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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관료들을 너무도 싫어하는 한 동지가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장과 아주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방식으로 고착화된

관료로 전락해버릴까봐 늘 노심초사했고,

그런 마음을 다스릴 작정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늘 치열했다.

 

그런 그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여러 날이 지나고 있다.

전화는 꺼져 있고

나는 지금 그에게로 가는 길을 모른다.

 

어젠,

그 동지와의 오래된 일들을 생각하면서

서해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그 동지를 기억하거나 좋아하는

몇 동지들에게 그냥 전화를 했었다.




어제 오전 10시,

보령화력발전본부 강당에서

발전노조 2대 신종승 위원장의 이임식과

3대 이준상 위원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전날에 대의원 수련회가 있었기 때문에

연맹의 양경규 위원장이 달려가

민주노총과 연맹의 투쟁계획과 주요 사업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를 하고 난 뒤였다.

 

바쁜 임원들을 대신하여 내가 달려가기는 했지만,

격려의 말이라고 딱히 할 얘기도 없었다.

늘 하던 얘기야 전날에 위원장이 모두 해치웠을 것이고,

내 앞 순서에서 이준상 위원장이 한미FTA얘기까지 다 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지금 통신이 두절된 동지에게

2주일 전쯤에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를 떠올리곤

그 얘기를 발전노조 대의원과 간부들에게 했다.

 

"현장의 조합원들을 만날 때

 조합원들의 얘기가 새록새록 늘 새롭고

 조합원의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목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냥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조합원들의 불만 가득한 얘기를 들으면서

 그 얘기들을 갖고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싶어진다면,

 그 동지는 아직 쓸만한 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조합원들의 얘기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합원들이 어렵사리 한마디 꺼낼 때마다

 그 말을 가로채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 급한 듯하고

 아, 이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조합원들의 얘기가 늘 듣던 식상한 것들이며

 이미 나는 그 얘기들을 다 파악하고 있으므로 따로 고민할 것도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 동지는 미안하지만, 낡고 경직되어 떠나야 할 때가 된 간부라고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해서 될 이야기도 아니고

 노조 간부들마다 저마다의 스타일이 다르기도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제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간부 그만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동지가 있다면

 그래도 한번쯤은 더 생각해 봐도 됩니다.(무리들 웃음)

 

 발전노조의 새 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서 힘을 얻고 조합원들과 더불어 일을 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믿는 마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나 연맹의 간부들도

 낡은 간부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뛰고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뭐, 이런 얘기를 짧게 하곤 내려왔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한 나 자신이 찔리는 것도 많지만,

노조만 그렇겠는가,

명색이 조직의 간부며 활동가라면,

심지어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이라면,

제 얘기보다는 남 얘기에 진지하게 귀기울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야 할 터.

 

그래,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연락도 되지 않는 동지를 떠올리면서

어제, 나는 서해대교를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도로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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