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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 비판

한참 지난 연설이다. 시간이 허와 실을 밝혀 준다. 내구성이 없는 그날의 요구는 허섭스레기처럼 조용히 이는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태풍이 필요없다.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날의 요구는 정신이 이끌어 주는 방향으로 변형되어 오늘의 요구로 다가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이 과연 “기대감을 갖[을]”(염돈재) 만한 연설이었는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렇다.  

 


1.

세상 흐름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이었던 연설들은 수취인(adressee)이 분명했다. Address – 특정 대상을 향하여 하는 말인 연설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이다. 실재하는 잠재력이 수취인이 된다.

 

근데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청중은 있지만 수취인은 없다. 애매모호한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63년 6월 26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있었던 케네디의 연설은 이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수취인이 뚜렷하다. 비스마르크 총리의 재밋는 말(bon mot)을 빌려 자유대 학생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더 큰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서 죽도록 공부하는 학생, 먹고노는 학생, 그리고 차기 지도자가 될 학생으로 3등분 하고, 이 마지막 분류에 호소한다. 이들에게 너희들이야말로 세계 시민으로 교육되어 진보세력이 감당해야 할 어렵고 예민한 인류의 과제를 수행할 사람들이라고 어필한다.    

 

여기에, 특히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분명한 수취인이 없는, ‘연설’이라 할 수 없는 잡다한 것을 나열하는, 대기업 홍보이사의 발표와 다름 없는 對고객 광고에 불과하다. 좋은 것을 망라하는 겉치장에 불과하다. 정신이 없다.

 


2.

힘이 있는 연설은 수취인을 분명하게 한 다음 반성과 자아비판을 촉구한다.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반성과 자아비판의 척도와 장은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고 수취인이 추구하겠다고 스스로 작정한 가치들을 기반으로 한다. 베를린 자유대에서의 케네디의 연설은 진리,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베를린 자유대의 기풍(genius loci)을 반성과 자아비판의 장으로 삼는다. (자세한 내용은 http://blog.jinbo.net/ou_topia/649 댓글 참조)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에 저런 반성과 자아비판의 계기가 있는가? 전혀 없다. 여기에 염돈재가 끼어 들어 동방정책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자아비판이 아닌 타자비판을 일삼는다. 그래서 자아비판을 거쳐서 타자를 아우르는 전체로 나아가는 계기가 없다. 삿대질 이상이 될 수 없다.

 

드레스덴 공대의 기풍도 고작 “명문”이다. 밥그룻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진실,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비해 협소하기 짝이 없는 어필이다.
 
 
3.

세상을 바꾸는 힘을 부여하는 연설은 현상태(status quo)에 안위하지 않는다. 현상태를 타파하는 보다 큰 지평을 연다. (“So this is our goal, and it is a goal which may be attainable most readily in the context of the reconstitution of the larger Europe on both sides of the harsh line which now divides it. - 케네디 베를린 자유대 연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국제사회 기구들을 나열하는데 그친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없다. 염돈재가 자청해서 우물안 개구리 모습을 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기업 총수에게는 어울릴지 몰라도,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 정치 지도자 격에는 한참 부족한 연설이다.


“국제사회야, 나 좀 봐줘. 나 정답 알고 있지, 그지?” 정답 답습에 급급한 한국 교육이 만들어 낸 협소한 정신에서 나온 연설이 아닌가 한다. 염돈재의 말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근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이 빠져있는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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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3

독어에 “falscher Zungenschlag”이란 표현이 있다. 말을 하려면 혓바닥(Zunge)을 굴려야 하는데, 의도와 어긋나는 상황을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할 때 혓바닥이 의도와 달리 어만(falsch) 곳을 때려(Schlag/schlagen)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걸 두고 사용하는 말이다.

 

염돈재의 글에 이런 ‘falscher Zungenschlag’이 있다. 정신분석 대상이다.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는 셋째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셋째, 우리는 서독이 동독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 연평균 20억달러 가운데 77.1%는 서독 주민과 교회가 동독 친척과 교회에 보낸 물품이며,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지불한 금품은 15.7%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돈은 우편·철도·도로 사용료 및 정치범 석방 대금 등 동독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일 뿐 무상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서독”이 경제지원을 했다는데 그 주체가 애매모호하다. 브란트와 슈미트 사민당 총리들이? 아니면 기민당 콜 총리가? 앞에서 “사민당이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면” 하는데 과거 사민당이 집권할 때 그랬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하지 않은 콜 총리가 경제지원을 그만 두었다는 말인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다.

 

대동독 경제지원 실상은 이렇다.

 

우선 내독 교역을 보자.

 

출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Peter Gey, Die Wirtschaftsbeziehungen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1949-19 (1949-1989 서독과 동독간 경제관계, http://library.fes.de/pdf-files/bueros/seoul/02837.pdf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인 상승을 보이고 있다. 이어진 선은 동독으로 수출, 점선은 동독에서 수입, 마지막 선은 거래액 - ou)

 

내독 교역관계는 1982년 콜 총리 정권이 등장한 후에도 지속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단절이 없다.


염돈재는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 연평균 20억달러 가운데 77.1%는 서독 주민과 교회가 동독 친척과 교회에 보낸 물품이며,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지불한 금품은 15.7%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어디서 얻어온 수치인지 알 수 없다.


쿤레(G. W. Kuhnle)의 1993년 박사논문 “Die Bedeutung und Vorteile der deutsch-deutschen
Wirtschaftsbeziehungen für die DDR. Eine Analyse unter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paraökonomischer Aspekte”(독.독 경제관계의 의미와 이점. 경제외적 관점을 특별 반영한 분석)에 근거하여 페터 가이가 젝공한 앞 자료에 의하면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은 연평균 40억 마르크를 웃돈다. 이중 약 50% 20억 마르크는 서독 정부의 각종 정책 – 스윙, 동독통과 고속도로 사용료 등 – 에 의해서 동독 정부에 이전된 금품이다. 그리고 서독 주민이 동독에 보낸 물품을 마르크로 환산하면 추정하면 연 약 10억 마르크가  된다. 이 외 서독 주민의 동독 방문시의 강제교환금, 비자수수료, 동독 통과고속도로에서의 구매 등 12억 마르크 상당의 금품이 동독에 이전되었다. 합산하면 40억 마르크(당시의 환율로 약 20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참조: 같은 곳, 15쪽)

 

그리고 “ (…) 이 돈은 우편·철도·도로 사용료 및 정치범 석방 대금 등 동독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일 뿐 무상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고 하는데 누가 언제 무상 지원하자고 했었나?

 

그리고 호네커의 동독 주민의 물질적 생활수준을 높인다는 정책이 동독이 대외 자본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채무불능이 되었을 때 도와 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1983년 ‘공산주의 혐오주의자’ 바이에른주 총리 슈트라우스를 앞세워 콜 총리가 호네커에게 10억 마르크를 건내 주지 않았던가? 이게 동독 호네커 체제를 연장했다는 비판이 있다 (참조: 바이에른 공영방송 BR, http://www.br.de/nachrichten/strauss-kredit-ddr100.html) 우파 일간 디 벨트(Die Welt)는 이 거래를 두고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지 못했던 원수지간이 거의 최고의 친구관계가 된 경위”(“Wie aus Todfeinden ziemlich beste Freunde wurden”)라고 꼬집는다.

 


Scghon der Fototermin war eine Sensation: Am 24. Juli 1983 trafen sich Bayerns Ministerpräsident Franz Josef Strau0ß und der DDR-Staats- und Parteichef Erich Honecker im Gästehaus Hubertusstock am Werbellinsee

(출처: 디 벨트, http://www.welt.de/geschichte/article118317130/Wie-aus-Todfeinden-ziemlich-beste-Freunde-wurden.html)

 

물론, 내독경계선 지대에 설치된 자동발사장치 철거 등 반대급부가 있었다. 여기에 기민당, 사민당 다른 점이 없었다.


학자로 탈바꿈한 염돈재 학장님이 이젠 그만 빌어먹고 학자에 걸 맞는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 토종적인 주둥이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겠다는 루터의 권위를 빌려 말하자면 좆까 그걸 생긴대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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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2

염돈재의 글은 안봐도 빤한 논리전개로 이어진다.

 

동방정책의 목적이 동독정권변화에 있다는 왜곡의 이면에는 사실 동방정책의 목적이 혹은 그 결과가 동독정권강화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출발한 논리 전개는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동방정책이 단절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염돈재는 바로 저런 논리전개를 한다. 원문을 보자.

   

“둘째, 많은 사람은 기민당의 콜 총리가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계승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콜 총리는 동독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만 이어갔을 뿐 사민당 정책 기조는 계승하지 않았다. 콜 총리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사민당 요구대로 동독 탈출민의 수용을 거부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지연됐거나 불가능하게 됐을 가능성이 많다. 위기에서 벗어난 공산 잔당이 다시 세력을 얻어 통일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을 짚고 넘어가자.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은 맏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 한국의 친지 노인네들과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지난 번에는 스위스와 독일 국경사이에 있는 보덴제 호수에 다녀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거기서 머냐?” 착시현상의 한 발현이다.

 

그런데 이런 착시현상이 뚝 떨어져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두고서도 일어난다. 염돈재는 분명 역사적인 사건들의 시간성 – 공간적으로는 거리성 – 을 가늠할 줄 알 거다. 근데 그는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을 취하고 일반인들을 우롱한다. 장벽이 붕괴된 직후의 상황과 동방정책이 만들어진 시기를 동시화하고 있다.

 

 비판 본론으로 들어가자.

 

계승이 문제다. 염돈재는 동방정책을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사민당 정책 기조”고 다른 하나는 “동독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이다. 이렇게 구분하고 콜 총리가 사민당의 정책 기조는 계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민당 정책 기조”를 은근 슬쩍  “동독 탈출민의 수용을 거부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이라고 정의한다. 이어서 사민당 정책 기조가 관철 혹은 계승되었다면 “ 독일 통일은 훨씬 지연됐거나 불가능하게 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마지막에 드디어 염돈재의 글을 지배하는 팔림세스트 텍스트, 혹은 피벗 텍스트가 등장한다. 동방정책이 지속되었더라면 “위기에서 벗어난 공산 잔당이 다시 세력을 얻어 통일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 북한 지원하지 말라는 말이다. 북한 지원이 북한 체제를 강화한다는 말이다.

 

근데 동방정책의 기조가 바로 케네디의 제안의 연속 안에서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이었다. 다른 게 없었다.

 

그리고 사민당이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뭔가를 잘못 알고 있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독일 제 2 공영방송 ZDF의 탐사보도를 참조하라. (Die SPD war 1990 gegen die Wiedervereinigung – Stimmt so nicht/사민당은 1990년 통일을 반대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는] 맞지 않는 말이다.  http://zdfcheck.zdf.de/faktencheck/spd-wiedervereinigung/) 누누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통일조약을 100% 찬성한 정당은 자유민주당 FDP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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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1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NK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이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을 인용하고 싶지만 무단전재 및 재배포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부분인용을 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해 보려고 한다.

 

염돈재의 글 기조는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비로서 “(…) 독일 통일의 교훈을 올바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선 한반도 통일정책을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첫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모방한 독일 총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관한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조는 '접근을 통한 변화'였다. 염돈재는 이 정책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독일 통일 관련  “독일 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동독 민주혁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망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였나? 원문에 기대어 이 주장의 실과 허를 살펴보자.

 

“Das Ziel einer solchen Politik kann natürlich nicht sein, die Zone zu erpressen, denn kein
kommunistisches Regime, und schon gar nicht das so gefährdete in der Zone, kann sich durch
Wirtschaftsbeziehungen in seinem Charakter ändern lassen. Aber das haben schließlich auch nicht die Amerikaner verlangt, als sie Polen Kredite gaben, und das ist auch nicht der Sinn des
amerikanischen Wunsches nach verstärktem Osthandel. Uns hat es zunächst um die Menschen zu gehen und um die Ausschöpfung jedes denkbar und verantwortbaren Versuchs, die Situation zu
erleichtern.”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쏘련 지배하의]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공산주의 정권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동독지역(Zone)에서와 같이 [지위가] 위태롭기 짝이없는 정권은 더더욱,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의 [억압적인] 성격이 변화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schliesslich)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동독] 사람들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erleichtern)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철저하게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수정된 인용: http://blog.jinbo.net/ou_topia/566)

 

“접근을 통한 변화” 연설문 원문에서 동방정책의 기조가 ‘동독정권 변화’라는 걸 도출할 수 있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은 동독정권이 잘하면 변할 거라는 낭만에 젖어있지 않다. 오히려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전제한다. 매우 실용주의적인 미국 사고방식이 이 정책의 기조다.

 

그럼 염돈재는 왜 저렇게 말할까? 독해력이 문제인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 정치적 아젠다에서 도출된 주장인가?
 

진정 살펴봐야 할 문제는 교묘하게 회피한다. 문제되는 것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과 동독의 ‘민주혁명’ 사이의 관계다. 이게 긍정적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관계였는지, 학자라면 바로 이걸  연구영역으로 삼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결론이야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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