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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05
    통일된 조국을 바라보며
    목동
  2. 2006/11/05
    부모의 자녀에 대한 애정표현의 유형과 그 영향들
    목동
  3. 2006/11/05
    주님의 통치하심이 의미하는 것
    목동

통일된 조국을 바라보며

사람은 태어나서 앞을 향하여 마냥 달음질하는 삶을 살아간다.
뒤를 돌이키고 싶지만, 과거로 돌아갈수 없다.
다만 우리가 과거를 추억으로만 기억할수 있다.
지나온 나날들은 우리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다.
과거의 축적된 삶의 유산들이 역사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 부터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무시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한국의 현재의 상태가
구한말의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있는 듯하다는 것을 시사분석가나, 역사가들이 이야기를 한다.
북한을 중심으로 펼쳐있는 여러국가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국의 장래가 달려있다.
현시점에서 과거의 역사에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과거에 나타난 현상들이 현재에도 비슷한 현상으로 재현되기에 그렇다.
그것이 걱정스럽다.

구한말에 열강의 각축의 외교무대에 대비하여 국력을 신장하고, 외교력을 높여,
우리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남의 나라의 영향이나 지배에서 벗어날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 것이 구한말의 조선의 우리나라였다.
앞으로 우리는 확실한 미래로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반드시 남한과 북한이 하나로 엮어지는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 준비는 정부만 국회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거기에 대비를 해야 하는데,
남북의 문화의 차이, 생활수준의 차이,
국력의 차이등을 극복하기 위한 준비를 기울여 할 것이다.

과거의 분단된 서독과 동독이 통합된 독일로 연결될때에
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통일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며, 동서독의 문화적차이,
생활수준의 차이등을 극복하느라 여러해의 힘든 일들을 거치면서,
그들은 서서히 통일된 독일의 모습을 이루어왔다.
그런데 동서독의 여러차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의 영향력이 극복은
서로의 국민들의 의식의 차이였을 것이다.
만일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결코 남한 사람들이 먼나라쳐다보듯이 북한 사람들을 대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의 형제요 핏줄을 나눈 동포인것은 부인할수 없다.

반미니,친북이니, 친미니, 반북이니 하는이념의 차이는 작금의 시대에
서로 자기진영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개념들에 빠지지 말고
민족의 거시적인 안목에서 남북한 의 상태를 바라볼 것이다.
진정 한민족의 구성원으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의식은
역사를 통해 지내온 민족의 얼을 생각하여, 둘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에,
민족의 역사로 부터 교훈을 받을 뿐 아니라,
같은 과거의 역사와 유산을 공유하는 동족으로 함께
새역사를 다시 만들어 간다는 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의식속에 그런 반쪽의식과 같은 치우친 의식에 머물러 있다면,
신이 과거에 우리 민족이 타민족에 의해 억압을 받을 때에,
해방의 복을 주신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당시 좌우로 갈리고, 각기 제각기 진영을 생각하다가,
전체가 왜곡되고 제한되어가는 민족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민족의 장래를 염려하여, 우리의 의식을 새롭게하며,
통일된 조국의 장래를 맞이하기를 기대하며,
또한 우리에게 통일의 시간이 갑자기 다가올는지,
아니면 서서히 다가올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그때가 우리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에 민족의 억압된 상태를 풀어주신 신에게 다시한번,
이민족에게 자비를 베푸사,
통일된 조국을 혼란없이, 그리고 서로 고통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신의 도움을 간구하고 싶다.

과거에 우리세대는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의 노래를 그렇게 불렀어도,
그것이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의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작금의 변화나 여러가지 사태는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막연한 현실이 아니라,
실현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서로의 국한된 이념논쟁이나, 불필요한 편견에 빠져,
서로의 힘과 세력을 낭비하여 국력을 손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이여 이민족에게 신의 복으로 통일된 민족의 국가로
태어날수 있는 국민역량이 되도록 민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바른 의식과 바른 가치관의 복을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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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녀에 대한 애정표현의 유형과 그 영향들

부모가 자녀(특히 어린 유아기에서 형성되기 쉽다)를
대하는 애정표현을 통해, 자기표현이나,
다른사람과의 감정교류와 마음을 연결하는 방법들을 자녀들은 터득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릴때에 그것을 통해, 인간관계의 형성을 어떻게 하는지를,
즉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을 배우게 된다.
부모의 양육에서 나타난 자녀에 대한 애정관계표현(감정교류와 상호 자아접촉및 영향)은
크게 네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다.

먼저는 안정된 부모의 사랑을 전제로 한 지속적인 애정관계인데,
이 관계는 부모가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자녀를 돌보며,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사랑이 변치 않아,
자녀에게 안정감을 주어 자녀들이 감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자신들을 표현할때나,
정상적인 감정교류를 통한 인간관계를 형성할때나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에 있어서 아주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건강한 관계나 교제를 형성하게 해준다.
즉 어릴때부터 부모와의 정상적인 관계안에서 돌봄을 받은 자녀가
나중에 인간관계나 교제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형성할수 있다.
이런 경우의 자녀들은 부모가 그들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대인관계나, 능동적인 자신을 표현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자녀를 더 건강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키울수 있다.
만약 자신이 이런 부모가 아니라면
자신이 먼저 주변사람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과거의 부모와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자
신을 다시 한번 재양육하는 과정을 통해, 건강한 감정적인 자신이 되어,
가까운 사람과 애정을 자주 나눌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감성적으로 바르게 표현하지 않은 경우이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가는마땅한 사랑표현을 주지않고,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애정의 결핍증을 갖도록 하여,
부모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자아개념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한다.
그래서 그 자녀는 자라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우기가 쉽지않다.
이런 경우는 괜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상적인 애정관계나, 정을 표현하기를 꺼려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깊이 사귀지 못하는 인간 감정교류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머리에 이성적으로는 사람을 사귀고 싶고,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싶은데, 자신의 감성이 따라 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상처난 경험도 있을 것이고,
따뜻한 애정을 받은 기억을 갖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표현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는 것을 배우고, 주
변에 있는 사람들과 따스하고 정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여,
인간관계나 감정교류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할 것이다.

다음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표현에 있어서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한 관계로 형성되어, 부모의 필요를 따라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자녀들은 부모의 애정표현의 피해자가 되어
자녀들은 남들과의 사랑표현이나 애정관계나,
우정관계를 유지하기가 정상적으로 갖기가 쉽지 않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잦은 인간관계의갈등을 겪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먼저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애정표현을 알것이다.
자녀는 주변의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건강한 관계나 교제를 갖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킬때에, 부모는 그문제가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인정하고,
먼저 자녀에게 건강한 애정이나 관심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는 어릴때에 부모로부터 좌절되는 감정적인 경험들이 많아서,
자신안에 감정적인 불안을 떠안고 있다고 할수 있다.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특히 그들이 애정에 굶주려 있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불만이 다른 사람에게 표출되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그로 인하여 불만과 갈등을 갖게 된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로(성적인것이나, 혹은 육체적 학대들)로 인한
억압된 감정들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해소하는데는 기억치유나, 내적치유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기억치유나, 내적치유는 억압된 감정치유에 도움이 된다.
먼저 이것을 본인스스로 하려면
내면의 자신에 대한 일기를 써본다든가?
혹은 기도나, 혹은 그것을 가지고 신(하나님)에게 나아가,
그가 베푸는 자비(사랑, 은혜)의 힘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부모와 자녀의 애정이나 사랑의 연계표현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경우는 부모에게 상당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이며,
부모도 또한 정상적인 자신의 부모로 부터 애정이나 돌봄을 받은 적이 없다.
부모들은 자녀의 인격형성이나, 대인관계감정교류의 형성에 혼란만을 초래해
자녀들은 거기에서 쉽게 벗어날수 없다.
이 아이들은 이성적, 감성적표현에 있어서나,
행위표현에 있어서도 정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자신안에서 분열적인 자아 증상을 통해,
깊은 정신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혼돈과 불안을 경험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부모가 건강치 못한 정서생활과
비인간적인 인간관계나, 문제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중독에 빠지기 쉽고,
정신적인 질병에 걸리기 쉬운 성향을 갖게 된다.
이런 경우는 전문적인 상담인을 찾아
부모자신과 자녀가 동시에 자아상담이나,
인격상담등 전문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나 자녀는 인생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다른데서 찾지 말고,
자신의 자아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고,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도록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정상적인 인간관계유지를 위해서,
자신의 주변부터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관계들을 정상적으로 할수 있도록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이 두뇌에서, 작용하는 존재인데,
이성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는 감성적인 요소들이 더 영향을 준다.
이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인 문제에
사랑의 힘이 가장 큰 힘이며, 치료제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인문제들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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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통치하심이 의미하는 것

시편97

주님이 통치하시니 땅이 즐거워 합니다. 

온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섬들이 주님을 기뻐합니다. 

주님이 계시니, 세계가 든든하게 서있습니다. 

내일에 세상에 종말이 와도,주님이 계시니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지구가 뒤틀리고 천체가 흔들려도 우리는 요동치 않습니다. 

온우주를 창조하신 이가 계시니 혼이 빠질일이 생겨나도

나가 떨어져 자빠지지 않습니다. 

 

땅에 어두움이가득하고, 악이 횡횡하고,

정의가 땅에 떨어져 얼굴들고 살수없을정도가되더라도,

세상은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계신주변은 마치 흑암에 둘러 쌓인 것처럼,

흔적도 없이 펑뚤린 하늘처럼 아무도 없는 적막한 하늘의 창공에서도,

주님이 보이지 않으신 것같으나, 거기에 주님의 보좌가 놓여 있으니,

그가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그의 보좌 앞에 불이 나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듯이

주님의 불꽃들이 적들에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발하는 빛은 전광석화와 같이 땅에 비치며,  빛에 환히드러나고,

그의 앞에서, 두려워 떠닙니다. 

옛적에 예수님 믿는 예수장이들을 잡으러 가는 길거리에서 살기등등한

바울에게 비쳐진 빛처럼, 주님의 빛은 인간의 어두움을 속속 들이 비쳐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휘황찬 빛앞에 벌거숭이가 되어 드러납니다.

 

높은 산들이 자신들의 높음을 자랑하고, 온갖 것들로 장식하며, 방어하며,

자신을 치장을 하여도, 산들을 지으신의 눈아래에서,

자신들의 높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치 그것은 다음과 같은 현상입니다. 

세계의 높은 산들처럼, 온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도, 세력인들도, 권력인들도,

유력인들도 주님앞에 나약한 존재로 드러나며,

그의 심판하시는 역사앞에 촛밀 녹듯이 그들의 간장이 녹아내리듯

그들의 마음이 떨립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임재하심은 그들의 마음을 녹입니다. 

다만 육신의눈만을 가진 인간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주님의 존재는

온만물가운데에 충만히 계십니다. 

미물도,미생물도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을 찬양하고 흠숭합니다. 

 

하늘은 주님의 (옮고 바름) 선포합니다.

우리가 푸르고 맑은 하늘을 쳐다볼때에 우리는 당신의 마음을 보는 같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하늘의 푸른 창공처럼 투명하며,

밝음이 드러나듯이 옮음으로 가득차 계십니다. 

모든 인생들이 가운데에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분의 의가 그분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분의 의앞에 인간의 불합리도, 억울함도, 강압적임도, 인간적인 모순도

봄눈 녹듯 녹아집니다.

 

이런 놀라운 주님을 어리석은 인생들은 한갖 깍아만듯 나무토막이나,

석돌같은 존재로 만들어 그것들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자랑하는 인간의 무지가 모든 신들을 섬기면서도,

정작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는 섬기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신들위에 가장 으뜸이신 주님은 우상섬김들을 통해

인간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을 창조하신 신앞에 갔을때에 그들은 놀라운 어리석음에

자신들을 가눌길 없을 것입니다. 

정작 자신들을 있게 하신 창조주를 몰라보고,

평생을 어리석게 억울하게 자신의 인생을 두고 후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조주를 찾아, 발견하고, 만나서, 그를 알아보았던 사람들은 즐거워 합니다. 

주님이 계신 땅에서 주님을 만나,

그분을 통해 자신이 건짐받은 인생들은 기뻐좋아합니다. 

인생들이 겪어가는 무지, 가난, 곤란, 미망, 허망, 억울함, 황당한 고통, 몸서리치는 고통,절망, 패배,좌절, 죽음을 통해 건짐받은 인생들이 주님을 향해,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땅의 보호받아야 인생들이 사람들의 딸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나약한자라고 여기고

주님의 보호와 보장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다행한 일이 었는지를 주님이 온세상을 심판하는 그날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을

바라보고 기뻐 좋아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높은 곳보다 높이 계신 분입니다. 

주님은 모든 신들가운데 높임을 받으십니다.  인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주님은 가장 높임을 받습니다.

인간이 다하는 온갖 정성과 찬양이 담긴 곳에서 주님은 높임을 받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고귀하고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흠송안에서

주님은 높임을 받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인생들을 주님은 보존하십니다. 

그는 주님을사랑하는 무리들의 영혼들을 영원까지 보존하시며,

그들을 괴롭히는 온갖 적들로 부터 보호하시며,

마지막에 죽음과 지옥의 저주에서 까지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빛은 의의 빛이라, 빛을 받는 이마다, 마음이 의로 가득차게 됩니다. 

주님을 기뻐합니다. 의로운 인생들은 주님의 구별되고 거룩한 이름을 두고 감사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그분을 의미합니다. 

그는 인생들을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함께 하시는 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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