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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3
    내 단골집(7)
    손을 내밀어 우리

내 단골집

대전 둔산 "동천홍"의 사천탕면
-노동자 역사 한내에서 쓰라고 하여 급히 쓴 것입니다. 맛에 대한 느낌과 판단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랍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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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도락가나 미식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주변에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 있으면 꼭 한번은 들러본다. 길을 가다가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들어가서 먹어보곤 한다. 그러다가 내 입맛에 맞는 집이 있으면 동무들을 데리고 한 번 더 간다. 함께 갔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하면 그 곳을 기억해 두었다가 모임이나 술자리가 있을 때 우르르 몰려간다. 몇 차례 드나들어 그 집의 맛에 익숙해지면 점차 뜸해지기는 하지만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입맛이 모두 바뀌지 않는 한 아예 발길을 끊은 적은 없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지만 음식점과 맺은 인연도 상당히 오래도록 간직하는 편이다.
 
정해놓고 자주 가는 집을 단골집이라고 한다면 내가 딱히 단골집이라고 할 만한 음식점은 없다. 점심때는 김치찌개, 청국장, 냉면, 순대국밥, 생선구이, 콩나물국밥, 설렁탕, 자장면, 칼국수 따위 즐비한 식단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그 음식을 잘하는 곳으로 간다. 저녁이라면 주로 술안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다. 삼겹살이나 곱창 같은 구이, 탕수육과 양장피로 대표되는 중국요리, 쭈꾸미와 낙지, 아귀 등 해물류, 감자탕이나 황태전골 따위 토속음식, 가끔은 횟집, 이런 곳들이 소주맛이 나고 동지들과 어울리기에도 무난하다. 그 날 그 날 갈 곳을 정하는 것은 동행들의 몫이지만 나한테 넘어오기 일쑤이고, 그러다 보면 두루두루 번갈아 가기 십상이니 단골집을 만들 틈새도 그다지 없다.
 
애써 찾으면 단골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음식점들이 있기는 하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 날 속 풀러 가고 싶을 때, 먼 곳에서 보고픈 사람들이 왔을 때, 동지들과 나눌 만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가고 싶어지는 곳이면 단골집의 반열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집들은 자주 가지는 않지만 한 십년쯤은 꾸준히 찾는 곳이다. 대전에서는 천복순대, 숯골원냉면, 아리랑보쌈, 왕비성, 동천홍, 미송, 임해조 볼테기, 역삼동 황태찜(대전) 등이 인연이 제법 깊고, 시골생막창, 오씨네 칼국수, 두레마을 등이 새로 드나들고 있는 곳들이다.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오늘은 <동천홍>이라는 중국음식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동천홍(東天紅)>은 대전 둔산에 있는 선사유적지의 골목 안쪽 돌담 건너에 있다. 동천홍이라, 동쪽 하늘의 붉은 색(빛)이면 떠오르는 아침해를 말하는 것이렸다. 왕비성, 취영루, 천안문, 중화반점, 포청천, 만다린처럼 흔히 중국음식점이 갖는 ‘성(城)’이며 ‘루(樓)’며 ‘반점(飯店)’ 따위 통속적인 이름을 벗어나서, 이름부터 새롭고 은근히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서인지 동천홍이라고 부를 때의 어감이 참 좋다. 내가 이곳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은 된 것 같은데, 언제 개업했냐고 물어보니 13년쯤 되었다고 한다.
 
동천홍은 널찍하고 조용하며, 몇 년전에 리모델링을 하고 난 후로는 분위기가 훨씬 정갈하고 깨끗해졌다. 가족과 함께 가도 좋고, 손님들과 어울려 가도 좋다. 나는 주로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하러 가는 편이다. 중국음식점에서 속을 푼다고 하면 십중팔구 자장면과 짬뽕을 떠올리겠지만, 미안하지만 틀렸다. 동천홍에서는 대표 메뉴가 자장면이나 짬뽕이 아니라 ‘사천탕면’이다.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한 때는 90%가 사천탕면을 주문했는데, 요즘은 새우볶음밥 주문도 꽤 늘어서 사천탕면은 7-80%쯤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것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면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오늘 사무실의 동지들과 함께 가서도 세 사람 모두 사천탕면을 먹고 왔다.
 
남들이 사천탕면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하얀 짬뽕’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마른 고추로 매운 맛을 내고 육수에다가 갖가지 해물과 채소류로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내는 것으로 보면 짬뽕과 흡사하다. 사천탕면은 짬뽕과 사뭇 다르다. 우선 국물이 뽀얗다. 얼핏 보아서는 맵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국물을 한 입 떠 넣으면 입속에 매운 기운이 살며시 퍼지면서 오감을 자극한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매운 고추를 바짝 말려 볶아서 국물을 만들기 때문에 담백하고 깔끔하다. 매운 맛 다음에 곧바로 입안에는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감돈다. 새우, 굴, 조개, 쇠고기, 양파, 배추 등이 육수와 넉넉한 굴소스와 어울려 내는 맛이다. 그래서 짬뽕이 갖지 못한 독특하고 감칠 맛을 갖고 있다. 특히 굴이 푸짐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이 국물만 떠 마셔도 오전 내내 술기운으로 요동치던 뱃속이 금세 평화를 찾는다.
 
동천홍의 점심시간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언제나 바쁘다. 조금만 늦게 가면 줄을 서야 한다. 하긴, 사천탕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울 것을 생각하면, 줄을 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아니겠는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지들과 어울려 사천탕면을 먹다가 보면 간밤의 취기는 온데 간데 없고 절로 소주 한 병을 청하고 싶어진다. 작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어느 동지가 와서 사천탕면과 요리 한 접시, 그리고 고량주를 주문했다. 처음 먹는 사천탕면이 너무 맛있다며, 동지는 오로지 국물만을 안주 삼아 고량주를 들이키는 것이었다. 이제 누구든지 대전에 와서 연락하면 내가 비싼 요리는 말고 사천탕면에 술로 푸짐하게 대접하리라. (200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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