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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24
    개인적 감사
    목동
  2. 2006/11/24
    신의 마음
    목동

개인적 감사

해마다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때마다,
경험하는 것은 마땅히 갈때도 없지만,하루를 그냥 집에서 지내기가 일수 였다.
그렇지만, 추수감사절의 명절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기억난다.

처음 미국에 온 해에는 당시 이웃에있는한인교회의 어느 집사집에 초청을 받아,
처음 감사절 가족식탁에 초청을받아,
함께 칠면조고기와 호박파이등을 먹으며, 감사절을 경험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어느 미국인교회에서 유학생들을 초청한자리에 가서
함께 예배를드리며, 저녁을 함께 하며,
서로 나라마다 자기들의 장기나 특성들을 소개하며, 감사절을 보냈다.

감사절의 추억은 나에게 먼 이국생활에 따뜻함과 배려의 분위기를 통해,
자신의 유학생활에 활력을 주거나,
사람들사이에 나누는 정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 조상들도 추석이나,설날등 명절에 함께 친척이나,
이웃들과 정겨운 정을 나누듯
이곳사람들은 추수감사절에 그런 인간의 정을 나눈다.

해를 거듭할수록 미국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추수감사절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속에 뿌리내린 전통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와서 자주 들은 말은 서로가 감사한다.고맙다 하는 말들을 자주 인사를 주고받는다.
관공서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마켙에 물건을사도,서로 고맙다는 말을 주고 받는다.

나도 잘 안되는 영어하기에서 그래도 제일 많이 했던 말은 고맙다라는 말이었다.
나도 이곳에 여러해 지내다보니 감사하는 습성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사람이살면서,자신의 환경이나, 여러가지 인생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혜택을 받은 경우등을 경험한다.
미국생활에서 잊지 못하는 감사할 일이 생각나,몇자 적어본다.
한번은 갑자기 병원신세를 졌는데,
거기에 있는 전달훈집사라는 한인 의사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진통이 너무 심해 참을수 없어, 밤에 병원에 가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그 의사집에 전화를 하여,
그 집에 밤늦게 찾아가, 그의 진단과 진료를 받았다.
너무나 고마운 한인이었다.
그후에도 그는 나의 병원생활을 수시로 체크해주며, 돌보아주었고,
당시나는 학생 보험을가지고 있었는데,
보험회사와 그의사의 도움으로 한푼도 내지 않고,
일주일간 병원생활과 수술비가 3만불 이상이나왔지만,
치료를 잘받았다. 고마운 동포의사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켄터키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는
대륙횡단하는 자동차여행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중고자동차를 두대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밴이고, 하나는 소나타 중고차였다.

캘리포니아 주를 벗어나는 지역에는 고갯길이 많이 있었다.
힘없는 중고차 밴이 뒤에 짐을(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척이
김치랑,반찬이랑 마련해주어 그것을 뒷차에
잔뜩실어 뒷차를 견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실려 있었다) 실은 소나타차를 끌고
높은언덕길을올라가는데, 트랜스미션오일이 분출하여,
차가 잘움직이지 못하여,겨우 이웃 마을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갔는데,
그날은 토요일오후라,정비소가 반난절만 일하여,월요일까지기다려야 만한다고 한다.
또한 차의 수리비가 트랜스미션을 갈아야 하는데, 1,500달러(1,500만원)가 든다고 한다.
갈길은 아직 멀기만 하고(여행거리 1,300마일; 약1,600 킬로미터의 1/5정도 온지점에서
차가 문제가 발생),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여서, 막막했다.

마침, 우리가 두차를 연결하려면 유월이라는 이사전문업체에서
뒷자동차를 앞바퀴만 올려,견인하는 차를 빌려서,
그 지역에 있는 지점을 찾아가 그문제를 문의했는데,
거기에 있던 마음씨가 착한 종업원이 우리차를 살피더니,
이것은 트랜스미션오일만(15달러어치) 채우면,
차가 목적지가 갈수 있다고 한다.
그때,그종업원이 말대로 차는 무사히 올수 있었다.
지금생각해도 그에게 너무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모든 감사할 일이 배후에는
신의 기이한도움의 손길과 신의 응답의 역사가 있었다.

신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는 한번은 한국에서 동료들과 함께 바닷가 해변에,
하루 여름 수련을 가서 수영을 하다가,
해변의 바다의 소용돌이가 이는 지역에 빠져,
아무리 수영을 하여,빠져 나오려고 했지만,나올수 없었다.
내 힘이나 실력으로는 그곳을 빠져 나올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물에 빠져 죽는구나,생각이 들면서,
내가 믿는 신에게 절대절명의 순간에,
제발 살려 달라고 짧은순간에 긴급한기도를 드렸는데,
그때 갑자기 큰 파도가 내 등뒤에 부딪히면서,
그 부딛치는 힘에 의해, 그 소용돌이를 빠져나올수 있었다.
그 일로 신이 과연 살아계시는 구나,
그리고 신은 반드시 신의 자녀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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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마음

세상을 창조한 신은 홀로 천지를 만들고, 주재하지만,
그는 한 공동체로 신의 본성이나, 신의 역활을 감당하고 있다.
창조주 신은 그안에서 서로 관계(독특한 관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를 성립하고 있는 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섭리를 통해,
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함께 신의 역활을 감당한다.
이점을 인간이 이해할수 없지만, 신의 관계는 마치 인간의 가족관계처럼,
그안에서 서로 역활을 분담하며(아버지는 세상을 있게 하였고, 세상을 돌보는 역활을,
아들은 세상에 있는 인생들을 아버지와 연결하는 중보하는 역활을,
영은 아들에게로 나오는 인생들을 인도하는 역활을),
세상에 있는 인생들을 신 자신과의 관계나 교제안에 들어오는 길을 제시하였다.

신은 세상을 향한 그의 통치와 돌봄을 그의 아들과 그 영을 통해, 함께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임하여서,
몸소 인간의 삶을 체험하였다.
그신은 인간이 되어, 인간이 겪는 모든 삶의 고난과 고초를 겪으며,
가장 처절한 고통의 인간체험을 통해,
그는 인간의 죄를 감당하며, 십자가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신의 인간에 대한 신의 형벌과 고통을 다 담당하였다.
그리고, 인간에게 신에게로 다가올수 있는 용서와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여,
인간세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죄, 절망, 두려움, 상처, 질고, 죽음등)를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아들인 신은 그의 근본이 신이지만,
그는 신과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인생들을 위해,
그는 자신의 영광된 자리를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들이 겪는 모든 인생의 삶의 과정들을 경험하므로,
그는 그 인생들에게 신의 뜻을 보여주어,
인생들로 하여금 신을 알게 하여, 그들을 신에게로 인도한다.
아들은 인간에게 신의 본성과 모습을 알려 주었으며,
신의 마음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었다.

여느 인간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취한 그의 마음은 깊은 겸손한 태도와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고저 하는 열정의 마음이었다.
신의 아들은 인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였다.
그 마음은 신을 이해하는 마음이며,
신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며,
인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인간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모든 인간의 문제의 근본적인 상태는
바로 인간의 그 타락하고 교만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권한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마음이 신과 동등해지고저 하는 불순한 마음의 동기로 발전되어,
신 앞에 교만한 의도로 인하여,
인간속에 있는 신의 통치와 관할하에 있는 자신의 겸손한 상태를 벗어나,
그 인간들은 신과의 관계의 단절과 그로 인한 신과의 교제의 영광의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이 신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인하여, 인간이 신의 법을 어기고,
그 베푸신 혜택을 배반하여, 인간속에 죄가 들어오게 되어,
그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인간 자신속에 있는 소우주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오르고저 하려고 할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신과의 관계안에서 누리는 그 영광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만물의 그 어떤 것보다 그 상태가 부패해있고, 어두워져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심히 자신의 마음이, 거짓과 허무에 노출되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신에 대한 그릇된 이해나,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릇된 의식은 모든 일에 있어, 신의 뜻을 저버리고 살게 되었다.

그런 인간의 마음은 마치 아직 개간되지 않은채,
온갖잡초와 엉겅퀴가 나있는 황무지와 버린 땅과 같이 되어 있다.
그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고 새롭게 하는 길은 오직 신의 마음을 통해,
신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제안에 참여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사랑과 용서를 알려주는 신의 마음이 필요하다.
신의 마음을 통해, 인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안에 새로운 자신에 대한 자아상을,
그리고 그 자아상은 잃어버린 신의 형상을 회복케 하는 신의 성품를 가지게 한다.

다시말하면, 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인간의 자기이해는 자기모순이나, 자기혼돈이아니라,
자신안에 조화된 성품과 자기개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을 갖게한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마음을 통해, 신을 이해하게 되고, 신과 일치하는 마음이 되어,
신과의 관계회복과 교제의 지속적인 실행을 통해,
인간자신안에 잃어버린 신의 형상이 이루어 진다.

그 신의 마음은 인간의 내면에,
신과 단절되어 떨어져 나가버린 고아와 같은 버림받고 절망된 자신의 상태와
그 상태로 인한 자신의 상처들을 치유하며,
더 나아가 자신이 신의 소생이라는 것과 신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신으로부터 인류의 조상들 자신이 얻으려고 했던,
인간안에 있는 신의 영광에 참여할수 있는 혜택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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