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화려한 휴가

우리 복지센터 조합원들은

하루의 강습이 끝나고 나면 밤 10시가 된다.

 

그러니까 회의는 주로 밤 10시가 지나서 시작한다.

회의가 끝나면 밤 12시쯤 되니까

술 한잔 나누다 보면 금세 새벽이 온다.

 

오늘 아니 어제도 밤 10시에 회의가 있었다.

파업을 포함한 앞으로의 투쟁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였으니

교섭대표인 이모 동지와 교섭위원인 나는 당근 참석했다.

 

끝나고 나서 습관처럼 맨날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심야영화나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서는

동지들과 함께 "화려한 휴가"를 봤다.

 

어떤 동지는 눈물을 펑펑 쏟다가 나오고

어떤 동지는 영화를 본 것도 오랜만이거니와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처음 보았다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는?

 

그 때 철부지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그 후로 수없이 봤던 다큐멘타리 필름과

망월동을 장식한 흑백의 영정사진들에 길들여진 나는,

그것 때문에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꾸기도 했던 나는,

그러면서도 매 순간 눈물을 한없이 쏟았던 나는....

 

이민용 감독의 "개같은 날의 오후"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집단적으로 투신하던 여자들을 보면서

펑펑 울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찔끔찔금 몇 방울 새어나오는 눈물을 훔쳤을 뿐이다.

 

안성기, 김상경, 이요원, 송재호, 나문희, 이얼(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얼 맞지?),

거기다가 민주대머리 박철민까지 가세한

배우들의 분장과 구호와 익살과 해학과 풍자와 총격전이 모두

아무래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광주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그냥 다큐멘타리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퇴색된 기억일지라도

뇌리에 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잔혹하고 또한 가혹하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살아있는 듯하지만 기실 실밥이 잘 여며진 박제와 같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