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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 이것이 민주주의

민망하게, 팔자에 없이 영화평을 기고했네요. 미디어충청 꺼 그대로 옮겨요...

2008년 한국의 촛불에 바치는 헌사

[영화] 다큐멘터리 “이것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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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02시08분 이성우

99년 시애틀과 08년 서울


1999년 11월 30일 아침, 시애틀에서 열리기로 한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5만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시위대는 시애틀의 회의장(Convention & Trade Center)을 둘러싸고 각국의 장관들의 입장을 막았다. 회의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각국 대표자들을 둘러싸고 시위대가 외친다. “누구의 거리인가?” “바로 우리의 거리이다!” “Our street!”를 연호하며 시위대는 손과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한다. 다양한 퍼포먼스가 현장에서 벌어지고 사람들은 마치 축제에 참여한 듯이 활력이 넘친다. 2008년 5월부터 시작한 한국의 촛불집회를 미리 보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그러는 것처럼 미국 주정부도 발끈한다. 시애틀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병력을 요청했다. WTO에 관한 어떤 깃발과 복장과 시위가 금지되는 25블럭에 걸친 “시위금지구역”을 설정했다. 시내에는 통행금지령이 떨어졌고,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서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무차별 발사했다. 연좌하고 있는 시위대를 한명씩 떼어내어 양 손목을 케이블 타이(전선 따위를 묶어서 고정하는 장치로 절단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음)로 묶어 짐승처럼 사지를 들고 연행했다.


시위는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경찰의 강압적인 진압방식에 흥분한 시위대는 12월 1일에 다시 엄청난 기세로 시애틀 시내로 쏟아져 나왔고, 장애물을 뚫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맨홀에서도 차안에서도 나왔고 50명이 100명으로, 150명이 300명으로 금세 불어났다. 경찰은 변함없이 강경하게 대응했다. 버스를 세워서 시위대로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끌어내렸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추적해서 30여명의 사람들을 체포했다. 12월 1일 밤에 시애틀 경찰은 업무방해, 경찰 폭행 등의 죄목으로 630명을 체포했다. 한 철강노동자가 얘기한다. “어제 5만여명이 거리에 있었지만 겨우 몇 명만이 유리를 깼을 뿐이다. 그런데 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대를 잡아가서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 역시 한국의 경찰을 판박이라도 한 듯하다.
12월 2일에 시위대는 체포된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서 직접 행동에 나선다. 감옥 안에서 체포된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연대의식이 형성되는 사이에, 감옥 밖에서는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항의농성을 벌여서 변호사 접견을 성사시키고, 이윽고 체포된 동지들을 석방시킨다. 12월 3일에 제3차 WTO 각료회의는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폐회되었고, 신자유주의의 심장부에서 통행금지와 시위금지구역과 최루가스와 총탄을 뚫고 역사적인 시애틀 투쟁은 그렇게 끝났다.



촛불은 반신자유주의 투쟁

그 2년 후에 도하에서 열렸던 제4차 각료회의,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각료회의(한국의 농민 이경영 열사가 할복했던 회의),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제6차 각료회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민중운동진영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표류했다. 이렇듯 WTO 체제에서 다자간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기는커녕 도리어 미국이 고립되는 현상까지 빚어지자, 미국은 다자간 협상보다는 양자협상을 통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것은 곧 2006년 벽두부터 한미FTA 체결을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하였고, 결국 2008년 4월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협상으로 이어졌으니, 지금의 촛불집회는 1999년 미국의 시애틀 투쟁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애틀 투쟁은 5대양 6대주의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과 연대하면서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전 지구적 민중운동을 태동시킨 것이다. 72분짜리 다큐멘타리 영화 <이것이 민주주의>(원제: 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는 시애틀 투쟁 당시 100여명의 미디어활동가들이 수집해 온 생생한 화면들로 구성되어, 시애틀 투쟁에서 맛본 감동과 가능성과 한계를 잘 정리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에서 등장하는 많은 장면, 이를테면 시위대의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퍼포먼스, 자유로운 연설,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인터뷰 등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촛불집회를 연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감동을 받는다. 함께 영화를 봤던 동지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들이다. 경찰의 폭력 침탈과 시위대의 비폭력 대응과 (말로만 투쟁하는 노동조합 상층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현장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연대투쟁은 2008년의 한국에서도 흡사하게 나타난다.
시애틀 투쟁으로부터 9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의 촛불집회는 시애틀 투쟁을 압도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은 촛불민주주의라고 하고 일각에서는 네트워크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어떻게 규정하든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민중은 다양성, 자발성, 창조성에 있어서 기존의 운동세력을 능가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체제가 양산하는 반민중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법과 제도에 전면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촛불집회가 없었더라면 <이것이 민주주의!>가 주는 첫 감동은 훨씬 컸을 것이다. 1999년에 시애틀에 모였던 5만의 시위대가 서울시청 광장에 지금 다시 모인다면 수십만의 함성에 파묻혀서 흔적 없이 녹아버리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이것이 민주주의!>


한 가지 부러운 것은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에는 나오지 않지만, 강경진압을 지시했던 시애틀 경찰서장은 해임되었고, 시애틀 시장은 다음해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리고 경찰의 강경진압을 놓고 법정투쟁이 시작되었다. 시위금지구역 바깥에서 체포된 157명에게 불법 체포를 이유로 정부가 25만불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2007년에 와서는 시위 금지 구역 ‘안(內)’의 공원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연좌 농성을 벌이다가 체포된 175명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나 확실한 증거 없는 불법 체포였다는 이유로, 100만불을 배상하고 체포 기록도 삭제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의 판단은 경찰의 진압 자체가 미국 수정 헌법 4조의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촛불집회를 무자비하게 강경진압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한국이라면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자못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는 잘 만든 다큐멘터리이고 볼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욕심을 부리자면, 이 땅의 동지들이 아마도 곧 만들게 될 “2008년 촛불민주주의”에 관한 영화가 <이것이 민주주의!>를 뛰어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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