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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2

No Future 세대 (The Generation with No Future)

 

홍콩의 붐시대는 홍콩 특유의 붐세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개 처음에는 중일전쟁 기간에, 그리고 이어서 1940년대 후반 국민당과 공산당 군대 사이의 내전 기간에 이 섬으로 피난해 온 이주민의 자손들이다. 이 베이비 붐세대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본토에서 그랬듯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기 저항운동의 일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런 운동들의 패배로 인하여 [심정적으로] 각인된 세대다. 그리고 이 세대의 상당수가 재구조화된 지구적 경제구조 안에서 안전한 지위를 차지하는 걸 반대급부로 하여 저항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다. 홍콩의 경우 이것은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의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실험 중 그 하나를 의미했다. 대체로 보수적인 논평가들이 여전히 칭찬하는 실험이다.

 

그러나 이 실험은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자손들을 쥐어짜는 효과를 낳았다. [남을 등쳐 먹지 못해서] 혈안인 사람들이 들끓는 심천(深圳)의 전성기 당시 아무런 규제가 없는 산업 도축장에서 [한 마리를 때려 잡아] 한밑천을 잡은 부모들에 의해서 리자청과 같이 자수성가했다는 백만장자의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사례로 하여 교육된 홍콩의 젊은이 다수가 기대할 수 있는 건 이제 삭막한 서비스 일자리와 1997년, 그리고 2007년에 반복되었던 경제 위기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경쟁자의 목을 따서라도 최고 명문대학이 제공하는 몇 자리에 들어가려는 살인적인 경쟁의 도가니 안으로 강제되고, 이런 제도에서 살아남은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지옥같은 장시간의 노동을 해야 하고 삶을 짓눌러뭉개는 [대]기업에서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강요된다. 그렇게 해서 벌어도 여전히 소득의 평균 40%를 주거비로 지출해야만 하는 삶이다.

 

현재 연소득이 100만 달러 혹은 그 이상인 홍콩 가계는 8.5%에 달하고 [이런 고소득층을 위한] 홍콩의 슈퍼 프라임 주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동시에 심각한 주택 부족 상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부자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하여 구입한 수십만 채의 비어있는 아파트와 함께 존재한다. 홍콩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하며 주택[임대]가격이 너무 높아 많은 젊은이들은 30대에 들어서까지도 부모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가 하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변두리 „신도시“의 공공주택으로 내쫓겨 일하기 위해서 다시 왕각(旺角/몽콕/왕자오) 만자(灣仔/완차이)로 출근해야만 한다. 다른 이들은 슬럼가에서 불안전하고 -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쥐어짜게 하는 - 비좁은 방을 구할 수 밖에 없도록 강제된다. 예컨대 빌딩 꼭대기나 골목길의 작은 틈에 지어진 방이다. 5만 명 이상이 말 그대로 새장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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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공주택 대다수는 주요 도심과는 먼 신제(New Territories)에 있는 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이와 관련 상세한 내용은 여기 원천소스에 있다.) 

 

 

대체로 이 도시의 지니계수는 0.537로 선진국에서 가장 불평등한 수준이며 인구의 20% 이상이 빈곤선을 밑도는 수준에서 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학대의 대상이 되고 법적으로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 2010년 까지만 해도 최저임금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해 도입된 시간당 28 홍콩달러라는 최저임금은 만자에서 공항까지 가는데 필요한 지하철 교통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부유한 외국 직장인들의 급여는 식민지 시대에 전염병이 발발한 저지대를 떠나는 영국 관료들의 수용하기 위해서 산 중턱에 지어진 고급주택을 구매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홍콩이 결코 그리스와 같은 지역들의 „아노미적인 파탄“에 처해있는 건 아니지만 과잉노동에 시달리고 과잉쇼핑에 시달리면서 비좁은 곳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해야 하는 이 도시의 청년들은 아테네를 떠나는 실업 혹은 저임금 청년들과 공통점이 많다. 미래가 저당 잡히고 그 저당권이 이미 행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청년들은 떠나기로 작정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홍콩을 떠나는 이주는 현재 1990년대1 초 반환 전 대량 이민 사태 이래 가장 빠른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아직 부상하는 동아시아 덕분에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4-5%)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알리는 미묘한 징후들이 있다.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지난 십년 간 2배 이상 증가했다. 홍콩의 문화적 ‘죽음’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제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예전엔 정부 개발계획 또는 중국본토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들이 일상적인 [잔잔한] 현상에 불과했는데 이젠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커져 점점 더 통제가 불가능한 규모로 불거진다. 최근 학생휴업과 중환(中環)가(그리고 이제 금종(金鐘站/애드머럴티), 왕각, 동라만(銅鑼灣/코즈웨이 베이)와 이 도시의 여러 다른 주요 교점)의 (재)점거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최근 현상일 뿐이다.

 


홍콩의 젊은층은 [국제]분업에서 보다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들 역시 2007/8년에  발생한 금융 위기의 뒤를 이어 전세계에서 일어선 젊은이들이 선봉에 선 저항운동의 지구적 역동성에 똑같이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태에 참여한 사람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극단주의자들(ultras)이다. 이들은 우리의 “No Future 세대”의 구성원들로서 그들 주위를 맴도는 어렴풋한 경제적,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 파멸을 직감하고 반격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이런 활동들에 적극 가담하는 이들의 출발점과 경험에는   중대한 차이들이 있다. 일부는 학생들이고, 일부는 거리에서 사는 아이들, 축구 훌리건 또는 서비스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분분(分分)한 배경에서 발생한 저항운동들은 공산주의자 이론 집단인 Endnotes제기한 „구성문제“(composition problem)로 특징 지어진 바 있다. “속성상(typically) 서로 거리를 두는  계급분파들이 서로 인정하고 때로는 함께 생활하도록 강제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질문에 깔려있는 문제[의식]은, 분분한 경험들로 [구성된 운동이란] 관점에서, 어떻게 „각각의 투쟁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분파들을”, “조직”, “조절” 또는 “단일화”시켜 통일된 하나의 운동을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특히 운동의 사회적 기반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결론은 홍콩의 운동들이 주민의 대부분과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였지만 현장에서의 운동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로 밖에 생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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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현재 홍콩을 떠나는 이민이 매년 약 6만 명 정도가 떠났던 1990년대 초기 보다 여전히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