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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08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를
    목동
  2. 2006/11/08
    격려와 배려가 있는 사회
    목동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를

빌리는 자신의 상담한 여학생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그 여학생은 샐리라는 중학생이다.
그녀의 부모가 이혼한 상태에서,
그녀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새로 재혼한 아빠집에도 가끔가서 지내곤한다.
그녀의 새엄마는 여러가지 일로 바쁘게 지내는 고로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다.
아빠도 그녀에게 엄격하게 대하지,
자신을 사랑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자신을 키우는 엄마는 알콜중독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그녀는 늘 사랑에 굶주려 있으며,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감히 멀게만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에 깊은 열등감에 빠져, 조그만 물건에도 그녀는 애착을 갖고,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해 집착을 하지만,
그녀가 마음대로 갖고 싶은 물건을 살수도 없는 경제형편이다.
그녀는 외모도 별로 잘생기지 않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고,
그녀는 자존감이 낮다보니, 그녀주변에는 친구도 거의 없다.
그녀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좋은 친구가 없다.

이런 아이를 상담하여 도움을 주고 싶은 빌리지만,
그 또한 무력감에서 그 여학생을 충분히 돕지 못한 자신의 무능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여,
자신의 상담내용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열등감에 대해 고백을 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가 의사이고, 형도 의사이며, 장인도 의사인 가정인데,
그는 그사이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으로 자신에게 쌓여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자신의 형과 사이에서
부모들은 자기보다 형을 더 인정해주는 분위기에서
자란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상실감이나, 열등감에 고민을 한 적이 많다고 한다.

미국에는 이런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
자신을 건강하게 돌보지 못하고,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청소년시기에 자신의 자아상을 세우는 때에,
건강한 가정의 건강한 청소년들은 올바른 자아상을 세울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분열된 자아의식나 거짓된 자아상을 갖게 되어,
올바른 판단이나, 결정을 하지 못하는 습성을 갖는 자기표현을 하기 쉬어진다.

그런 청소년들은 자아에 대한 자존감을 찾는 것을 외부에서구하지 말고,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부정적인 것을 극복할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가치관을 세울수 있는 자아에 대한 개념을 갖질 필요가 있는데,
이런 건강한 자아개념을 세우는 필요한 가치관은 일정한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일관된 인생철학의 기준을 세우는 일을 독서를 통해서
혹은 주변에 있는 존경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면 어떨지,

나도 사춘기에는 좋은 환경이라 할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당시에 독서를 통해, 책의 선생들에게 인생의 물음에 대해 질문을 하며,
앞으로 어른으로 살아가기에 필요한 건강한 자아상이나, 가치관을 가지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빌리나 샐리가 겪는 열등감의 문제는 많은 경우에 주변의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이나,
의식에서 자신에게 심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누구나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신만이 할수 있는 일과
그일을 할수 있는 자질이나,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지으신 신께서
우리안에 자신의 이메지를 갖고 태어나도록 하였기에
아무리 역기능적인 가정에 있는 자신이라 할지라도,
흔들리는 자신에게 집중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을 있게한 신과 대면하여,
거기에서 자신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찾아,
신이 베푼 해답에 따르는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에 따라
다시 건전한 자아상을 세워,
청소년기에서 젊은이의 세계로 나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간관계의 형성에 긍정적인효과가 나타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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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와 배려가 있는 사회

이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구의 당기는 중력에 의해
자신들의 존재가 지탱하고 있듯이
인간의 거의 모든 일들이 자연의 법적인 현상이나 작용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인생들이 자신들이 중력에 의해 움직이듯,
인생들이 특별한 배려가 없이 법이 명하는 대로 살아가는 일이란
법적 준수나 법을 위반시 처벌만 기다리는 삭막한 인간생활로 여기게 된다.
모든 것이 법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하며,
배려는 없고, 법만이 영향을 주는 삶이란 사람을 더욱 고달프게 한다.

생활하면서, 특별하게 생일을 축하하다든가, 집들이를하다든가,
결혼기념을 축하하는 것은 평범하게 살기쉬운 일상의 생활에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게 된다.
특별한 날들이 없고, 그저 다람쥐 체바뀌돌듯이 변화가 없거나 무의미하다못해,
권태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삶의 에너지에 충전이 필요하다.
그 삶의 에너지는 자신을 향한 배려나 혜택을 통해 얻게 된다.

사람이 중력의 법칙대로, 자연적으로 되어진 대로 살아간다면,
결코 보다 가치있거나, 보람있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한 아이가 자라면서 수많은 희생과정성이 깃들인 부모의 돌봄이나,
가르침의 결과로 사람이 훌륭하게 성장하게 된다.
저절로 무엇이든지 그냥되어지는 법은 없다.
거기에 정성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의댓가로 자신의 출세나 성공이 이루어진다.
그런 일들 가운데에, 서로에 대한 희생과 기대감이 있고,
또한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있고, 혜택이 있고, 봉사가 있고, 섬김이 있다.

만일 지구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단지 중력에 의해 자연의 법칙대로 돌아가는 대로만 살아간다고 가정해보면,
인생들은 잠시도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천재지변이나,
자연의 힘에 의해 떠밀려, 존재하기도 쉽지않을 것이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홍수가 나거나,
재해가 닥쳤을때에 조금만 더 도가 넘어가면,
더 큰 재난이나,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고비들을 넘기는것이 우연히 이루어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은
그 배후에는 신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잘못에 대해 용서나, 용납이나,
혹은 사면이나 면책을 해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의 행의에 대한 심판에 의해, 인간스스로는 설수 조차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때에도 매를 들고,
법으로 아이를 바로 잡으려 하면 우리의 대하는 잣대로 자신도 완벽할수 없을 뿐아니라,
아이들을 변화시킬수 있는 교육의 효과의 길로 유도하기란 쉽지않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용납해주는 너그러움이 있고,
비록 실수를 했어도,그들을 받아주는 부모의 아량이 있어야,
아이들이 그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용납하면서,
계속적인 격려가운데에 바른 길을 걸어갈수 있을 것이며,
발전적인 성장을 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고,
특히 인간의 인성개발(영성, 지성, 감성)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물리적인 법칙에 의존하는 법의 테두리가 아닌 관용과 용서의 배려가운데에
사람의 잘못을 고치게 되고, 사람들 자신을 변화시키며,
그리고 나아가서 그런 연약한 것들을 극복하고
자신을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시킬수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계에 뿐아니라,
인간의 다반사가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관계나,
비지니스세계에도 서로 잘못을 용납해주고,
그들의 실력이나 노력을 믿어주고 하는 신뢰의 관계가운데에 비지니스가 성공하고
또한 사회도 발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느스한 법적용이나, 안일한 법위반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일 어느사회든지 사람들을 엄격하게 구속하고 다스리는 법만 있다면,
그사회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사람을 질식시킬것이다.
인간의 잘못이나, 허물을 용납하지 않은 비판과
법적인 구속만있는 전체주의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숨을 돌릴여유도 없고,
그런 구속적인 법규망속에서 사람들은 노예처럼 자신들을 포기하고,
배려나 혜택은 없고 의무나 맹종만 있는 험악한 상태에서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격려와 관용이 있는가운데에 넉넉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살아갈수 있다.
이런 모든 인간사회의 배려나, 혜택이나, 관용등은
그 근저에는 인간에 대한 신의 용서와 배려와 신만이 줄수 있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신의 배려나, 관용에 의해,
서로를 받아줄때에 그렇게 살아갈수 있다.
사람이 물을 마시고, 공기를 마시고, 하늘의 창공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활보하고 살아갈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은혜의 배려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법적인 구속의 힘보다는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끄는 종교의 힘이 올바르게 활용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때에,
그 사회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참된 삶을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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