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8/06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6/29
    2008/06/29, 사무실에서(2)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8/06/25
    이소연씨 이야기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8/06/25
    정부중앙청사 앞 1인 시위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8/06/12
    연구원들이 실험복 입고 거리에 나선 사연
    손을 내밀어 우리

2008/06/29, 사무실에서

1.

6월 29일, 이른바 속이구(6.29) 선언을 한지 꼭 21년이 되는 날이구나.

그 날 학교에서 신림동 4거리에 있는 중국집까지

후배와 함께 버스타고 나가면서(무슨 모임이 있었다)

직선제 개헌에 대한 기대와 '선언'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21년이 지난 기억이라 어슴푸레하지만 그 느낌은 아직 남아있다.

 

2.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침탈 앞에서

서울 시가지는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전은 평화롭기만 하니까 가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주말에는 서울로 가서 밤샘 집회나 하고 싶다는 생각,

문득 든다.

웬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70-80년대의 폭력이야 그랬다 치고

다시 21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법과 권력이라는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온

대한민국 국민들은

헌법 제1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데까지 왔다.

 

3.

우리 연구소, 투쟁이 67일째이다.

모양새로는 무척 평온하게 진행되는 투쟁이지만,

긴장은 여느 투쟁과 다르지 않다.

자나 깨나 바깥 세상의 일보다는

내 투쟁에만 집중한다.

아침마다 출근투쟁, 오전에는 속보, 점심 때 선전전,

오후에는 사람들  얘기 듣고 다시 내일의 투쟁 준비하고,

주 5일을 그렇게 지내다가

주말에는 몇 잔 술로 혼곤하게 떨어지고

다시 기운을 차린다.

 

4.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좋다.

모든 고민이 책상머리로 달려와서 속삭인다.

해야 할 일들이 넘치게 몰려와서 치근댄다.

 

그래도 가끔은 내게 묻는다.

너, 제대로 하고 있니?

 

5.

주중에 날 만나겠다고 연락했다가

퇴짜 맞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잊었네.

미안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소연씨 이야기

지난 5월에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발행하는 <시민과 변호사>라는 웹진의 청탁을

받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끄적끄적 쓴 글...

원래 제목은 "한국 첫 우주인 탄생, 그 의미와 과제"이다.

--------------------------------------------------------------------------------

이소연씨가 지난 4월 8일부터 19일까지 무사히 ‘우주여행’1)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주비행사든 우주여행객이든, 이소연 씨는 1961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이후 세계에서 475번째, 여성으로는 49번째로 고도 100Km 이상의 우주를 다녀온 우주인이 되었고, 한국의 첫 우주인2)으로 기록되었다. 이소연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는 동안에 13가지 기초과학실험3)과 5가지 교육실험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우주에서의 체류 소감을 나누었다.

 

이번 ‘우주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거창하게 한국에서 우주시대가 열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주산업과 우주개발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하고, 청소년들이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4)가 마무리되었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2004년에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이 계획을 보고하면서, 우주인 선발과정에서 지역예선과 결선을 거치며 국민적 과학‘이벤트’로 할 것이라고 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주인 사업이 전시행정이라는 얘기를 들을 우려가 있다’고 유보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 후 과학기술부는 2005년을 ‘우주의 해’로 지정하고 ‘우주개발진흥법’을 제정하는 등 우주개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주인 배출사업’이라는 이벤트는 겉보기로는 상당한 인기를 모으며 진행되었다. 5)

 

그러나 본격적인 우주시대를 열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우주 주권을 확보하려면 위성체 제작 능력, 발사체 개발 능력, 발사장 구축 등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위성 제작과 위성 운용기술은 후발 주자 중에서는 상위권이라고 하고, 2003년부터 전남 고흥에 건설하고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오는 9월에 준공하게 되면 발사장도 일단 확보된다고 하지만,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은 선진국의 견제 등 상당한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작년 6월에 제2회 국가우주위원회에서 수립한 ‘제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2007-2016)’을 보면, 현재 착수중인 위성체 개발을 통하여 기술개발 자립화 능력을 갖추고, 발사체의 경우에는 소형위성발사체(KSLV-I)를 2008년 12월에 예정대로 발사하며, 후속사업은 자력기술을 통한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목표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올해 12월 21일에 나로우주센터에서 처음으로 발사될 KSLV-I는 2단으로 이뤄지는데,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1단 로켓은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 로켓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자체 개발했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1단 로켓 수준의 발사체 제작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이다. 이 숙제를 해결해야 할 과학기술자들은 지금 당장은 KSLV-I 발사를 성공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이소연씨의 ‘우주여행’이 잘 끝나고 우주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관심도 커졌지만, 정부의 우주개발에 대한 지원계획은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첫 우주인 탄생이라는 눈앞의 결과에 일단 흡족해하며 이명박 대통령도 ‘10년 후에는 7대 우주강국을 목표로 하자’고 독려했지만, 정부연구개발예산에서 우주개발예산은 축소될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발사체 개발에 관련된 250여명 과학기술자들은 12월의 KSLV-I 발사가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 안간힘을 쏟고 있다.

260억원이나 들여서 겨우 한명의 한국인을 우주인으로 만드는 게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우주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고산씨는 말한다. “어린이들을 위해서이다. 장래 희망이 판사, 검사, 의사 같은 것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우주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ISS에서 돌아온 후에 이소연씨는 말한다.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잖아요. 그게 돈으로 환산이 되나요?” 한국 최초의 ‘우주여행’의 의미는 이것이었다. 적어도 고산씨와 이소연씨는 자신들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고 충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된다. ‘우주인 배출사업’은 기획된 이벤트의 하나였다고 해도, 우주시대를 열기 위한 중장기 청사진을 제대로 만들어 추진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2016년까지 저궤도 실용위성 본체기술 자립화 달성, 2017년에 300톤급 한국형 발사체(KSLV-II) 발사, 2020년에는 달 탐사 궤도선 발사, 2025년에 달 탐사 착륙선 발사,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가 어느 정권에서 왜 수립되었는지 하는 정치적 배경을 살필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과학기술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긴 세월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갈 수 있도록 하는 뚝심을 확보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 남짓 지났다. 자칫 ‘당장 돈 되는 연구’, ‘실용적인 연구’만 지원한다고 해서 정부가 중장기적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우주, 바이오, 에너지 등과 같은 연구개발부문은 아예 포기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높다. 지금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묵묵히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있는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이 꿈과 희망과 포부를 잃지 않도록 안정적 연구 환경을 갖추는 것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여행’에 가졌던 관심의 일부라도 모든 과학기술자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줄 때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우주시대를 열고 과학기술입국의 시대로 들어설 것이다.

<주>

1) 서울신문 2006년 12월 26일자 기사, “한국 첫 우주인은 우주에서 ‘조종’이 아닌 ‘여행’을 하게 된다”

2) 조선일보 2008년 4월 1일자 기사, “미국과 러시아의 정식 우주 임무에 참여하지 않는 우주인은 통상 ‘우주 비행 참여 우주인’으로 분류된다”

3) 항공우주연구원은 이소연씨를 특정한 임무를 가지고 우주비행에 참여하는 ‘우주실험 전문가’라고 했지만, 이것은 다소 주관적이다. 전체 예산 중에서 과학실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 수준으로 한 실험당 3000만원 정도였고, 대체로 후속 연구 지원 계획이 필요없는 단발성이고 ‘상징적인’ 실험이었다.

4) 프레시안 2006년 4월 14일자, 우주인배출사업추진위원회 김두환 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

5) 2006년 4월 21일 과학의 날부터 공개적으로 모집한 지원자 36,206명을 대상으로 4단계 과정을 거쳐 그 해 12월 25일 최종 후보로 고산씨와 이소연씨 2명을 선발하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부중앙청사 앞 1인 시위

블로그가 썰렁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요즘 하는 일이 맨날 통합 저지 투쟁이다보니

별로 쓸 것도 없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저런 사건들도 많았다.

다시 틈틈이 올려 보자.

오늘은 일단, 어제 1인시위했던 풍경이나 하나 올려놓고...

(오늘 속보에 올린 거 그대로 펌)

-----------------------------------------------------------------------------------------------------

5월 23일과 27일에 교과부 차관 주재로 생명연-KAIST 통합 관련한 회의가 열렸고, 거기에 항의하여 두 번의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 1인 시위를 이제는 매주 화요일에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어제(6/24)는 생공투 이성우 집행위원장과 천연물의약연구센터 최순자 조합원이 맡았습니다.

어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

1. 최순자 조합원의 선전물 배포능력은 놀라웠습니다. 11시 30분이 좀 지나자 공무원들은 떼지어 종종걸음으로 식당가로 몰려나왔고, 그 앞을 가로막고 300여부의 준비된 선전물을 불과 30여분 만에 거의 다 배포했습니다. 와우, 짝짝짝!!

2. 정부중앙청사 후문에는 4팀의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선전물을 다 배포한 최순자 동지가 실험복을 입고 서자 지나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로 집중되었습니다. 때마침 청사에 출장왔던 KAIST 직원이 ‘고생많다’, ‘미안하다’ 하면서 시원한 녹차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생명연이 반대하면 서총장도 안한다고 하더라면서요...ㅎㅎ 고맙습니다!

3. 교과부 김도연 장관이 측근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뒷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장관이 들어올 때 꼭 선전물을 전하리라고 맘먹고 20부 정도를 남겨두었습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한 장 한 장 배포하면서 장관이 사라진 방향을 살피고 있었는데, 1시 5분 전쯤에 드디어 남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장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앞서서 오는 장관의 비서관에게 한 부, 곧바로 장관의 손에 한 부를 건네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장관님, 우리는 KAIST와 통합에 반대합니다!”

주변의 뻘줌해하는 표정 사이로 장관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선전물을 읽으면서 청사로 들어갔습니다. 조만간 교체될 예정이라서 우리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은 안된다는 게 쬐금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구원들이 실험복 입고 거리에 나선 사연

연맹에서 급히 보내라고 해서 쓴 글이다.

좀 보완해서 미디어충청에도 보내야겠다.

진작 보내려고 했는데 날마다 무슨 일이 이렇게 터지는지...미안해라.

일반인들을 독자로 생각하고 쓰는 글은 정말 어렵다.

과학기술노동자 대신에 연구원이라고 썼다고 누가 뭐라고 할려나...ㅎㅎ

---------------------------------------------------------------------------------

-연구원들이 실험복 입고 거리에 나선 사연-

대덕연구단지로 더 알려진 대덕특구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정부가 설립을 주도하고 운영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공공기관이다. 1985년 2월에 출범해서 23년이 흘렀고, 지금은 1년 예산이 1100억원에 직원들이 1천명(석박사 연구직 약 70%)에 이른다. Cell, Nature 등 세계 유수의 전문학술지에 논문이 실리고, 위암진단기술을 개발하고 지방간 발생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주로 생명공학과 관련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이다.

 

전국적인 촛불시위로 잘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생명연은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공공연구노조 생명연지부)이 중심이 되어 ‘생명연 해체 저지’와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를 외치며 50일째 투쟁하고 있다. 생명연을 카이스트 직할기관으로 통합하고 재산은 국고로 귀속한 후에 카이스트에 무상 양여한다는 정부의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연연구기관이 더 이상 인위적 통폐합과 무분별한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출범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강제통합방침이 드러나자 전 직원이 들고 일어났다.

 

정부가 강제통합을 추진하는 논리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는 교육기관(카이스트)과 연구기관(생명연)의 우수한 협력모델을 개발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카이스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생명연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연구경쟁력이 커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정부는 연구소 하나 없애는 것을 쉬운 일로 치부하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인위적 통폐합은 없다고 했던 정부의 방침을 뒤엎은 배경에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MIT 후배이자 제자인 김창경 청와대 과학비서관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이스트의 3대 구성주체인 노동조합과 교수협의회,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가 모두 통합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가운데, MIT를 나온 카이스트 장순흥 부총장과 함께 이른바 MIT 3인방이 카이스트와 국가과학기술정책을 농단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연은 지난 50여일 동안 우직하고 힘차게 투쟁을 벌여왔다. 5월 21일 정부중앙청사 상경집회를 통해 정부의 통합추진 입장을 확인하고, 5월 27-28일 연인원 500여명이 참가하는 카이스트 앞 집회를 통해 투쟁의 의지를 드높였다. ‘생명연 강제통합 과학기술 미래없다’, ‘자율협력 하라더니 강제통합 웬말이냐’, 이런 문구가 담긴 플랭카드를 펼쳐들고 아침마다 100-200명의 과학기술노동자들이 대덕특구로 들어가는 두 길목에서 출근투쟁을 지속해 왔고, 카이스트 앞에서는 날마다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촛불시위에 조직적으로 참가하고, 매일 600부의 투쟁속보를 발행하여 점심시간마다 연구소 식당에서 배포하고 있다.

 

다른 공공연구기관과 마찬가지로 생명연도 IMF 환란 이후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년단축, 연봉제와 계약제 강제 도입 등 고통분담의 세월을 지나왔다. 이제는 아예 연구소까지 통째로 빼앗길 판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과학기술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다. 이제 50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100일 지나고 5백일이 되더라도 강제통합 방침이 철회되지 않는 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