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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독일 이상주의의 가장 오래된 체계구상 -1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이어받으면서 이에 대립하는1 윤리학.
 현재 태동하고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날 형이상학은 온통 도덕의 몫이 될 것이다. 윤리학을 다루는 칸트가 제시한 실천적인 [이성의] 요청 두 개는  단지 장차 윤리학의 언저리에서만 놀았지 [그 진수를] 다 길러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윤리학은 모든 이념들을, 혹은 이와 다를 바 없는, 모든 실천적인 요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아우르는 체계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첫째 이념은 물론 자기 자신을 절대 자유로운 존재(Wesen)로 표상하는 관념이다. 자유로운, 자신을 의식하는 존재와 함께 동시에 총체적인  세계가 - 무로부터  등장한다. [이것이야 말로] 참답고, 거슬러 올라가 생각할 수 있는(gedenkbar)  유일한 무로부터의 창조다. - 여기서 나는 물리의 영역들로 내려간다. 이때 제기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도덕적인 존재 앞에서 세계는 어떤 성질을 갖춰야 하는가? 나는 우리들의 더딘, 실험에 기대어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는 물리에 날개를 달아주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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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의 줄표를 이렇게 번역하였다. 이 줄표가 함축하는 것을 Konstellation(배열/구도)라는 개념아래 방대하게 연구한 사람은 Dieter Henrich. 텍스트로 돌아가기

번역:1795.2.4 셸링이 헤겔에게 보낸 편지

무한한 뎡야님의 [먼 미래 종교] 에 관련된 글.

Gott ist nichts als das absolute Ich, das Ich, insofern es Alles Theoretische zernichtet hat, in der theoretischen Philosophie also = 0 ist. Persönlichkeit entsteht durch Einheit des Bewusstseins. Bewusstsein aber ist nicht ohne Objekt möglich; für Gott aber d.h. für das absolute Ich gibt es gar kein Objekt, denn dadurch hört es auf, absolut zu sein. -  Mithin gibt es keinen persönlichen Gott, und unser höchstes Bestreben ist die Zerstörung unserer Persönlichkeit, Uebergang in die absolute Sphäre des Seins, der aber in Ewigkeit nicht möglich ist  - daher nur praktische Annäherung zum Absoluten, und daher - Unsterblichkeit.

신은 절대자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이론적인 걸 완벽하게 파괴하고 없애버렸다는 한에서 절대자아다. 고로 이 자아는  이론철학에서는  텅 빈 껍데기일 뿐이다. 인격체는 의식의 통일로 생성된다. 나아가 의식은  대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 다시 말해서 절대자아에게는 전혀 대상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더 이상 신, 절대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체로서의 신은 없고, 다만 우리 인격체의 파괴와 존재의 절대영역으로의 이행만이 우리가 최고로 열망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절대영역으로의 이행은 영원토록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직 절대자를 향한 실천적인 접근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 끝없이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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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횔더린: 판단과 존재 (Urteil und Sein)

판단(Urteil)은  가장 고귀하고 엄밀한 의미에서 지적 직관에서 더없이 친밀하게 통일되어 있는 객체와 주체의 [Subjekt-Objekt=Selbstbewusstsein/자의식, 역자] 근원적인 분리다. 이 분리에 의해 비로써 객체와 주체가 가능하게 되는바, 근원분리(Ur=Teilung)라 할 수 있다. 분리의 개념에 이미 객체와 주체가 상호 관계하는 관계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또한 객체와 주체가 각자 일부를 이루는 전체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있다.  <<나는 나다>>[라는 판단]은  이런  근원분리의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례다. 다만 이론적인 근원분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실천적인 근원분리에서는 [자아가] 비자아에 대립하지, 자기 자신에  대립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성]과 가능성은 구별되어 있는데, 그 구별이란 간접적인 [대상] 의식과 직접적인 [자아] 의식간의 구별과 같다. 내가 어떤 대상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경우, 나는 단지 어떤 대상에 현실성을 부여한 지나간 의식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의식은] 현실이 아니었던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가능성의 개념은 이성의 대상들에게는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의식 저편의] 대상들은 전혀 그들이 존재해야 하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의식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오직 필연성의 개념만이 유효할 따름이다. 가능성의 개념은 오성의 대상들에게  유효하고, 현실성의 개념은 지각과 직관의 대상들에게 유효하다.  

존재는  주체와 객체의 결합을 표현한다.

주체와 객체가 단지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형식으로만 통일되어 있지 않고 절대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경우, 다시 말해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분리할 수 없도록 통일되어 있는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지적 직관에서 그러듯이, 절대 존재(Sein schlechthin)를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외의 경우에는 절대 불가능하다. [예컨대 절대적인 자아, 혹은 절대적인 주체성 등은 말이 안 된다. - 역자].
그러나 이 [절대] 존재를 동일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나는 나다"라고 할 경우, 주체(나)와 객체(나)는 전혀 분리대상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분리할 수 없도록 통일되어 있지 않다. 정반대다. 자아는 오직 <나>로부터 <나>를 분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자의식 없이 어찌 나!할 수 있을까? 자의식은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나를 나에게 대립시킴으로써, 나를 나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그러나 이런 분리에도 불구하고 나를 대립되는 나안에서 똑같이 인식함으로써.  어디까지 똑같은 것으로 인식하는가? 물론 이렇게 질문할 수 있고 또 질문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면 [나와 나는]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성은 객체와 주체가 절대적인 통일을 이루는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동일성은 절대적인 존재와 같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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