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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7
    안개
    손을 내밀어 우리

안개

 

안개 속에서 긿을 잃다.

 

그저께, 밤 늦은 시간,

강남에서 유성으로 오는 고속버스를 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1시 20분,

거리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불과 50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내 차가 서 있는 사무실 앞까지

유유자적하게 걷기로 했다.

인적 드문 거리에는 택시들이 주로 달리고

24시간 노동하는 편의점, 해장국집, 족발집들과

밤에만 반짝하는 노래방들이 안개 속에 깨어 있다.

 

혹시라도 달리는 차가 나를 보지 못하면 어쩌나,

짐짓 걱정도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리를 건너

사무실 앞길로 접어들자 안개 속 아경이 몽환적이다.

왼쪽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원룸형 빌딩,

오른쪽으로는 청계천을 꿈꾼다는 유성천,

그 사이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안개의 땅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곧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어랍쇼, 어느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낯설다, 아니

익숙한 곳이기는 한데 내가 도달하고자 한 곳은 아니었다.

이게 웬 일이람?

그곳은 사무실을 한참 지나친 곳이었다.

 

되돌아 보았다.

사무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보이지 않고

길 가에 세워둔 내 차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

오던 길을 다시 걸었다.

곧 백설공주가 사는 성처럼 안개 속에 우뚝 선

사무실 건물을 만났다.

길을 잃을 수도 없는 직선도로 위에서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내가 몽유병이라도 걸렸다는 말인가?

 

길은 언제나 걷던 그 길이었고,

차는 곧 쉽게 찾아서 움직일 수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안개 속에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사진 속에는

물에 반사된 건너편 모텔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사무실 앞 가로수, 낙엽이 덮인 길가 잔디밭,

아스팔트를 떠도는 마지막 잎새들,

그런 새벽 풍경들이 맘 편한 자세로 누워들 있고,

저 앞 길 건너편에는

세웠던 그 자리에 내 차가 또렷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어디를 걷고 있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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