산포 여름캠프에서 나는 그를 처음 보았는데, 밤새 모닥불 옆에 앉아, 고려운수 위원장으로서 그가 겪었던 택시노조 민주화투쟁의 지난한 역정을 우리는 감동에 겨워하면서 들었다. 그의 어떠한 말과 행동에서도 독직이나 배임수재의 혐의를 발견한 적이 없었다. 10월 5일에 그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하여 예의 당당한 모습으로 절대로 문제될 일이 없다고 호언하였는데 불과 이틀만에 그것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의 찬란한 경력과 언행만으로도 우리들의 원망과 비난과 야유는 그 근거가 충분했다.


이 사건이 강승규에 대한 성토와 단죄만으로 끝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호재를 만난 언론 매체들 덕에 1500만 노동자와 그 가족들까지 금세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 머시기가 돈 받았다고 잡혀가는 거 나오던데 당신들은 뭐 받은 거 없어? 강승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내조차 내게 핀잔을 던졌다. 한 노조 간부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돈은 받지 말라고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동지들은 식당에서, 티비 앞에 모여 민주노총 간부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뇌물받은 정치인 수준으로 매도하는 시민들을 보고는, 간담이 서늘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조합원들의 분노가 강승규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게 쏟아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 현상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읽었어야 했다. 이번 사건이 민주노총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잘못 대처하면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많은 동지들이 믿어왔고 기대왔던 삶과 운동의 근거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빼앗기는 일대 사건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했다. 대의원대회의 잇따른 파행과 단위노조의 비리사건으로 인하여 크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민주노총이 가장 믿을만한 조직이라는 것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게끔 원칙과 기풍을 분명히 세워야 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저마다의 입장과 의견의 차이를 떠나서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우리 모두가 환골탈태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했다.


지역본부에서 일하는 한 동지는 일부 언론의 추측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고 집행부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현장 간부들과의 간담회가 있어서 보란 듯이 큰소리를 쳤다. 민주노총은 이래서 다르다, 봐라, 즉각적으로 집행부가 책임지고 총사퇴를 한다고 하지 않느냐? 간담회가 끝나자마자 그 동지의 믿음과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지만, 대체로 현장의 조합원들은 상식의 선에서 그 동지의 얘기에 공감한다. 거리에 나가서 물어보라,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의 대응은 처음부터 무책임하고 안이했다. 조합원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변명부터 흘리더니, 하나씩 사실이 드러나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비리로만 규정했다. (설혹 개인의 비리라고 하더라도 그 사건 속에 담긴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부하고 그것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다만,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위원장은 스스로 직무를 정지하고 일체의 대외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집행부가 스스로 결단해야 할 총사퇴의 문제를 중앙집행위원회의 안건으로 떠넘겨 즉각적인 수습과 대처보다는 총사퇴를 둘러싼 찬반논란을 부추겼다.


새로 지명한 수석부위원장에게 밤샘회의를 맡겼던 이수호 위원장은(지난 2월 대의원대회가 파행으로 끝났을 때에도 그는 이렇게 책임을 떠넘긴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 기자회견을 통해 말한다. 비리혐의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지고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위원장으로서 도의적(!) 책임과 대중적 책임을 분명히 질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하반기 투쟁에 책임을 다하고 나서 조기 선거를 실시할 것이며, 자신은 이후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구차하고, 구구하다. 책임이란 낱말을 되풀이해서 구사하지만, 정작 책임을 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속하고 결단력있는 조치를 통해서 민주노총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앞으로 제2의 강승규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대와 요구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외면당했다.


한 조합원이 얘기한다. 1월이 되면 06년 투쟁계획을 세우기 위해, 6월이 되면 상반기 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또 내년 연말이 되면 하반기 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변명은 얼마든지 많죠. 투쟁도, 책임도, 제발 늑대소년처럼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진정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이 얘기에 이수호 위원장은 무어라고 답할까. 책임을 지겠다면서 당장에 책임질 일을 뒤로 미루고, (사실상의 사퇴선언이라고 언론은 덧칠을 했지만) 뜬금없는 불출마선언으로 혼란을 자초하는, 이 모순과 불일치를 누가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바심과 충격으로 며칠을 보내다가, 이수호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보고 더 큰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는 민주노총 상근 활동가의 사직의 변이 차라리 훨씬 알기 쉽고 내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


민주노총과 연맹 간부들의 말과 행동이 조합원들과 일반 국민들에게 강승규의 그것과 똑같이 회자되고 있을 오늘, 나를 포함해서 많은 동지들이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민주노총 집행부의 행보를 보면 흔들림없이 의연하고 당당하다. 마치 체포되기 전까지의 강승규를 보는 듯하다. 혁신에 실패한 집행부가 아직도 혁신을 되뇌고,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과 일방적인 노동관계법 개악처리 기도를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그들의 관성이 놀랍고 무섭다. 진지한 반성일지라도 관성이 되면 더 이상 뉘우침과 성찰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경악한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이지러진 모습 속에서 돌연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에게 향했던 연민과 안타까움, 분노와 실망을 지나, 나에게 드리워지고 있는 막막하고 캄캄한 느낌이 나를 압도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들은 옳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궤도를 벗어나 질주하는 저들의 독선을 어찌할 수 없다면, 나도 관성의 늪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아득한 절망감이다. 거대한 불감증과 관성의 수구적 행태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살맛나게 바꾸는데 작은 힘 보태겠다며 살아온 것이 헛소리나 개수작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뼈아픈 예감이다. 내 인생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치더라도, 나 자신부터 단호하게 백의종군의 길로 나서든가, 그에 상응하는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이 어찌, 지금 나만의 고민이겠는가. (200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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