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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4
    뷔히너의 “보이 체크” - 독일 민족성을 다루는 드라마
    ou_topia
  2. 2013/08/12
    뷔히너 - 멸시에 대한 증오
    ou_topia
  3. 2012/08/31
    아다다(1)
    ou_topia

뷔히너의 “보이 체크” - 독일 민족성을 다루는 드라마


 

“Ich nicht, Marie! Und kein Anderer auch nicht!”

“내가 [한 짓이] 아니야, 마리!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한 짓]도 아니야!”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첵”에서 인용)

 


 

나치를 환영하고 졸졸 따라다녔던 나치추종자들의 변명과 어찌 이리 똑 같을까? 뷔히너가 어쩜 이렇게 독일 민족성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나치를 예견하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형안(炯眼/Hellsichtigkeit)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의 편지 몇 장을 살펴본다.

 


 

[1833.4.5 슈트라스부르크 체류 중 집에 보낸 편지]

 

오늘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난 일을1)  언급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뭔가 도움이 되는 게 있다면, 그건 폭력(Gewalt)입니다. 우리 맨 꼭대기에 있는 자들로부터(Fürst-제일인자/영주/군주) 뭘 기대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이제 압니다. 그들이 인가하는 모든 것은, 달리 어찌할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떼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가된 것 그것조차도 우리에게 [개들에게 던져 주듯] 던져 주는 것입니다. 그걸 마치 애걸한 자비나 궁색한 애들 장난감을 던져주듯이. 그리하여 한이 없이 멍청한 얼간이 인민이 [갓난아이의 몸을 받친다고 띠로 감아 놓은 것처럼] 그의 몸이 너무 꽉 쪼이게 칭칭 감겨 옴짝달싹할 없는 상황이란 걸 잊어먹도록 하려고. 이건  양철로 만든 엽총에 나무로 만든 칼을 차고서 어린애의 군인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데, 이건 오로지 독일인에게나 통하는, 써먹고 또 써먹어서 맛이 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우리의 신분제 대표제도는2) 살아있는 이성(gesunde Vernunft)의 조롱에 불과합니다. 우리 [독일인은] 저런 [기저귀 같은] 것을 차고서 백년을 더 기어 다닐지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 모든 [좋고 나쁜] 결과들을 다 합산하면 [독일] 인민은 [틀림없이] 그들 대표자들의 고상한 연설들을, 로마제국의 황제가 어설픈 시 두 줄을 지은 왕실시인에게 2만 굴덴을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이 지불한 상황일 것입니다.3) 사람들은 청년들이 폭력을 사용한다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한이 없는 폭력상황에 빠져 있지 않단 말인가? 우리는 단지 지하 감옥에서 태어나 양육되었기 때문에 손발에는 족쇄가 채워진 채, 입에는 재갈을 문 채 구덩이/감옥에 빠져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저들은 뭘 두고 법적 상황이라고 한단 말인가? 보잘 것  없는, 그리고 썩어빠진 소수의 비자연적인 욕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국민의 대다수를 쟁기를 끄는 짐승으로 만드는  법을 두고서? 그리고 이 법은, 야만적인 군대의 폭력과 이들 괴뢰군의(Agenten) 멍청하기 짝이 없는 교활한 행위에 의해서 유지되는 이 법은 살아있는 이성에 가해지는 한이 없이 야비한 법입니다. 어떤 상황이라도(und) 나는 입과 손으로 그것에 대항하여 투쟁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내가 [지금] 일어난 [봉기군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어쩌면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인데, 이건 내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혹은 두려워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로지 내가 현재 시점에서 어떤 혁명적인 운동도 헛된 의거(Unternehmung)로 여기고, 독일 사람들을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할 준비가 되어있는 인민을 보는 사람들의 눈먼 짓에 합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리석고 미친 생각이 프랑크푸르트의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오판은 막중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오판하는 것은 물론 죄가 아닙니다.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든지(und) 독일 사람들의 무관심/무반응(Indifferenz)은 정말 모든 계산을 허사로 만드는 류의 무관심/무반응입니다. 마음 깊이 저 불행한 사람들을 애석해 합니다. 내 친구들 중 아무도 그 일에 연루되어 있지 않을 수 있을까? […]

 


 

[1834.3.10 이후 기쎈 체류 중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

 

[...] 매 순간 펜을 손에 집어 들어 [뭔가를 쓰려고 시도한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태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뭔가 돌출 구를 찾기 위해서] 저는 지금 혁명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의 무시무시한 숙명론에 눌려 빠개지고 산산조각이 난 것 같은 제 자신을 간추릴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혁명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은 인간의 속성에는 맨 정신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사람을 미치게 만드는(entsetzlich) [그저 ‘그런가 보다’하는] 무관심(Gleichheit/여기서 Gleichheit는 평등 혹은 유사성이 아니라 위의 Indifferenz와 같은 의미/역자)을 보고,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서 거역할 수 없는 폭력(Gewalt)을, 모두에게 그리고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폭력을 봅니다. 개별자는 파도물결의 거품에 지나지 않으며, 위대[한 사람]은 그저 우연이고, 천재의 통치는 인형극이며,  철칙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웃기는 몸부림일 뿐입니다. 이걸 인식하는 것이 최선이며 그걸 지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열병식군마 앞에서 그리고 [역사를 외골목 숙명으로 만들어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길목을 지키는] 역사의 건달들 앞에서 내 허리를 굽힐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는 내 눈을 피에 익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접 단두대의 칼이 된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음’(das muß)이란 말은 인간에게 세례를 주면서 사용하는 저주의 말들 중 그 하나입니다. 상황이 더 악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걸 가져다주는 사람은 저주하는 식의 발언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도둑질하는 건 도대체 무엇[누구]인가요? 나는 이 생각을 더 이상 추적하고 싶지 않습니다. (...) 라인 강 다리를 건 넌 후 나는 내 안이 다 파괴된 듯합니다. 모든 느낌이 [다 사라져] 더 이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는 자동 기계일 뿐입니다. 나의 혼을 앗아갔습니다. (...)  그대는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냐고 묻습니다. 단지 한 점에서만 살 수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그 점에서 찢겨 나와 느낄 수 있는 건 단지 내 자신의 비참함인데, 어찌 당신을 그리워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

 


 

주지하다시피, 뷔히너의 <보이 체크>는 미완성 드라마다. 완성을 기다리는 드라마다. 보이 체크가 자신의 존재근거가 되는,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하는 불륜여성 마리의 목에 꽂는 칼이 저들의 목에 꽂는 칼이 될 때 이 드라마는 완성될 것이다.

 


1) 역주: 1833.4.3 혁명적인 대학생 약 50명이 -  주로 남독 대학 학생, 나폴레옹 몰아내기 전쟁  후 결성된 외세로부터 독립하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주의 성향의 대학생동맹(Burschenschaft)에 소속된 대학생 - 독일 전국의 혁명에 점화한다는  목적으로 프랑크푸르트 중앙경찰서(Hauptwache)와 무기고(Konstablerwache)를 습격한 사건

 

2) 역주: 비엔나 회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독일연방”의 연방법(Bundesakte) 제13조는 “모든 연방국가에서는 신분제 헌법이(eine landständische Verfassung) 도입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분제의회란 계층별로 대표를 따로 파견하는 제도. 19세기 독일은 이걸로 인민대표제란 민주주의를 우회. 뷔히너가 살았던 헤쎈-다름슈타트 대공국의 헌법 제4조는 „대공국왕이 국가의 원수다. 그리고 그가 국가권력의 모든 권리를 통합하고, 그 권리들을 그에 의해서 주어지고 이 헌법정본에 기록된 규정아래, 행사한다.“

 

3) 역주: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6권에 저승에서 아이네이스의 아버지가 아이네이스에게 로마제국의 “who is who”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병으로 일찍 죽은 마르셀루스를 언급하는 두 줄이 나온다. 마르셀루스의 생모 옥타비아가 이에 감격하여 베르길리우스에게 거금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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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 멸시에 대한 증오

뷔히너가 1834년 2월, 기쎈(Gießen) 체류 중, 집에 보낸 편지.

 

 

 

[…] 나는 아무도 멸시하지 않는다.  절대 지성 혹은 교양 때문에 멸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누가 [백치 아다다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거나 [보이체크와 같이 자신을 간추리지 못하고 법을] 어기는 자가 되는 것은 그의 손과 맘먹기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 똑같은 형편이었다면 다 똑같이 되었을 것이고,  형편은 우리 밖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보란 듯 꺼내 보여주는 지성을 보자면 이건 잘해봤자 전적으로 인간정신 본질의 아주 미미한 면일 뿐이며, 교양도 잘해봤자 정신적 본질의 우연한 형태일 뿐이다. 내게 [외적인 것을 놓고] 멸시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이가 볼품없는 옷을 입고 있어서 그를 발로 짓밟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신체적으로 허약한] 내가 어떤 사람을 짓밟는 야만행위를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 야만행위를 정신의 장으로 옮겨 내가 더욱 비열한 짓을 하는 거라고 비난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이를  멍청하다고 이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멸시하는 건 아니다. 멍청함은 사람이 하는 일에 [널리 퍼진] 일반적인 성질이다. 그 존재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에게 존재하는 모든 걸 그 이름으로 부르고, 나에게 불편한 걸 피하지 못하게 가로막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자인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멀리하는 것은 내 맘대로의 판단에 맡겨진 일이다. 여기에 내가 오랫동안 아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해명이 있다. 나는 그 누구의 맘도 상하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지루한 일을 많이 피할 수 있었다. 나를 교만한 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즐거워하는 일과 분주하게 일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날 교만한 자로 여긴다. 이것은 부당하다. 나는 절대 다른 사람을 똑같은 이유로 비슷한 비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날 조소자라고 부른다. 이건 맞는 말이다. 나는 자주 웃는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웃지 않고, 어디까지나 단지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그가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됨을 놓고 웃는다. 이때 나는 그와 운명을 같이하는 나 자신을 놓고 웃는다. 사람들은 이걸 조소라고 한다. 그들은 내가 내 자신을 광인/멍청이로 만들어 그들에게 ‘여보게’ 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들은, 광기/멍청함을 오직 그들 밖에서만 찾기 때문에, 멸시하고, 조소하고 교만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나의 조소에는 또 하나 다른 게[종] 있다. 이건 그러나 멸시에서 나온 조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증오에서 나온 조소다. 증오는, 사랑이 허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허용된다.  그리고 이런 증오를 난 멸시하는 사람을 상대로 만끽한다. 교양이라 부르는 피상적인 것, 혹은 학식이라 부르는 썩어빠진 잡동사니를 손에 쥐고서 [동포]형제들을 싸잡아서 멸시하고 이기주의의 희생양으로 삼는 사람의 수는 크다.  귀족주의는  [모든] 사람이 지니는 성령에 대한 가장 파렴치한 멸시다. 이런 귀족주의에 대항하여 나는 그  무기를 그에게로 돌린다. 교만 대 교만, 조소 대 조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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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다

설거지 하다가 한눈팔면 영낙없이 그릇을 깨뜨려먹는다. 그래서 소리도 많이 들었다. 내 곁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그러면 암담하다. 아프기도 하고.

어릴 때 부잡하게 놀다가 왼손을 크게 다쳤다. 시골 병원에서 상처만을 꿰맸는지 결국 손이 오그라졌다. 수술해서 폈지만 손가락에 감각이 없고 엄지손가락은 아직도 완전히 안 펴진다. 그래서 왼손에 눈이 따라가 주지 않으면 뭘 자주 놓친다. 감각은 어떨지 몰라도 엄지손가락은 한번 더 수술해서 완전히 펼 수 있었을 거다. 근데 여태 안하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마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일 거다. 또 깨먹었냐고 뭐라하면 “내가 원래 부주의해서 그래, 미안”하고 지나가는데 익숙해 졌고.  

아다다를 좋아한다. 음치에 박치지만 ‘아다다’는 부를 줄도 안다. 그리고 내가 디지게 좋아했던 여성들은 어딘지 모르게 다 ‘아다다형’이었던 것 같다. 나도 ‘아다다형’?

암튼, 흠이 없는 것은 싫다. 매끈한 것은 더더욱 싫고. ‘칼자국/ incision'을 보라고 끊임없이 지적하고 자신의 '1월 20일'1을 이야기하는 첼란에게서2 지하로 통하는 결사(combination)를 보게 해준 데리다가3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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