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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1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추진 비판(1)
    손을 내밀어 우리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추진 비판

미디어충청(cmedia.or.kr)에 기고한 글...

민영화가 만사형통이라고? 이명박 정부의 고질병!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추진 비판

2009-05-20 16시05분 이성우


조장(助長): 급하게 서두르다가 일을 망친다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힘을 도와서 더 자라게 한다는 의미이지만,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원래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다. 모내기를 하고 나서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서 논에 나갔다.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았다. 농부는 궁리 끝에 벼의 순을 잡아 빼올렸다.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벼의 순을 빼서 더 자라게 했노라고 얘기했다. 식구들이 기겁하여 논에 달려가 보니 벼는 이미 하얗게 말라 죽었다.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상(上)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급하게 서두르다가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GLP시험기관: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기능과 역할
안전성평가연구소(Korea Institute of Toxicology, KIT)는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에 속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안전성평가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관련 분야 전문 시험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보건향상과 인류복지 증대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2002년 1월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센터를 모태로 하여 설립되었다. ‘안전성평가연구’라는 것은 ‘신약이나 화학물질 등이 인간의 건강이나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비임상적인 방법으로 시험 또는 연구하는 분야’로 풀어쓸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일반인들은 안전성평가연구소가 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쉽게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하는 일을 간추려 보자.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약으로서 가능성이 있는 후보물질을 찾아내고 그 약효와 독성 등을 검증해야 한다. 미생물, 세포, 동물(쥐, 개, 원숭이 등)을 이용해서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약효와 독성을 평가하는 시험을 비임상시험이라고 한다. 비임상시험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약효와 독성을 파악하기 때문에 신약개발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바로 비임상시험을 전문으로 하는 유일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또 신약 후보물질은 아니지만 새로운 농약이나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시험 등 안전성평가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안전성평가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GLP(Good Laboratory Practices, 우수실험실운영기준)를 준수해야 한다. GLP는 의약품, 농약, 화학물질 등의 안전성평가를 위하여 실시하는 각종 시험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운영체계, 인원, 장비 및 시설)을 규정함으로써 전반적인 시험과정 및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말한다. GLP기준을 충족하는 시험기관이 되려면 상당한 시설투자와 전문인력 양성과 운영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현실
정부가 2001년 12월 안전성평가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비록 늦었지만 GLP 시험기관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7년간 정부는 안전성평가연구소에 1천여억원의 연구자금을 지원해 왔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일본의 공인 GLP 적격시험기관, OECD 회원국 간 안전성 시험자료 인정기관, AAALAC Intl(국제실험동물관리인증협회)의 아시아 최초 적격시험기관 인증 등을 잇달아 받으며 국제적 안전성시험연구기관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2006년 현재 국내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안전성평가시험의 82.5%가 해외 시험기관에 위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안전성평가연구소는 2005년 미국 FDA의 사찰을 받았으나 아직 보류 중이다(PENDING). 국제적인 GLP수탁기관만 보더라도 미국 80여개, 일본 40여개, 유럽 20여개 등이 존재하지만 국내에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전체 인력을 다 합쳐도 기껏 700여명으로, 미국의 코반스(9,000명)나 찰스리버(8,500명)의 7-8% 수준이다.

반면에 국내 연구개발비가 늘어나고 신약 등 신물질의 개발이 증가하고 있어서 국내 GLP 시험기관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GLP시험의 시장 규모는 2007년 기준으로 3조원에 달하고 연평균 12.6%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국내 시장 규모는 1700억원에 달하고 연평균 34%의 고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무지와 비전문성: 갑작스런 민영화 논란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경제부가 갑작스럽게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어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크게 충격을 받고 있다. 2008년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KAIST의 강제통합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이후 전체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2010년까지의 중장기과제로 연구하기로 했는데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는 그러한 정부의 기존 방침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는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설립 당시부터 민간 GLP시험기관으로 발전한다는 전제를 갖고 출범했기 때문에 민영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민영화 문제는 특정한 기관의 입장보다 앞서서 그것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는지 우선 검토해야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차세대 동력산업으로서의 보건산업의 핵심으로 GLP시험기관을 주목하고 있는 반면 지식경제부는 국제적 수준의 유일한 GLP시험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를 민영화하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 부처끼리 엇박자를 내고 있다. 아직까지 GLP시험기관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마스터플랜조차 발표된 적이 없다. 지식경제부가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중장기 발전전망을 세우는 것을 갖고 고민하지 않고 민영화를 전제로 한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 자체가 자신들의 GLP시험기관에 대한 무지와 비전문성을 실토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당장 민영화된다면 이미 국내 시장에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인 GLP수탁기관과 최근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계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 GLP기관에 의한 국내 시장의 잠식은 막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곧 정부가 지난 7년간 지원하여 성장해온 비임상시험분야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국제 경쟁에서의 탈락과 아울러 수천억대 외화유출의 가속화로 나타날 것이다.

과학기술노동자들, 투쟁을 시작하다
그러나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사용자들은 단계적이고 점진적 민영화를 주장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민영화 추진을 방조하고 있다. 위기를 느낀 안전성평가연구소 종사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위원회(투쟁위원회, 위원장 김광한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화학연구원지부장)>를 구성하여 투쟁으로 나서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와 사용자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가 촉발한 셈이다.

투쟁위원회는 5월 11일부터 출근투쟁을 시작했고, 5월 19일에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기자회견과 겸하여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위원회 출정식’을 개최하였다. 투쟁위원회는 지식경제부와 산업기술연구회가 GLP시험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독립법인화 추진 방향이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 강화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약개발 인프라 강화와 GLP시험 기술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국내 관련 산업에 대한 기술지원 역할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약개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GLP시험기관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현장의 과학기술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그것을 외면하고 이미 결정된 방침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를 끝내 밀어붙인다면, 지식경제부는 글머리에 인용했던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고사를 낳은 송나라 농부와 무엇이 다르랴. 한번 망친 농사는 내년 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한번 망친 과학기술정책은 10년, 20년을 노력해도 만회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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