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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9

1. 유럽연합-터키 난민 송환 합의


관련 내용은 여기 참조


이 합의 관련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그리스와 터키를 선명한 선으로 가를 수 없다는 것.

 

난민의 [독일행] 발칸루트 봉쇄보단 그리스가 유럽연합 외부 경계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이 더 자자했었다. 지도를 보자. 그게 지리적으로 가능한지.

 

 

http://plansetguides.free.fr/guides/grece/greece_map.gif

 

 

이번 합의는 그리스와 터키 간의 경계선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 같다.

 

유럽의 “외재적 정체성”(레미 브라크, 유럽. 외재적 정체성, 1993/Remi Braque, Europa. Eine exzentrische Identität, 1993)의 구성 요소의 하나가 되는 그리스의 문화권은 에게 해를 넘어 소아시아를 포함했었다. 이 문화권은 오스만 제국까지 그 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그리스가 [국수주의] 땅따먹기를 시도함으로써 단절되었다.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한 터키의 반격으로 터키에 살고 있었던 그리스인들이 터키 본토에서 다 추방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터키 문화권의 맥이 살아있었을까?  


이번 합의로 유럽연합의 외부 경계선이 터키까지 확장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한때 동결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과정이 재개된 건 사실이다.

 

터키는 유럽연합의 요구에 '열심히 숙제를 다했지만' "선처 받는 동반자 관계"("privilegierte Partnerschaft"-메르켈)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다부톨루가 창안한 "전략적 깊이"라는 구상 아래 아랍권의 헤게몬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전략적 깊이" 구상이 빗나간 현재 다시 유럽연합에 접근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 같다.

 


2. 전 독일외무상 베스터벨레 별세 (관련 기사)

 

정치인들은 공론의 일부다. 시대의 흐름을 가르는 혹은 종합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까? 그들의 죽음이 하나의 사실로 다가올 뿐 별다른 감정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베스터벨레의 별세는 좀 다르다. 사람이라면 다 백혈병과의 투쟁에서 이기라는 응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연민의 정인가?

 

항상 시끌벅적 '나'를 내세웠던 베스터벨레가 투병 중 공중에 내보였던 모습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 상대를 배려하는 조용한 모습.    

 

남편을 위해서 책을 썼다는 말, 동성애자들의 결혼이 "이등결혼생활"("Ehe zweiter Klasse", 슈피겔 인터뷰)이 아니라는 말, 깊은 내면이 있는 동반의 삶이라는 말 등 삶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애도의 마음이 깊어졌는지 모르겠다.

 

단지 '등록된 동반자'란 지위밖에 부여되지 않은 동성애 커플이지만 메르켈 총리는  "[베스터벨레의] 남편과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 한다. 거침없이 "남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남편'의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베스테벨레의 별세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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