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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22 금요일로 검색된다. 그 날 발트해에 있는 섬 뤼겐에 있는 단스케란 마을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연일 비가 줄줄 내려서 하루 앞당겨 독일 북부 발트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하는 중이었다.
발트해안(독일 사람들은 „동해(Ostsee)“라고 부른다)과 개발이 전혀 안된 우커마르크(Uckermark)의 자연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거기서 휴가를 보냈는데 언제부터인가 (서독지역이었던) 북해 지역으로 휴가지를 바꾸게 되었다. 아마 구동독지역에 속했던 발트해안 지역과 우커마르크 지역 사람들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기분이 상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 지역은 독일에서 나찌잔당이 가장 뿌리깊게 세력을 확장하고 나찌당 NPD가 기초단체의회 진출에 가장 많이 성공한 지역이다. 독일 제국의 지도를 걸어놓은 빵집에서 줄을 서 있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저건 왜 여기에 왔지?“라는 시선을 느낀다. 기분이 잡친다.
내키진 않았지만 알고 지내는 동독출신인 이웃이 주말농장이 있어서 단스케에서 며칠 저렴하게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근데 그 지역에서는 앞에서 말한 그런 시선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가서 뤼겐지역의 NPD득표율 등을 검색하는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테러가 발생했다고 보도한다. 처음엔 이슬람테러 등을 운운하더니 집에가서 뉴스를 보니 사태의 전말이 전혀 다르다.
느낌이 이상하게 겹쳤다. 독일에서도 가능한 사건? „메르키셔 슈바이쯔(Märkische Schweiz)“라고 불리는 베를린 동쪽에 있는 또 다른 초자연적인 지역에서 산행하다가 독일 국기가 계양되어 있는 집을 지나갈 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다. 혈기왕성할 땐 일부로 극우가 외국인을 기차에서 밀어 버리는 등 학대 사례가 있는 지역을 찾아가 보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지역은 아예 피해 다닌다.
근데 작년 11월 „국가사회주의지하연맹/Nationalsozialistischer Untergrund/NSU)이란 신나찌 테러조직이 10년 이상 주로 소규모 자영업을 한 터기사람을 연쇄살인한 것이 우연히 드러났다.
그때까진 수사당국이 이 연쇄살인 사건을 „되너(케밥) 살인“이라고 이름하고 범죄행위자를 잡아내기 보다는 대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마약밀매 등 조직범죄에 연루되어 그런 변을 당한 것이 아니냐고 (썩을 놈들).
그런데 우연히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관련 잘 정리된 한국일보 기사 참조), 그 과정에서 헌보청이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헌보청이 NSU에 돈을 건내 주려고 했다“ („Verfassungsschutz wollte „NSU“ Geld zukommen lassen.“/일간지 FAZ), „헌보청은 이미 1999년 NSU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Verfassungsschutz wusste schon 1999 über NSU Bescheid.“/시사주간지 Focus), „NSU: 한 단서는 헌보청의 연루로 이어진다“(„NSU: Eine Spur führt zum Verfassungsschutz.“/일간지 Hamburger Abendblatt).
사건이 이렇게 불거지자 독일 정계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연방하원은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하는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지난 목요일(2012.1.26) 만장일치로 조사위원회 결성을 통과시키고 어제 발족되었다.
연방하원 조사위원회의 첫째 임무로 조사위원회 결성신청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사위원회는 특히 연방당국이 과실 혹은 불이행으로 ... 테러집단 „국가사회주의지하연맹“의 결성과 공작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이롭게 하고 이 테러집단이 자행한 범죄행위의 진상규명과 수사를 어렵게 했는지 밝혀야 한다.“ „Der Untersuchungsausschuss soll insbesondere klären, 1. ob Fehler oder Versäumnisse von Bundesbehörden, auch in ihrem Zusammenwirken mit Landesbehörden, die Bildung und die Taten der Terrorgruppe „Nationalsozialistischer Untergrund“ sowie deren Unterstützernetzwerk begünstigt oder die Aufklärung und Verfolgung der von der Terrorgruppe begangenen Straftaten erschwert haben;“)
어디까지 밝혀질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신나찌가 악령의 귀환이 아니라 그 악령을 키운 결과다. (한번 각종 조치를 조목조목 들면서 이 주장의 근거를 제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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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älfte des Lebens
Mit gelben Birnen hänget
Und voll mit wilden Rosen
Das Land in den See,
Ihr holden Schwäne,
Und trunken von Küssen
Tunkt ihr das Haupt
Ins heilignüchterne Wasser.
Weh mir, wo nehm’ ich, wenn
Es Winter ist, die Blumen, und wo
Den Sonnenschein,
Und Schatten der Erde?
Die Mauern stehn
Sprachlos und kalt, im Winde
Klirren die Fahnen.
반쪼각난 삶
누렇게 익은 배 한아름 안고
들장미 난무하게 가득 채운체
들판은 호수로 미끄러져 들어가네
여보시오 백조님들 [날 좀] 굽어 살펴주오
그러나 백조님들은 [뮤즈의] 키스에 만취하여
초자연의 맑은 물에
머리만 적시네.
찢어지는 아픔 안고 어디가서 구할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런거리는] 겨울이 오면, 꽃들을 [다시 피게하는]
해의 양기를,
그보다 땅의 음기를 어디가서 구할까?
주고받는 말소리가 사라진 벽들은
차갑게 서있고, 지붕위로 바람만
풍향기를 삐걱거리네.
제대로 된 번역인지 모르겠다. 이해한 만큼 번역한다면 뭘 이해했는지 먼저 제시해야겠다.
이 시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출간되기 2년전인 1805년에 발간되었다. 이 시를 읽어보는 동기는 헤겔과 함께 훨더린이 뭘 추구했는지 알고 싶은데 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이 „실천“이 아니었나 한다. 헤겔이야 어찌되었던 훨더린이 말하는 실천은 „Ge-spräch“, 즉 „말 주고받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실천을 통해서 삶이 반쪽으로 남지 않고 온전하게 된다는 것을 이 시가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훨더린은 이 시에서 백조가 보여주는 (초)자연적 아름다움의 자기연관성(Selbstbezüglichkeit)에 기대지 않고 Ge-spräch를 통해서 „꽃들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상호관계성이란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시의 핵심단어는 „sprachlos/주고받는 말없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면 주노변증법이 핵심이 되고. 그러면 자기의식에서 „자기/Selbst“는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성을 통해서 마침내 형성되는 것이 되고 …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여기저기 다니게 된다. 근데 종종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때가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사랑하는 사람과 경험했던 장소를 혼자 가보면 그 장소가 썰렁하다. 남아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경험했던 것의 반쪽도 안된다. 이런 직관에 기대어 이 시를 이해해 본다.
횔더린 - Der Winkel von Hardt (하르트의 은신처) |
모든 재앙의 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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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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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동기는 횔덜린의 詩體를 점령하는 하이데거류의 온갖 잡것 말들을 걷어치우고 이 시를 맑스의 상품분석과 연관시켜 이해하는데 있다. 맑스의 상품분석의 절정이 상품물신주의에 있고, 상품물신주의의 핵심은 상품을 사회적 총체가 아니라 자기연관성으로 이해하는데 있다면 맑스의 상품분석과 비판은 횔더린이 (초)자연적인 아름다음에 가하는 비판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Ihr holden Schwäne“에는 야유가 석여있다. 이 줄의 소리를 보면 처음에 경쾌한 모음으로 시작되지만 어두운 모음으로 끝난다. „사랑스런 백조“라기 보다는 대려 „지랄스런 백조“에 가깝다. 뮤즈의 키스에 만취해서 자기연관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품물신주의의 지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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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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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아니라 ....부가 정보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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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시를 이렇게 받아들였어요. 이 시는 가을과 겨울로 나뉘어져 있죠. 인생의 절반이란 의미겠죠. 그런데 그 인생의 마지막 절반을 쓸쓸히 보내야하는 심정을 가을과의 대비로 표현한게 아닌가싶어요.노란 배(서양배는 노랗죠)가 나무에 매달리고 들장미가 만발하면 들판은 호수로 변해서 사랑스러운 백조는 키스에 취해 머리를 술에 적셔도 취하지 않아요. 겨울이 오면 어디에 가서 장미와 햇빛과 대지의 그림자를 구할것인가. 햇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죠. 연인이 없다는 뜻 아닐까요. 벽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이 불면 깃발만 요란하다는 건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고독을 말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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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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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수제트를 떠나야 했고 또 수제트가 죽어버린 "상처받은 마음"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아니라 현시에서 어떻게 시가 가능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구요. 한가지만 짚어보자면 저는 "Hälfte des Lebens"에서 2격을 목적소유격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절반"이 아니라"삶을 절반나게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합니다. 이게 뭔지 아직 명쾌하고 풍부한 내용은 없지만. 그래서 이 "반"이란 것을 생의 길이로 생각하고 "반평생"으로 번역하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기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하여 삶의 중간지점/기로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횔더린이 이 시를 발표할 때 35세였다는 점, 시편이 이야기하는 인간 생명 70세의 반이었다는 점 등에 기대어 "반평생"으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좀 매마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부가 정보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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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älfte des Lebens를 삶을 두동강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삶의 끝장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1805년이면 그 전에 이미 전쟁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을테니까요. 그리고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게 1774년이니까 아마 자살도 많이 했겠죠.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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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이 이 시의 제목을 "Die letzte Stunde/'최후 시간"라고 적었다가 지워버리고 "Hälfte des Lebens"로 고쳤다는 것에 기대어 이 제목에 삶의 끝장이란 의미도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최후 시간"을 "Hälfte des Lebens" 고쳤다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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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족난 삶"이 두동간난 삶이란 의미로서 삶의 끝장을 의미한다면 이것도 잘못된 번역이라고 봐야겠네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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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최후 시간“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횔더린에게는 다 끝난 게 아니라 길이 계속 된다는 어떤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시 제목을 „Hälfte des Lebens“로 고쳤다.
근데 이 시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 희망을 부정신학(Negative Theologie)의 방법에 기대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시가 목가적인 초자연을 노래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식이 개입하는 시를 다 비판하는 시학이라고 해 보자. 그리고 시인(의식)은 지금 „말이 사라진 벽“과 „풍향계만 바람에 삐그덕 거리는 곳“에 와 있다.
„벽(Mauer)“을 „(개인)집“을 대신하는 제유적인 표현으로 보고 또 이 집을 의식이 사는 집이라고 한다면 이 집은 썰렁하고 말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집일 것 같다. 자기만을 마주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갇힌 의식(집) 위로 부는 바람 역시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만 만들어 낼 뿐이다.
횔더린이 말하는 희망이 „공공의 집“에 있을까? 이에 대한 아무런 힌트가 없다. „Hälfte des Lebens“의 „Leben/삶“에 그 희망이 있을까? 그렇다면 2격을 목적격으로 이해할 수 없고 주격으로 이해해야 할텐데… 그러나 „삶“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횡설수설이 계속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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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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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계절에 비유했다면 겨울 다음에는 봄이죠. ou님의 해석대로 그런 희망이 담겨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Ins heilignüchterne Wasser를 heilig Wasser와 gnüchtern으로 나누어 해석했어요. 성스러운 물은 포도주, 술을 의미하고 위에 키스에 취했다는 말이 있으니까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그런데 Fahne에 술냄새라는 뜻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석한다면 heilignüchterne Wasser와 대구를 이루고 있죠. 말없이 서 있는 벽은 키스에 취한 두 백조와 대구를 이루고 이제 술냄새만 진동한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가슴이 아프다, 어디에 가서 ... 구해야 하는가..부가 정보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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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겨울은 전쟁이고 깃발은 국가를 상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보통 전쟁 때 깃발 들고 나가잖아요. 젊은이들이 깃발을 들고 전쟁터로 나갔다.. 프로이센 깃발은 검은색 독수리에요. 위에 백조와 대구를 이루죠.부가 정보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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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건 지금 독일국기는 검정, 빨강, 노랑이에요. 아마 흰색을 사용하지 않은건 나치 때문일거에요. 나치가 흰색바탕을 사용했어요.혹시 백조는 낭만주의를 상징하는게 아닐까요. 이것들 다 이성, 합리주의 거부하는 반동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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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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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를 다시 보면 Ihr holden Schwäne 당신의 사랑스러운 백조들(백조는 남성명사죠)은 키스에 취해, 신종선서할 때 보통 손을 잡고 키스를 하죠, 머리를 성스러운 취하지 않는 물에 적신다, 고개를 속인다는건 복종을 의미할 수 있어요. 신종선서가 hommage인데 나는 당신의 남자, 신하, 당신의 것이란 뜻이죠. 물은 흐르고 운동을 의미해요. 서 있는 벽은 정지, 죽음을 의미해요. 젊은이들은 죽고 깃발 소리만 요란하다.. 그런 뜻.. 흰색은 고귀한 것, 순수한 것, 비물질적인 것을 의미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