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허송세월

잠은 아늑하고 편안하여 나를 끊임없이 유혹했지만

그만큼 잠은 멀리 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몸이 지쳐서 스스로 잠들기 전에

일부러 잠을 청하는 것은 사치라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깨어 있었던 수많은 세월동안에

내가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길가에 밟히는 낙엽 하나 줏어담지 않고

몸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정도의 노동,

마음 내키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술과 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툭툭 던져지는 참 편안한 느낌과 

때로 넘어서기 힘든 갈등, 느닷없이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술동무들의 해프닝, 그 틈새를 헤집으며

살고, 미친듯 헤매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 받고,

성패와 아랑곳없이, 후회할 새도 없이

내 인생의 시간표들은 차곡차곡 채워졌다.

 

엊저녁 회의 하나,

막차를 탈 수 없는 시간에  끝이 났고,

혼자서 사무실에서 서성거리다가 새벽길 걸어서 찜질방에 갔다.

걸으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세상에서 허송세월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요즘의 우리네 회의인 듯하다.

어디 요즘 뿐이었나, 

1월 20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시작으로 해서 

허구헌 날 이어졌던 회의회의회의, 그 중의 압권은

민주노총 중집위원회인 것 같아.

격렬한 토론은 밤새 이어지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데

끝나고 보면 언제나 원안이 턱 하니 통과되어 있는 것이야.

안건이 무엇이든 원안에만 손드는 중집위원들이 과반수이니까,

웬만하면 소수파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해 가면서

결과가 아니라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가는 회의같은 거

민주노총이 모범을 보이면 안되나?

 

출근 시간에 한 토막, 점심 시간에 한토막,

그냥 생각나는 대로 혼자 중얼거리며 이렇게 쓰고 있는데

지금 보니 민주노총이 오전에 또 한건 하셨구나.

이른바, 노조비리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이라,

강승규가 위원장을 맡았던 혁신위원회에서

탁상공론에다가 수박겉핥기로 급조했던 혁신안을

9월 23일 수안보 대의원대회에서는

각급 회의단위에서 좀더 충실하게 논의하자고 유보했는데,

강승규에 대한 책임조차 지지 못하는 집행부가

오늘도 책임책임책임, 입으로만 말로만 외치는구나.

비리근절을 위한 대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어줍잖은 혁신위원으로서 줄곧 반대토론을 했던 것이라서

점심시간을 넘겨서라도 한마디 쓰고 싶은데

그건 일정부터 챙겨보고 행하기로 하고,

오늘 아침 내게 내뱉었던 그 말을

우선 민주노총 집행부한테 보내주어야겠다.

 

-제발, 허송세월하지 맙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