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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론

비지? 한국 사회주의권의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선 종종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의아해 할 때가 있다.

비지하면 얼른 떠오르는게 비지찌게. 고기가 귀한 시절 (1년에 한 두어번 정도 먹었었나?) 삼겹살을 넣고 끓인 비지찌게.

그래서 그런지 내 머리는 비지론에 비지와 삼겹살을 연상하고 침샘에 명령하여 군침을 흘리게 한다. 근데 뭔지 알고보니 맛이 싹 가신다.

거슬러 올라가보니 비지론은 국공합작에 기대고 있다 (노정협의 <임박한 4.11 총선과 노동자의 전략 전술> 참조).

쉽게 말해서 삼겹살이 되자는 이야긴데, 오류가 심해도 보통 심한 게 아니다. 내 뇌주름의 오류야 연상착오라고 어여쁘게 봐 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근데 국공합작에 기대어 야권연대, 비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좌파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관념론에 빠질 수 있을까 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우선 존재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한다.  아예 눈을 감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있지 않는 것을 어디다 갖다 붙였다  떼었다 한다. 한국에 중국의 공산당과 같은 공산당을 만드는 것이 현안인데, 공산당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논증한다. 마오를 읽기 전에 먼저 비트겐슈타인 읽기를 권하고 싶다.

 기초적인 존재론적 오류가 범주의 오류로 이어진다. 계급 동맹을, 다시 말해서 조직된 계급, 즉 당 간의 동맹을 사안적인 동맹과 혼돈하고 있다. 예컨대 무상급식과 같은 사안적 동맹과 조직적 동맹을 혼돈하고 있다. 사안적 동맹은 조직, 즉 당이 부재해도 이야기될 수 있는 범주다. 그러나 조직적 동맹은 당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야기 될 수 없다. 고등교육이 필요없는 상식이다.

몰역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국공합작이 있기 전에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 생사를 건 싸움을 했다. 그리고 당의 생존을 위해서 국민당 치하로 들어가지 않고 대려 국민당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리고 합작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자신 했을 때 했다. 이게 국공합작의 역사적 교훈이다.

암튼, 삼겹살은 좋아하지만 비지론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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