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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시 "Lied Vom Kindsein" 번역 주해

1. 제목

“Lied Vom Kindsein”을 “어린이존재에 대한 노래”라고 번역했는데 별로 맘에 안 든다. 매끈하지 않고 시 제목으로도 안 어울린다. 인터넷에 이 시의 번역이 검색되는데, 제목을 “유년기의 노래”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도 역시 맘에 들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Kindsein”은 흐르른 시간의 일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절대 다른 것”(성 아우구스티누스), 즉 영원에 속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시간이 이런 영원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의식과 함께 흐르기 시작한다면 “Kindsein”은 유년기라기보다는 아무런 분리가 없는 원천적인 즉자적인 상태가 아닌가 한다. 실존 유년기는 지나간 현존양식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간의 흐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시간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들려 올려져 (zeitenthoben) 지금(gegenwärtig) [의식에] präsent한  “Kindsein”이 테마가 아닌가 한다.  이런 상태가 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ontogenetisch) 보통 유년기로 제한되어 있지만 말이다.

2. 첫째 연

 Als das Kind Kind war,
 ging es mit hängenden Armen,
 wollte der Bach sei ein Fluß,
 der Fluß sei ein Strom,
 und diese Pfütze das Meer.

- “als das Kind Kind war”
언뜻 보기에 시간접속사 “als”가 앞에서 이야기된 것과 모순을 이룬다. 그러나 정관사와 함께 사용된 "Kind"와 관사 없이 사용된 “Kind"를 분석해 보면 제목의 설명에서 이야기된 것이 더욱 뒷받침된다.
[독어] 텍스트에서 사람이나 사물이 처음 언급될 때 정관사, 부정관사 모두 사용된다. 그러나 “Es war einmal ein Mädchen ..."에서와 같이 주로 부정관사가 사용되는데 이때 부정관사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독자로 하여금 대체 어떤 사람 혹은 사물인지 기대하게 만든다. 반면 정관사는 "Der Mensch hat unveräusserliche Rechte ...”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정의된 개념이 언급될 때 혹은 독자에게 뭘 가리키는지 분명할 때 처음 언급될지라도 사용된다.

정관사와 함께 사용된 “das Kind”는 역자와 함께 독자에게 뭘 가리키는지 분명한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 역자는 t시인은 여기서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가 잊지 않고 내면에 간직하는 “어린이”를 참조하고 있다. 그래서 문법적으로는 제3자의 관점에서 “Kindsein”이 주제화되지만 내용적으로는 “어린이”에 대한 직관적이고 밀접한 앎(intime Kenntnisse)이 전제되어 있다.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통한 이런 언어놀이(Sprachspiel)를 관사가 없는 우리말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분명 좋은 번역이 있을 텐데 "das Kind"를 앞의 내용을 참작해서 우선 “내 안에 있는 아이”로 번역해 보았다.

관사 없이 사용된 두 번째 “Kind”는 “온통 아이”로 번역해 보았다. 우선 “Kind”를 관사 없이 사용한 것이 역자의 언어감각엔 좀 낯설다. “Ich war [noch] ein Kind, als ich ...”해야지 “Ich war Kind, als ...” 하면 뭔가 아닌 느낌이다. 둘 다 문법적으로 맞는 문장이라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Ich war [noch] ein Kind ...”에는 “Kindsein”으로부터 벗어나와 자신의 유년기를 대상화하는, 자신을 유년이라는 집합의 한 요소로 보는 대자적인 반성의 계기가 있는 것 같다. 반면 관사 없이 “Ich war Kind”하면 “Kindsein”으로 되돌아가 다시 즉자적인 “Kindsein”이 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억지인가? 암튼, 이런 이유로 관사 없이 사용된 “Kind”를 “Kindsein”과 같은 선상에 놓고 그 즉자적인 의미를 “온통”으로 옮겨 보았다.

- "mit hängenden Armen"

인터넷에 검색된 “팔을 휘저으며”란 한글 번역은 “with its arms swinging”이란 영어번역을 참조한 것 같다. 그러나 이 표현은 원문의 의미와 좀 다른 것 같다. “mit hängenden Schultern”하면 패자의 “축 처진 어깨”를 의미한다. “팔을 휘저으며”에는 뭔가 힘이 들어가고 의식적으로 몸을 컨트롤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와 달리 원문 "mit hängenden Armen"은 팔이 혼자 놀듯 덜렁덜렁한다는 의미다. 아직 사회적으로, 군사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어린이 특유의, 몸가짐을 배우기 이전의 몸동작을 의미하는 것 같다.

- “wollte”

“욕망의 세계에서 살았다”로 옮겼다. “Kindsein”에 속하는 행동이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고스란히 취하려는 정신현상학의 감각적 확신의 행동과 유사해서 그랬다. 제3자 관점에서 서술되는 문장에서 뜬금없이 “diese Pfütze”가 등장하는데 이건 문법적으로 완전히 틀리다. 감각적 확신의 무매개성으로 이해하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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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는 중 빌 워터슨의 캘빈과 홉스가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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