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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무슨 과학 공동체(scientific community)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로운 소통으로 사회가 발전한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보편적 사회복지도 자유로운 소통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는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다.
참으로 몰상식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유방식이다. 인권이란 게 투쟁해서 따 낸 것 외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이 보편적 복지란 게 투쟁해서 쟁취한 것 외 아무것도 아니다.
보편적 복지란 게 뭔가? 몸이 아프면 일 안 가도 되고, 몸이 망가져 충전이 필요할 때 휴가가도 먹고 사는 문제에 걸리지 않다는 게 아닌가?
보편적 복지의 일부인 휴가급여, 병가급여(Lohnfortzahlung)가 도입된 건 논리적인 귀결이 아니었다. 독일의 경우 가장 치열한 노동자파업을 통해서 쟁취된 것이었다. 독일 금속노조의 이 파업은 1956.10.25에 시작해서 1957.2.8일까지 무려 16주간 진행된 파업이었다. 노동자계급투쟁이 집단이익이 아니라 사회정의, 즉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투쟁이었다.
관련 링크
http://www.vimu.info/general_04.jsp?id=mod_28_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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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일간 타쯔 기사 2012.1.26 (원문은 여기)
시민불복종 논쟁
무임 승차자! vs. 형식 페티시스트!
시민불복종 정의 : 시민불복종이란 의식적으로 비폭력적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 윤리적인 권리를 행동지침으로 삼기 때문에 그 불법 행위에 떳떳함.
논쟁배경: [핵폐기물 처리지역으로 지정된] 벤트란트의 "수천 번 드러눕기" 이니시어티브가 조직한 친가족적인 연좌봉쇄시위에 90년대 이후 시민불복종 행동이 등장한다. 몇 년 전부터 이른바 포스트자율주의 스펙트럼의 좌파급진주의 그룹들도 시민불복종이란 표제아래 행동조직을 하고 있다. 그로나 그들의 시위는 상징적인 연좌봉쇄시위를 넘어선다. 드레스덴에서는 오는 2월 신나치시위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핵폐기물용기]카스토운송을 저지하기 위해서 철로 밑 자갈바닥을 수많은 곳에서 다 걷어치워("schottern") 기차가 다닐 수 없게 한 행동이 여론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된바 있다.
("schottern")
("수천 번 드러눕기" - "X-tausendmal quer")
논쟁자
타찌오 뮐러 박사 (35세): [친좌파당] 로자-룩셈부르크재단의 대기 및 에너지정책 담당. "Castor Schottern" 컴페인 대변인. 좌파급진그룹 연합체인 “개입좌파” 조직원,
펠릭스 콜브 박사 (38세): 운동재단 창시자 및 재단위원, 아탁(attac) 공동창시자, 핵폐기물을 운송 저지 “수천번 드러눕기” 이니시어티브의 첫 호소문에 서명한 7인 중 1인.
시민불복종이 대유행이다. 근데 불복종의 한계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의 저항과 법어기기 의무에 관한 논쟁 (인터뷰어: 마르틴 카울)
타쯔: 콜브, 독일에서 시민불복종에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데, 시민불복종이란 무엇인가?
콜브: 나는 시민불복종을 소극적으로 정의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먼저 근본적으로 정의롭고 민주주의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행정조치결정]절차가 부정당한 결정으로 이어지면 법을 의식적으로 공공연하게 어기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을 수 있다. 이 때 핵심원리는 비폭력적인 행동이며 불복종에 떳떳함이다.
타쯔: 뮐러, 그쪽은 "카스토 쇼터른" – 철로 밑 자갈바닥 치워버리기 – 가 시민 불복종이라고 한다. 드레스덴에서도 경찰이 연좌시위자들을 들어 나르게 얌전하게 앉아있고 신분증을 내놓는 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뮐러: 맞다. 미안하지만 콜브의 견해는 80년대에서 유래한 거라고 생각한다. 콜브는 원칙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운운한다. 그러나 우리 생활스타일이 다른 사람의 생활터전을 파괴하는 것을 두고 어찌 정의롭다 할 수 있는가? 나는 시민불복종 개념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시민불복종은 많은 사람이 정당하게 여기는 법어기기다.
타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뮐러: 우리가 드레스덴에서 보는 것은 수천 명이 나치시위를 반대하기 위해서 촛불만 켜는 걸 넘어서는 행동을 정당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포스트자율주의 밀리외에서 유래한 우리 좌파급진그룹은 늘 이렇게 주장해왔다. 우리는 지나간 전통적인 가두투쟁의 호전성과 폼잡기를 극복하였다. 경직된 [행동]규정 역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철로 밑 자갈바닥을 제거해서 [기차가 다닐 수 없게 한다.] 나치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 너희들은 이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나?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같이 하자."
콜브: 나는 급진적인 행동이 그 자체 정당하다거나 혹은 그걸 넘어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어떻게 기획되는가에 달려있다. 뮐러가 시민불복종이라고 선전하는 예컨대 벤트란트에서의 철로 밑 자갈바닥 치워버리기 등의 새로운 행동양식들은 사회적 다수를 광범위하게 동원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론 및 사회운동의 중요한 행위자들이 멈칫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법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불복종은 공론장의 정의감에 호소해야 한다.
타쯔: 뮐러, 그쪽은 "시민불복종" 개념을 매우 유연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막판에 가서는 틀림없이 짱돌이 나르기 일쑤다.
뮐러: 우리는 개념을 주무른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 비난은 사회적인 관계와 함께 저항형식이 근본적으로 부동적인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2500년 전 그리스 민주주의자에게 묻는다면 그는 우리 민주주의는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시민불복종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데 뭔가를 바꿔보려고 하는 형식은 변할 수 없다? 난 이걸 이해할 수 없다.
타쯔: 콜브, 이건 그쪽이 보수주의자란 말 같은데?
콜브: 얼토당토 않는 소리다. 나는 1997년 당시 "수천 번 드러눕기"가 조직한 비폭력 연좌봉쇄시위 첫 호소문에 서명한 7인에 속한다. 당시 우리도 역시 범법행위를 촉구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받지 않을까 불안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지침이 되었던 것은 억압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이름과 얼굴을 내놓고 법을 어기고 떳떳해 하는 것이었다.
타쯔: 무엇이 뮐러쪽 사람들과 다른가?
콜브: "수천 번 드러눕기"는 연좌봉쇄시위를 일반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철로부수기 같은 걸 지원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엔 나도 그런 걸 역시 지원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다른 것과 결합될 수 있도록 하여 예컨대 먼저 예배를 원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법어기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노력한다. 지금에 와서는 이에 역행하는 운동이 있다. 좌파급진 스펙트럼은 시민불복종에 호소하지만 궁극적으로 사실상 거의 하나 빠짐없이 철로 밑 자갈바닥 치워버리기로 달려간다. 경찰이 오면 많은 이가 줄행랑이다.
타쯔: 하지만 결과를 보면 포스트자율주의자들이 옳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드레스덴 연좌시위에 수천 명이 참여하지 않았던가, 벤트란트의 <철로 밑 자갈바닥 치워버리기>에도 마찬가지고.
뮐러: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지 않는가. 우리의 행동양식이 사람들에게 먹여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비폭력 스펙트럼에는 많은 거부반응이 있다. 내가 주장하는 건 사회를 다시 움켜쥐려는 새로운 노력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도전으로 생각하고 심각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콜브: 잠깐. 물론 항의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다행이도 시민불복종이란 권리는 없다. 법어기기 때문에 벌금형을 받는 것은 사악한 억압이 아니라 그저 논리적인 귀결일 뿐이다. 문제는 부족하더라도 민주적인 결정을 통해서 마련된 공동규정이 있다는 걸 옳다고 여기는지 여부다.
타쯔: 옳다고 생각하는가?
콜브: 난 옳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경찰이 여성들이 출입할 수 없게 앉아있는 낙태반대자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시민불복종의 올바른 윤리적인 근거가 뭔지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주의자로서 다른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나만의 권리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법위반에 대한 형벌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뮐러: 물론 우리도 신나치를 봉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평하지만 여성을 낙태병원에서 성가지게 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평한다. 이런 윤리적인 기준을 국가가 정의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걸 생각하면 오금이 절인다.
타쯔: 뮐러, 그쪽은 "시민불복종" 개념을 순전히 전략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뮐러: 그렇게 해서 [윤리적으로] 정당한 법어기기가 정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콜브: 이젠 좌파급진주의 스펙트럼에서도 짱돌을 던지고 경찰과 몸싸움하는 게 어린애 짓이고 정치적으로 파괴적이라는 통찰이 지배적이라는 건 정말 좋다. 근데 포스트자율주의 그룹들이 시민불복종 이념을 한발 앞서 차용하는 게 틀린 이름표를 달아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라면] 이건 중기적으로 시민불복종 구상전체를 부정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꼬집어 말하자면 니네들은 무임승차하고 있다.
뮐러: 난 그걸 꼰대정치라고 한다. [G7 정상회담이 있었던] 하일리겐담에 80년대까지만 해도 골 깊게 마주하던 그룹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순한 채식주의자 대 호전주의자, 평화주의자 대 짱돌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는 그들이 함께 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계속] 갈등의 골을 좁히는 일을 한 그룹은 바로 포스트자율주의 스펙트럼이었다. 지금에 와서 니네들은 이렇게 말한다. "니네들 정치는 애들 똥싸기 식이였다. 우리 비폭력주의자들이 배울 필요가 없다." 더 꼬집어서 표현해 볼까? 우리가 무임 승차자이면 니네들은 형식 페티시스트들이다.
콜브: 전통적인 비폭력 운동이 현재 좀 쪼그라든 건 물론 인정한다. 내가 보기에 이 상황에서 비폭력 운동은 좌파급진주의와의 호환성은 줄이고 사회 중간[세력]과의 호환성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독일환경자연연맹(BUND), 독일자연보호연맹(Nabu), 노조 등도 생태계적 사회적 투쟁에 있어서 다른 중요한 파트너들이다.
뮐러: 반론을 제기한다. 핸드볼 연방리그 감독이 게임 후 “상대편은 철로를 타듯 일사불란했는데, 우리는 철로 밑 자갈바닥을 걷어치우는 걸 더디 했다.”1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행동은 사회의 일상적인 지성에 기대고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근데 서로 차이를 강조하는 건 이제 그만두고 공통점을 부각시켜야 해야 할 것 같다.
타쯔: 공통점이 있나? 어떤 거지?
콜브: 서로 통하고 연결시켜 주는 것은 분명 우리 모두가 사회가 뒤집혀지는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분석이고 그러기 때문에 시위를 원칙적으로 단지 합법적인 형식으로만 제한하는 게 틀렸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양식을 이와 같은 극적인 상황에 적합하게 하는 게 정답임과 동시에 필연이다. [강조 역자] – 그러나 언급했듯이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뮐러: 좌파급진주의 스펙트럼은 "수천 번 드러눕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허나 시위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하면 이젠 OK 해도 괜찮을 때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공통점에 다시 조금 차이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지나간 참호전으로 떨어지지 말자라고 하고 싶다. 우리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힘을 다시 함께 변혁에 사용해야 하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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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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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ausendmal quer"을 "수천 번 드러눕기"로 번역했는데, 좀 더 다듬어야겠다. 우리말에서 수는 만 단위로 끊어지지 때문에 "수천 번"을 "수만 번"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고 "quer"를 가시화된 현상, 즉 드러눕는 행위에 맞춰 번역했는데, "quer"가 함의하는 불복종의미를 살려 "삐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수만 번 삐닥", 혹은 수학적 term을 그대로 사용해서 "X-만번 삐닥"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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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첨언하자면 "myriads"의 어원은 "myrios/천"인데 천단위를 넘어 만 단위(myrias)가 되면 "셀수 없이 많은 사람", 즉 "만인"이 된다. 그래서 "X-tausendmal quer"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불복종을 지향하고 있다. 뭐, "만인 불복종운동"쯤으로 번역될 수도 있겠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