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번역시도: 훨더린의 송가 "라인강" - 7

횔더린의 찬가/송가 <라인강>을 어쩌다 번역시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늘 그러듯 별 준비없이 덤볏는데, 가면 갈수록 태산이다. 횔더린에 대하여 아는 게 고작해야  페터 헤르트링의 역사소설 <횔더린>과 그의 시를 한때 부르노 간츠(Bruno Ganz)의 목소리를 통해서 밤새 듣고 또 들었던 것이 전부다. 하나 더 있다면, 쬐끄만 좌파 출판업체 “붉은 별”(Roter Stern)이 감히 출간한 횔더린 전집을 F.시의 시민도서관에 종종 들여다 본 것 + 횔더린에 심취하여 그가 머물렀던 곳을 하나하나 찾아본 것 (아직 다 못했다.)

 


<라인강>의 내용 파악을 멈추고 그 구조를 잠깐 살펴보려고 한다. <라인강>은 15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15연을 일반적으로 3연을 하나로 하여 5부로 구분한다.

 

이렇게 구분하는 근거는 횔더린이 원래 자필원고에 <라인강> 모두(冒頭)에 쓴 글에 있다.

 

„Das Gesez [=Gesetz] dieses Gesanges ist, daß die zwei ersten Parthien [=Partien] der Form <nach> durch Progreß u Regreß entgegengesetzt, aber dem Stoff nach gleich, die 2 folgenden der Form nach gleich dem Stoff nach entgegengesetzt sind die letzte aber mit durchgängiger Metapher alles ausgleicht.“

“이 노래의 법은 첫 2 부는 형식상으로는 진보와 퇴보로 대립하나, 소재상으로는 동일하고, 다음 두 개의 부들은 형식상으로는 동일하나 소재상으로는 대립한다. 이와 달리 마지막 부는 소재와 형식을 두루 관통하고 통일하는 은유로 모든 것의 화해를 이룬다.”

 

여기서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1.“durchgängig”의 이해에 있어서 횔더린 전문가(?)들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소한 그들이 하는 말이 이해하기 힘들다. 헤겔 <정신현상학>의 <지각>편이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이 표현을  <지각>편에서 처럼 소재와 형식을 아우르는 “화해” 혹은 “통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2.“이 노래의 법”(das Gesez dieses Gesanges)이란 표현이 쉽지 않다. 법이란 건 보편적인 것인데, 이게 어찌 “이 노래”, 즉 개별적인 것의 소유물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하여 예술 작품은 “act of self-legislation”으로서 자신의 존재근거를 스스로 만든다고 떠들기도 한다. (참조: ᅠJoshua Robert Gold, Minority Report: Approaching Peter Szondi’s Hölderlin Studies, in: Russell Berman and Joshua Gold, eds., Peter Szondi and Critical Hermeneutics, S.114,  https://books.google.de/books?id=3kZkF6tSjZsC&pg=PA114&lpg=PA114&dq=das+gesetz+dieses+gesanges+szondi&source=bl&ots=tE_QFZEp8t&sig=SB1BGTUcz5NkTjrx-sMrFOVILcE&hl=ko&sa=X&ei=Wx-IVJS1O8bVPZKrgYgG&ved=0CCAQ6AEwAA#v=onepage&q=das%20gesetz%20dieses%20gesanges%20szondi&f=false)

“이 노래의 법”이란 표현은 “이 나라의 법”이란 표현과 유사하게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횔더린이 말하고자 하는, <라인강>이란 노래를 통해서 구상함과 동시에 현실화한 “노래”(Gesang”)란 우선 어느 한 “나라”처럼 풍부한 내적 분화가 (innere Differenzierung) 있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 내적 분화를 서술하는 방법, 혹은 법으로서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아우르는 변증법이 이야기되고 있다. 이 변증법이 <정신현상학>의 변증법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다.


암튼, 횔더린이 <라인강> 모두에 삽입한 “길잡이”에 근거하여 <라인강>을 5부로 구분한다. 3연을 쭉 한 부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울리히 가이어(Ulrich Gaier)는 형식과 소재의 동일 및 대립이 <라인강>에서 어떻게 서술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다섯 부를 매우 다르게 구분한다 (참조: Ulrich Gaier, Aufmerksamkeits-Ebenen. Ein Hölderlin-Lehrgang,   http://www.hoelderlin-gesellschaft.de/fileadmin/user_upload/Dokumente/Hoelderlin_Lehrgang.pdf). 근데, 내가 보기에 설득력이 없다. 글 몸체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몸체(Textkörper)에 충실한 구분은 <라인강>의 구분에서 “aber”(반면)와 “jetzt”(지금)을 간과할 수 없다. 다들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라인강>의 분화.분절의 마디에 등장하는 핵심어는 앞 두 낱말이다. 이에 따라 구분하면 <라인강>이 영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는게 보인다. (이에 대해선 다음에)

 
여기서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횔더린의 ‘모두발언’을 반영하면 <라인강> 첫 낱말이 “법”이고 마직말 낱말이 “혼돈”(Verwirrung)이라는 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