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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7

태풍

 

첨사저(尖沙咀/침사추이)는 현재 점거된 상태지만 우익이 강세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바리케이드는 쇼핑몰 밖에 세워졌고,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우산 아래 웅크려 앉아 운동의 미래를 토론하고 있다. 어렴풋한 유람선의 형체가 이들을 뒤덮고 있다. 우파는 유람선이 단지 중국본토 자본가들로만 꽉 차 있다는 허구적인 주장을 일삼는데 좌파는 말할 능력을 상실한 듯 말이 없다. 광둥어로 사랑노래를 부르는 소녀와 어설픈 기타반주를 했던 남자친구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어쩜 어딘가에서 관광 안내용 간이시설과 교통 표지판으로 바리케이드를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저 사라진 것 만은 아니다. 소녀의 노래는 이제 변형되어 도시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의 형체가 되어 빈 버스들과 비에 젖은 정부 청사들을 도배하고 있다.  

 


태풍이 왔다. 물결이 격렬하게 출렁거린다. 저 물결에 유람선이 이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above the city) 꿈쩍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중국본토와 그 외 지역에서 온 유람선의 부유한 단골손님들은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아마 경찰의 저지선과 배의 흰 벽 뒤에서 조용히 안식하고 있을 것이다. 부두가 점거된다면 항구가 다음 차례가 될까? 예의라는 홍콩의 비참한 노예근성, 우산운동의 근시안적 요구, 그리고 씁쓸한 포퓰리즘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산운동 이후의 홍콩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현재의 상황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이 사실이야말로 운동이 비록 패배로 끝날지라도 거기에 잠재력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태풍은 속성상 혼돈의 존재다. 이 섬에 물이 범람하면 상황은 이전보다 더 악화된 거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혼란에는 또한 일정한 약속이 있다. 현 상태의 파괴는 온통 파멸만이 존재하는 [지평선 위에 한 가닥의 가능성의 불빛을 켤 것이다.] 지평선에 한 가닥의 가능성이란 칼집을 낼 것이다. 여기에 [꽉 막힌 공간의 탈출구처럼] 트임이 있다. 어쩜 사람들은 [폭]우에도 불구하고 항해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우기가 수년 간 계속될지라도 사람들에겐 우산이 있다.

 

- 한 미국극단주의자와 몇몇 익명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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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6

이것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패배가 결코 불가피한 건 아니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오늘날 세계 각처의 젊은이들과 거의 마찬가지로, 그들의 미래가 [기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약탈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 가고 있는 중이며, 그리고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반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가 거대한 본토 이웃으로1 점점 더 통합되어짐에 따라서 홍콩에서는 참으로 중국이 “미래”가 되었다. 이는 청년세대 사이에 팽배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보편적인] 감각이 중국이야말로  다가오는 파멸의 근원이라는 직감으로 번역된다는 걸 의미한다.

 

[우산]운동의 무기력(inactivity)에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는 고립과 무능력을 느끼기만 하는 젊은 시위대가 많다. 특히 분노와 헌신으로 [무장된] 젊은 사람들이 경향적으로 보다 더 많이 밖으로 나오는 밤에 이 사실을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시위대들이 서로 만나고 그들의 활동을 조직화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은 현재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시위대들조차 경향적으로 그들의 불만을 “민주주의”와 “보통선거”라는 언어로 번역해서 [분출하는데 머무르고], 경계를 넘어 주강삼각주 공장 노동자들에게서 동맹자를 찾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범민주파가 [차용하고 유통시킨 우산운동 해석에 대한] 공식 버전이 [원문 terminology를 독어 Sprachreglung으로 번역하여 한글로 재번역] 운동[해석]을 지배하는 언어(lingua franca/프랑크 제국에서 통용되었던 공통어/제국의 언어/국제공통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산운동 자체는 [이 운동의 즉자적인 요소가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 “민주주의”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시위대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들은 대부분 즉각 서로 전혀 다른 지형으로 껑충 뛰어 올라 [갈라지는게] 사실이다. [운동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운동의 공식] 요구항목을 줄줄 읽어 내려가면서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계층과 다양한 연령을 막론하고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일관된다. 반면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왜 원하는가 다그치면, 시위대 대다수는 즉시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경제적인 문제의 [지형으로] 껑충 뛰어 올라 대답한다.


사람들은 천정부지의 임대료와 비인간적 수준의 불평등, 식료품비와 대중교통비의 인플레이션, 그리고 사회밑바닥에 있는 방대한 사회적 부류들을 그저 무시하기만 하는 정부의 경향을 개탄한다. 자유발언대에 선 어는 한 사람은 “왜 홍콩에 부자는 한 줌이고 가난한 사람은 그리 많은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며 – 말할 나위없이 잘못된 주장이지만 – [홍콩에서는] 통념이 된 주장을 했다. 많은 이들은 – 자유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그리스 또는 미국과 같은 곳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독하게 빈곤한 의식으로 – 그들 자신의 지도자들을 “선출”할 수 있게 되면 저들이 인플레이션, 빈곤, 그리고 금융투기 등 광범위하게 퍼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까닭에 민주주의는 일반 투표 제도의 현실적인 적용 보다는 어떻게든 모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구하기 힘든 만병통치약을 지적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An older protestor has his picture taken in front of the barricades. Visible at his right is the last character in the word for "Democracy."

(중년의 한 남성(원래 홍콩 출신이지만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가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온)은 코즈웨이 베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의 좌측에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그의 뒤에는 “레프티스트 프릭스”에 반대하자고 고무하는 다른 포스터가 있다.) 그는 시위대가 교통과 사회 질서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 너무 많은 최루가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1989년 스타일의 유혈사태가 뒤따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 [블로거 나오의 보충설명]

 

그러나 대중추수주의자(populist)의 환상과 민주주의자의 환상 둘 다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상실할 수 있다. 점령운동이 보다 포괄적인 주민층으로 확산되면서 발생한 신가담자들이 [그들의 즉자적인 요구를 범민주파 지도자들의 lingua franca로 왜곡하기 보다는 즉자적인 모양 그대로 혹은 즉자대자적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그들 자신의 요구를 바리케이드로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HKFS 대표단을 포함한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한 학생들 일부는 이런 상황에 점점 더 불만스러워 하고 사람들이 보통선거 요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다니고 있다. [이런 부류 중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우산]운동이 “혼란”스러워지고 선거개혁을 위해 시위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공격하는 경찰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 등장한 신시위대의 많은 이들에 의해서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요구들이 우산운동을 선거에 관한 요구의 범위를 넘어서도록 밀어붙이면서 실제로 이 운동을 다시 점화할 가능성이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운동을 발의한 계급 계층에서 멀리 떨어진 계급 계층이 운동에 합류하기 시작하는 조짐은 현재진행중인 운동이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국면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운동을 희석하기 보다는 운동의 파워를 증폭시켜 주는 것이다.

 

 

A poster requesting that people stay "on point" and that new protestors stop demanding things beyond electoral reform

(시위대들의 일관적인 요구(“on point”)와 우산운동의 신가담자들이 선거개혁을 넘어서 다른 사항을 요구하는 걸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벽보)

 

[범민주파의] 운동기반을 불안정하게 하는(volatile) 특유한 잠재력은 증가하는 노동자들의 참여에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홍콩노총은 총파업을 요구에 따라 10월 1일 (중국 “국경일”) 노동자 일부가 파업에 나서기 시작했다.2 최초 항만파업에 참가했던 항만 노동자들 중 여러 명이 이번 주 초 시위에 출현하여 가시적으로 시위대를 지지했다. 제2의 항만파업은 “불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거리 점거 운동이 계속 성장하면서, 특히 왕각과 같이 주거지가 더 많은 지역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운동에 합류할 개연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점령운동이 확대되어 총파업으로 귀결될 경우 이것은 우산운동의 배타적인 정치적 요구와 [대중추수목적으로] 우산운동에 가담한 포퓰리스트의 [우산운동을 우익화하려는] 추론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양자의 기반을 본질적으로 뒤흔드는 추가효과가 있다. 예를 들면, 항만 노동자들이 2번째 파업을 개시한다면, 노동자의 일상과 젊은 세대의 미래를 강탈하는데 있어서의 리자청과 다른 홍콩 자본가들의 역할을 부인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홍콩 내부의 갈등을 외부화하여 본토 중국인들과의 갈등으로 이전하는 건 전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홍콩 내부의 적대적 계급대립은 점점 더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시위는 최저강도의 저항이라는 경로에서 벗어나오게 강제되어 보다 위험하지만 동시에 보다 희망적인 미래로 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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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7년 홍콩 반환과 아시아 금융위기와 동시에 일어난 이후 중국은 아무런 합리성이 없는 주장에 의해서 경체침체의 시대와 연계되었다. 금융위기가 홍콩의 경제침체의 발단이 되었지만 말이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2. 이건 애매모호하다. “1만 파업 노동자”라는 주장에 어떤 현실적인 근거가 있든 없든, 암무튼 국경일은 전국적인 휴일이어서 노동자들은 꼭 일하러 갈 필요가 없는 날이다.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휴일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일하러 가는 대신 점거운동에 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파업”이 아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5

제 2 부: 현재


우산을 들다1


앞의 항만파업은 “우산 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례가 된다. 현재 점거시위대가 의심할 나위 없이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업노동자들처럼 시민사회에 어필하느냐  아니면 경제활동 방해를 심화하느냐라는 문제를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운동의 내부분열이 이미 이를 뚜렷하게 한다. 보다 젊은 시위대의 대부분은 “양애어평화점령중환“ 지도부 그룹을 전면 거부한다. 진건민 교수는 양진영(梁振英/렁춘잉) 행정장관이 사퇴하면 봉쇄를 끝내자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런가하면 아무런 재산상의 손실도 발생해서는 안되고 경찰이 공격할지라도 맞서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민주주의, 보통 선거, 그리고 비폭력에 관한 통속적인 말을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자들이 다름아닌 바로 저 젊은 사람들이다.


 Another poster encouraging people to use non-violence, and to fight only for democracy (but not literally)

(비폭력을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만 싸우자고 고무하는 벽보. 싸움은 말 그대로의 싸움이 아니란다.)

 

이런 노예적인 “예의” 정신에는 시위대가 사각지대에 표류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운동이 사각지대에 표류하게 되면 시위대는 운동에 힘을 실어 줄 경제활동 방해 수준을 높일 수 없는 상황에 묶일 것이다. 다수가 사유 재산을 해치는 것을 [올바른] 시민에 어울리지 않는(uncivil)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절제(inaction)는 정부로 하여금 쉽게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준다. 시위가 [제풀에 지쳐] 스스로 수그러질 때가지 방관하든지 아니면 행정장관의 사임과 같은 보다 작은 양보를 [떼주는 유화정책으로] 누그러뜨리든지 여유있게 선택을 할 수 있다. 다수가 이 난제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들이 이 난제를 두려워하면서 또 똑같이 두려워하는 것은 (소문이 자자하듯이) 폭력배 선동대들이2 북경의 지령에 따라 상황을 악화시켜 중국의 군대가 홍콩에 진주하는데 손쉬운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모순이 발생한다. 시위대 안에 잠재하는 민족주의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야기한다. 즉 경찰은 “홍콩인”이기 때문에 동맹자이자 미래의 시위 가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는 반면, 군사 개입은, 설령 경찰과 전혀 다르지 않는 전술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무조건(universally) 거부된다.  그 이유는 군부대가 중국본토인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북경의 통제를 받는 홍콩정치인들의 2차적인 통솔권이 아니라 북경의 직접적 통솔권 아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시위대는 여기서 어떠한 종류의 논리적인 모순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수가 경찰과 싸우거나 체포에 저항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입장에 확고부동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사람들이 군대에 저항하기 위해 폭력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스트의 관점은 „인민“(the people) 내부에 내재하는 적대적 대립의 인식을 차단한다. 이 관점은 모든 충돌의 근원을 외부화하여 외부그룹의 문제로 뒤바꾸기 때문이다. 외부그룹이 인종에 의하여 규정되든 아니면 민족적 소속에(national origin) 의하여 또는 단순히 이민자 신분에 의하여 규정되든 아무튼 그렇다. 이런 포퓰리즘이 지배적이면 시위대 측에서 발생하는 폭동, 재산 파괴, 그리고 나아가 “무례함”까지 “외부인”의 - 이 경우에는 중국본토인의 – 해서는 안되는 소행으로 인식되고 배제될 것이다. 이런 주장이 보편적인 진리로 여겨질 때까지 그럴 것이다.  반면 파업은 [양애어화평점령중환 운동과 같은 대중운동과 달리]  즉각  어느 한 주어진 사회에 내재하는 적대적 대립를 가시화하기 때문에 포퓰리스트의 논리를 깨는 훨씬 더 큰 경향적 속성이 있다.

 

A barricade in Mong Kok.

(왕각의 한 바리케이드)

Abandoned public buses plastered with protestors' messages.

(시위대의 메시지로 도배되어 방치된 대중버스. 이 사진 중앙 윗쪽에 있는 문구 민주장(民主牆)에 주의하라. 이 문구는 1979-1981년 중국 민주화 운동의 서단민주장의 민장을 지시하고 있다.)

 

Another barricade, this time with two cars parked in front to ensure that the police cannot easily break through. One car has had its tires removed in order to prevent it from being easily pushed away.

(왕각의 또 다른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 앞으로 경찰이 쉽게 진입할 수 없도록  2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지난 3일 꼭두새벽에 추가된 차량 1대는 쉽게 치울 수 없도록 바퀴를 아예 빼놓았다. 그때까지애도 점거자들은 구급차와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때마다 바리케이드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지난 2일 금종에서 경찰이 시위대가 구급차를 위해 바리케이드를 열자 이를 이용해 점거 공간에 진입해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투입했다. 이 사건 이후 시위대는 2번째 차량을 추가했다.) [이 설명은 울트라스의 글을 재게재한 블로거 나오의 추가설명임]

 


현재진행중인 운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몇 개 안된다. 이 외의 많은 노선은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시위대의 전술적인 정체(停滯)는 정부로 하여금 그들이 제풀에 죽어 수그러질 때까지 팔장끼고 기다리게 하는 여유를 허용한다. 시위대가 스스로 선택한 행동절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평상인에 가까운 참가자들의 눈 앞에서는 정당성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최근에 시위에 가담한 자들 사이에  운동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힘이 없이 그저  표류하는 것 같다는 불평이 자자하다. [운동이 이렇게 지속된다면] 최선의 경우, 저항운동이 시민사회를 위해 무대에 올라온 척박한 스펙타클로서의 “사회 운동”으로 떨어져 패배할 수도 있다.  장차의 NGO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덮치도록 풀어지기 이전에 잉태되어 자라나는 시민사회의 스펙타클. 최악의 경우엔, 홍콩인들이 스스로 어떠한 통제도 할 수 없는 제도 안에서, 인플레이션, 불평등, 그리고 궁핍화 등 똑같은 문제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 체제 안에서 그저 참여란 게 허용되는 보통투표권을 얻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3.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의 운동의 패배는 또한 어느 한 우익의 부활 형식을 취할 위험이 있다. 극우가 시위를 정체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다른 쪽으로 비트는 힘을 발휘하는 역량이 있는 세력이 되는 경우,  운동 전체는 민족주의의 경로로 계속해서 빠져 들어갈 것이다. 현재 “봉기들의 시대”에서 우익은 사람들을, 이들 다수가 열혈공민과 같은 그룹의 인종차별주의적 정치에 동의하든 그러지 않든 이와 무관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역량이 있다. 열혈공민의 경우, 초기엔 [우산]운동 내에서 [속은 다르지만] 평범한 모습을 취하고 „물밑작업“에 유리하게 공공연하게 출현하는 것을 자제하고 운동 지도부 “좌빨꼰대“(leftist pricks)4의 행동자제를 공격하는 전단지와 말들을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에야 비로서 왕각에서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려는 “청색 리본”(우산운동에 반대하는 시민, 북경에 의해서 조직된 것으로 전해진다)의 시도로부터 바리케이드를 사수하려는 조직원들에 의하여 가시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 상황은 극우가 서구 성향의 자본가 동맹을 위한 살인청부업자가 되었던 우크라이나에서의 경험과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우울하게 만드는 유사성이다. 

A small group of Civic Passion members defending a barricade from being dismantled by the police.

다른 시위대 소속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철거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열혈공민 소그룹 멤버들. 극우가 항상 이런 역할을 한 것 아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들로 우익은  공론장에서의 존재력(presence)을 강화했다. 그들이 노랑 셔츠에 쓰여있는 영문 „프로레타리아“에 주의하라.  이른바 „제3의 위치“ 그룹에 의한 좌파 용어의 일반적인 남용과 맥을 같이 한다.

 

Translation: Don't trust leftist pricks Be vigilant [lest they ask us] to disperse Remember that we are [doing] civil disobedience, not having a Party!!! What we want is TRUE UNIVERSAL SUFFRAGE!!! No karaoke No group photos We still haven't won No leaders No small-group discussion

물신좌교(勿信左膠) – 좌빨을 믿지말라 
제방산수(提防散水) – 해산요청을 경계하라
기주아지계공민항명(記住我地係公民抗命) 오계개(唔係開) party!!! – 
시민불복종하러 왔지 놀러온게 아니다!!!
아지계요(我地係要) 진보선(真普選) – 우린 참다운 보통선거를 원한다. 

노래방 반대
단체 촬영 반대
우리는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지도자 반대
소규모 토론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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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하 이 글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인터뷰를 지속 진행하고 [우산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다양한 정치 분파의 상태를 지속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 들은 이야기에 근거해서 작성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접촉하고 있는데 이들 일부는 초기 학생파과에 관여했다. 다른 일부는 경찰의 진압 후에 비로서 참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생생한 정보의 성격때문에 아래 글에서는 자주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과 함께 링크나 인용출처없이 정보가 제공될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홍콩에서, 조직된 폭력배 다수가 이젠 „애국적“이다. 이들은 홍콩 정부와 협력하며 베이징의 이익에 봉사한다. 그렇다고 하지만 그게 다 맞는 말은 아니다. 베이징이 후원하는 폭력배 선동대에 관한 소문은 왕각의 폭력배들이 시위대와 협력하여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있다는 보도와 맞닥뜨리고 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미래 언젠가에 건설된 홍콩의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개혁주의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을 통해 적대적 계급대립이 분명하게 양극화되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뭔가 있을 법 하다. -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레프트 21과 같은 몇몇 그룹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망상을 좀 더 지속하고 적대적 대립의 통찰을 무한정 연기시키려는 근본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입장이다. 대개 “적당한 시간”으로 행동을 연기하는 것은 어떠한 행동도 거부하는 방법일 뿐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원어는 „左膠“(좌교). 광둥어로 „좌익 페니스“라는 의미. (대체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소규모 좌파 그룹들 보다 범민주파 지도부를 지시하는 말. 膠(교)의 사전적 의미는 플라스틱. 그러나 좃대의 의미로도 사용. 이유는 膠와 페니스의 보다 흔한 은어인 鳩([비둘기] 구)의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임. “좌익 좃대“(leftist pricks)란 욕은 하루 이틀 만에 운동권 내부에 폭넓은 퍼져서 홍콩의 모든 주요 점거 지역에서 누차 들을 수 있음. 좌파들까지도 이 욕을 범민주파를 부르기에 적당하고 간략한 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의 사용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속이 쉽게 뒤틀리는 일부 민감한 좌파들은 틀림없이 [이 별것 아닌 모욕에] 삐칠 것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즉 극우가 운동 전반에서 점점 더 수용되는 슬로건을 주조하고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할 수 있는 위상을 점령했다는 데 있다. 이런 슬로건이 (또는 미적 감각이, 또는 전술이, 또는 그 어떤 무엇이) 일반화되면, 이는 우익을 사실상의 지도적 위치에 앉히는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3

범민주주의자들과 열혈공민(Passionate Citizens/열정적인 시민들)

 

이들 각각의 저항운동은, 이집트에서든, 그리스 또는 미주리에서든, 잠재력 면에서는 뿌리가 깊었지만 정치적인 지리멸멸과 실천적인 미숙함 때문에 반신불구가 되었다. [다행히도] 그리스와 스페인 같은 몇몇 지역들은 보다 응집력 있는 좌파 정치의 전통이 있었고, 이 전통이 젊은이들에 의해서 지금 재발견되고 재활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또는 태국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극우 그룹들이 운동을 사수하고, 확장하고, 조정하는 능력 면에서 다른 그룹들을 전술/전략적 차원에서 능가하면서 [운동 전체가] 급격하게 우경화되는 사조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불만을 가진 세대의 더 많은 사람들이 우익의 대열로 흡수되었다.

 

홍콩은 불행히도 많은 관점에서 전자의 사례보다 후자의 사례에 가깝다. 1967년 뒤 공산주의 성향의 좌파는 대중적 기반을 대량 상실하고 경찰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해체되었다. 동시에 홍콩정부는 노동자, 학생,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경제 재구조화 프로젝트에 자진 동참하는 것을 반대급부로 하여 어는 정도 양보하는 유화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홍콩 특유의  냉전 분위기, 즉 중국과의 관계상에서의 냉전은 중국 경제가 외국 자본에 개방된 뒤에도 여전히 지속됐다. 결과 도시국가 홍콩에서의 냉전은 모든 자생적인 급진 소그룹들로 하여금 „중국문제“에 관하여 [중국을 멀리하는] 입장을 취하게 강제함으로써 견실한 공산주의자 좌파가, 그게 어떤 류가 되었든, 소생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어떤 항의에 „폭력“이 동반되면, 그게 어떤 형식을 취하든, 지금까지도 어김없이 본토 중국공산당이 보낸 앞잡이의 공작으로 호도된다.

 

결과, 홍콩에서 "좌파"로 일커어지는 세력은 수십 년 동안 본토의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라는 천진난만한 담론에 의해 주도되었다. 북경 천안문광장 봉기에 의해 고무됨과 동시에 이를 분쇄한 무자비함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1989년 이후 홍콩의 급진적 학생 대부분은 천안문 봉기를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주도의 운동으로 묘사한 주류 매체의 회화(繪畵)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북경에서 학생이 아닌 사람들의 폭넓은 참여에도 불구하고, 북경공인자치연합회(北京工人自治联合会)의 [자생/자율적인] 결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학생의 범죄행위보다는 노동자의 그것을 더 중대하고 다루고 장기징역형에 처하는 등 더 심각하게 처벌한 국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메시지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서구의 자유주의적인 귀에 익숙한 정치경제 체제의 자유화를 촉구함으로써 서구에 어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과 유럽에 전달된 천안문 운동의 왜곡된  이미지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이미지의 영향은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게 있다면 단지 더 증폭되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런 왜곡의] 즉각적인 효과는 첫째 „향항[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의 결성이었다. 사도화(司徒華), 마틴 리, 그리고 이척얀과 같은 인물들이 이 연합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모두 어김없이  본토 정부에 의해서 비난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다. 2년 뒤인 1991년 홍콩은 첫 번째 직접 선거를 실시했다. 향항[홍콩]민주동맹(香港民主同盟)과 자유주의적 성향인 회점(匯點/Meeting Point)당 간의 선거연합이 보다 작은 자유주의 성향의 정당들의 병합과 함께 대승을 거뒀다. 1991년 선거를 계기로 하여 "친민주파"(Pro Democracy)진영이 탄생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 진영은 그 후 20년 동안 여러 차례 쪼개졌다가 다시 결합했다. 현재 이 선거 정당들이 지식인, 활동가, 그리고 NGO들의 느슨한 결합과 함께 대략 "범민주파"고 불린다.

 


범민주파의 한 날개인 활동세력의 핵심 구성원은 중국 정부의 “정치 교육” 수업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하여 결성된 학민사조(學民思潮)와 같은 중등학교 조직들과 홍콩의 7개 주요 대학 학생연합이 발기한 향항[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HKFS)다. 이 조직들은 현상적으로 매우 폭넓은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지도부는 대개 어떤 문제에서나 범민주파들과 한통속을 이룬다. 법률에 엄격히 따르고 예의의 경로(polite path)를 통해서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 학생 조직들이 종종 범민주파의 다른 날개인 보다 제도화된 세력을 밀어붙혀 불확실한 상황일지라도 우선 행동하도록 할지라도  많은 학생들은 여전히 "홍콩의 공손"(Hong Kong civility)에 자부심을 가지며, 이런 자부심은 심지어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할 때 반격하는 이들까지 비난할 정도로 팽배하다. 최근 홍콩의 정치적 사건의 모든 단계에서 HKFS와 학민사조와 같은 그룹들이 선두적이었지만 결국에는 모두 운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신제(New Territories) 개발에 맞선 시위부터 올해 7월 1일 연례 행진 뒤 잠깐 동안 진행된 점거에 이르기까지, 시위가 날개를 펼치고 이륙하는 데에는 학생조직들이 필수적이었지만 실제 경찰의 탄압에 직면했을 때에는 거의 모두가 날개를 접고 말았다.

 


이런 관계가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즉 홍콩의 젊은 시위대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약하지만 자금은 넉넉한 "범민주파" 자유주의와 범민주파의 모호한 변종인 人民力量(인민역량/People Power)을 중심으로 해서 느슨하게 그룹화된 熱血公民(열혈공민/Passionate Citizens)이라 불리는 극우 정당과 그 추종자들 사이에서 둘로 찢어지는 상황이다. 범민주파 변종 세력들은 이주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어떤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열혈공민의 경우 홍콩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조직내에서 활동하는 걸 폭넓게 받아들인 상황이다. 그래서 이주민(특히 본토 중국인)은 떠나라고 말하는 反이주민 집회에서 열혈공민의 멤버쉽의 상징인 흑황색 티셔츠가 자주 눈에 띄는 일이 되었다.

 

Wong Yeung-tat, a leader of the right-wing Civic Passion group, with an anti-CCP banner behind.

중국공산당 반대 배너 앞에 선 우익 열혈공민 그룹 지도자 황양달(黃洋達/Wong Yeung-tat)

 


다른 곳의 민족주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열혈공민은 민족적 소속으로 점철된 언어로 계급 대립을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열혈공민의 정치 분석을 보면 이들 다수가 어찌되었든 알아볼 수 있는 좌파라기보다는 론 폴과 앨릭스 존스와 같은 사람들과 더 유사하다. 이들은 홍콩의 미래의 약탈 과정에서 국제 자본가 계급의 진정한 역할은 보지 못하고 중국본토 자본가들이 취한 역할에만 주목한다. 더욱 위험한 짓은 이들이 홍콩으로 이주한, 그들보다 더 가난한 수많은 본토 중국인들을(아니면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관광객으로  그저 홍콩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을) 홍콩의 모든 자원을 빨아먹고 고갈시키려고 떼거지를 지어 들어온 메뚜기들이라고 호도하는 등 완전히 왜곡된 꼬리표를 붙이는 짓이다.

 

反본토중국 감정은 홍콩에서 폭넓게 인정받고 아주 공공연한 형식을 취하는 인종차별주의다. 이건 일상생활의 표면에서 가시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나는 인종차별주의다. 베이징의 직간접적인 검열을 받지 않는 소수 언론 매체 중 하나인 빈과일보(蘋果日報/Apple Daily)는 2012년 홍콩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메뚜기를 묘사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는 이렇게 질문하고 있다. “당신은 홍콩이 본토 부모들에게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는데 매 18분마다 100만 홍콩달러를 지불하기를 원하는가?” 이어서 올해 초엔 100명 이상이 „반메뚜기“ 캠페인에 합류해서 „중국으로 돌아가라“, „홍콩을 되찾자“와 같은 문구가 새겨진 피켓을 들고 북경어를 사용하는 구경꾼들을 싸잡아서 큰소리로 욕설하면서 부유한 본토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값비싼 보석매장이 많이 있는 관동도(廣東道)로 행진했다. 사회적 긴장이 악화된 매 순간마다 이 같은 일상적인 인종차별주의가 손쉽게 억눌린 자의 감정을 배설하게 해주는 밸브가 된다. 이 밸브의 작동구조는 한편으로는 시위대를 분열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눈을 들어 경계를 넘어 주강 삼각주에서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서 그들의 천연적인 동맹자를 찾는 걸 가로막는데 있다.

 

An anti-mainlander ad run in one of Hong Kong's biggest newspapers

(홍콩 최대 일간지의 반중국인 광고)

 

그러나 범민주파동맹의 보수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극우적인] 인민역량이나 열혈공민과 같은 그룹들 외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대안그룹이 없다. 이들은 보다 전투적인 행동에 기꺼이 나서는 몇몇 안되는 그룹들의 일부로서 제일 먼저 가시적인 대안그룹으로 떠오른다. 젊은 사람들이 범민주파의 [촛불시위와 같은 평화적인] 시위와 정당의 영합주의가 성취한게 아무것도 없는 걸 지켜보고 난 다음 단지 몇 년 만에 이들 그룹의 대중성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가장 자주 인용된 사례를 보자. 주류 민주파 정당들은 매년 6월 4일에 1989년 천안문 광장 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연례 촛불 시위를 진행한다. 열혈공민도 연례적으로 대안집회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 집회는 보다 전투적이다. 그러나 이 집회는 (그들은 ‘지역주의자’라고 부르는) 민족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 슬로건으로도 점철된 집회이기도 했다. 2013년 이들의 대안 집회에는 200명만 참가했지만 올해에는 7000명이 모였다. [민주파 정당들의] 본 행사가 여전히 훨씬 크지만 공식 시위 참가자는 같은 기간 수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현재의 “우산 혁명”에서 반중국 그룹은 다시 주변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범민주파가 활동 부족으로 날개를 내리면, 극우만이 전술적인 우세를 획득하기 위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과거 경험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전술적인 우세는 점점 더 전투적인 청년세대를 한 다발 한 다발 자기편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홍콩의 정치는 지금까지 수년 동안 이 벽에 부딪혀서 와해되었다.

 

A flyer in the umbrella movement protesting "Colonialism" and "New Hong Kong People" -- i.e., mainlanders.

(우산운동 개시 전야 왕각지역에서 찍은 식민주의와 본토중국인을 반대하는 스티커. "불요식민", 불요신향항[홍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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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참세상 정은희 기자가 번역소개한 글 „흑 대 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을 재번역해 본다.

원문 „Black vs. Yellow: Class Antagonism and Hong Kong’s Umbrella Movement“는 여기

참세상이 참조한 버전: 블로거 “나오(Nao, 鬧)”가 재게재한 버전은 여기

참세상 번역문은 여기

이 번역은 참세상 정은희 기자의 번역을 참조했다.

번역소개된 글을 재번역하는 동기는 우선 ① 이 글이 운동 서술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에 이어서 ② 번역이 글을 천천히 읽도록 강제하는데  있다. 마직막으로 ③ 번역된 글을 편집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재번역의 동기가 되었다.  

 

 

 

 

 

흑 대 황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일러두기: 이 기사에 직접 입수한 정보와 사진을 제공해준 홍콩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Translation: "Civil Disobedience"

 

제 1 부 : 역사

 

글로벌 시티(Global City)

 

상품사냥에 분주한 행인들이 잠시 멈춰 포즈를 취하고 녹색과 노란색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만(灣) 건너편 금융가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하여 셀피를 찍는다. 그 불빛 아래 유다리아항(維多利亞港/빅토리아 항)에서는 조용히 이는 물결이 다가올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바닷물은 휘돌고 있지만 거기 한 유람선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 그렇게 보인다. 첨사저(尖沙咀/침사추이) 부두에 정박한 이 유람선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핑몰 중 하나로 알려진 곳으로 트랩을 내리고 있다. 세계 도처의 부유한 방문객들이 냉난방 시설이란 구조적 안전과 잘 훈련된 보안의 혜택에서 결코 벗어나는 법이 없이 통제된 한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편리의 트랩이다. 일단 배에서 내리면 승객들은 이 도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식당과 매점에서 면세로 돈을 쓸수 있다. 이런 식이다. 우선 일식 바비큐로 배를 채운 다음 윤기나는 실내 바닥 위로 브랑우징하듯이 미끄러지면서  20세기 20년대의 스타일인 식민지 멋을 마케팅하는 부티크에서 복고풍 영국 복장들을 둘러보는 식이다.

 

바깥 부두에선 셀프를 찍기 위해 쭉 뻗은 팔의 아이폰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 어린 소녀가 남자친구의 어설픈 기타반주에 맞춰 흘러간 광둥어식 대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이젠 모두가 K 팝을 듣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톱니 모양의 홍콩 동전 [2홍콩달러 동전]  몇개를 기부금 통에 떨어트린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마치 마이크의 잡음을 쓸어내리기라도 하듯이 광둥어식 어투를 말끔히 삼켜버린다. 그녀 뒤에는 유람선이 하앟게 그리고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이것이 홍콩의 전투이며, 이 전투가 바로 홍콩이다. 태풍으로 일어나는 바람 속으로 힘껏 내던져진, 그러나  무심한 유람선의 벽과 금융가의 불빛 아래 어렴풋한 모습인 쇼핑몰에 도달하기 전에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흘러간 광둥어식 사랑 노래들. "글로벌 시티"의 전형인 이곳에서 스펙타클은 완고한 인류에 닥치는 스펙타클이다. 자본이 항구를 통해서 흘어 들어올 수 있도록, 그리고 은행들과 부동산시장들이 [자본 통제의 저편에서도] 결코 환경 통제라는 구조적 안전과 보안 저지선을 떠나는 법이 없이 아시아 본토 약탈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위해서 설계된 글로벌 시티의 스펙타클.

 

오랫동안 홍콩은 식민시대가 남겨논 벽지 이상이 아니었다. 생활수준도 아시아에 진출한 유럽열강의 다른 허브들에서 볼 수 있었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조금도 더 나은 게 없었다.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혁명 이후 산업 개발과 농업 개혁을 위한 외부의 지원이 봉기를 억제하기 위한 울타리 구축을 목적으로 하여 이 도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생활 수준과 복지 프로그램은 즉각 진척되지 않았다. 식민정권은 여전히 악랄한 정권이었다. 불안정한 사회를 통치하고 범람하는 이민자를 수용하려고 발버둥이 치는 정책은 잔혹했다. 본토 혁명 후 수십년 동안에는 뜬금없이 일어나는 봉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56년에 들어서 상황이 바뀌었다.] 1956년의 봉기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 봉기들은 차후 대영제국 [식민]정부에 대항하는 반복되는 충돌로 이어진다. 1966년 봄 또 다른 봉기의 물결이 시작됐고 1년 후 1967년 홍콩 봉기로 절정에 달한다. 이 봉기는 홍콩 역사상 가장 큰 내부 혼란이었다. 경찰에 맞선 전시민적인 시가전과 함께 대중파업이 진행되었고, 정부 청사에 대한 폭탄 공격과 우익 언론사 대리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8개월간의 공공연한 저항운동 이후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이 파괴되었으며 5천여 명이 투옥되었고, 2천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본토로 추방되었다.

 

1967년 봉기들의 영향아래 홍콩 식민정부는 대대적인 복지국가 확대에 착수했다. 거의 1백만 명에게 정부출자로 새롭게 건설한 공공 아파트 단지들을 통해서 주택을 공급한다는 ‘Colony Outline Plan’이 그 골자였다. 1950년대 이후 가시화된 제조업의 대대적인 증강은 궁극적으로 절제된 임금 인상과 병행되었고, 초기 ‘아시아의 호랑이’ 경제국 하나로서의 홍콩의 위상은 안전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홍콩은 최근에 개방한 중국본토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물 건너 중국의 첫 경제특구인 심천(深圳)과의 지리적인 근접성 그리고 중국 본토와의 역사적인 연관성이란 양대요소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몇 십년동안 “글로벌 시티”를 위한 토대가 깔렸다. 대체로 말 그대로 깔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인 리자청은 1967년 봉기 후 부동산을 헐값으로 사들여 재산을 형성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바로 이런 부동산들이 홍콩의 척추를 이룬다. 그리고 리자청은 금융가의 주요 고층빌딩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에 속하는 홍콩의 항구까지도 소유하고 있다.


 
바로 이 항구와 이를 중심으로 하여 짜여진 금융구조가  홍콩으로 하여금 1980년대에 들어와서 제조업의 역할에서 발을 빼고 지구적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센터 하나로서의 역할로 발을 내딛게 할 수 있게 하였다. 제조업이 중국 본토 항구 도시들로 이동함으로써 홍콩은 이런 신산업 허브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고 아시아 본토의 입장에서는 역수출의 핵심적인 통로가 되었다. 중국의 신공장단지들 다수가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대만의 자본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뿐만 아니라 더 멀리 떨어진 화교 디아스포라의 자본까지 여기에 참여했다. 현재 중국 내 아시아계 외국인 직접 투자는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의 직접투자를 초과한다. 미국과 유럽의 직접투자는 흔히 일본과 파트너 관계이거나 일본 자본을 대신한다.1

 

오늘날 경계를 이루면서 맞붙어 있는 중국 본토와 홍콩은 이런 분활의 완벽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심천(深圳)쪽으로는 인사불성의 개발이 강변 쪽으로 어지럽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개성이 없는, 절반은 빈 아파트 타워들이 오염물질의 연무 아래 집단을 이루고 있다. 홍콩 쪽으로는 경계지역 전체가 군대가 지키는 자연보호구역과 농업지역으로 전환되어 녹지가 강변을 꾸미고 있다. 여기선  숲에 들어가려고만 해도 특별 허가가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 이 2개의 세계는 중재 불가능한 대립처럼 보인다. 통제 불가능한,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고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심천(深圳)의 성장이 “후기산업적인” 이웃의 목가적인 녹지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대립은 매우 깊은 상호 의존을 의미하는 징후다. 분할된 양측은 서로 상대에 의해서 구성되는 상호구성관계를 갖는다. 홍콩의 자본이 없었다면 심천(深圳)이 건설될 수 없었을 것이고 심천(深圳)의 공장들이 없었다면 홍콩은 결코 쇼핑몰들과 오피스 타워들이 꽉 들어선 삭막한 사막과 주의 깊게 조성된 농경지적인 전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심천과 홍콩 사이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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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 경제 개방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역사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자본의 역할에 대해서는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 중 조반니 아리기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 중국의 시장 경제”를 보라 (훙호펑 편, 존스홉킨스대 편집부 편찬, 국내에서는 ‘미지북스’에서 2012년 출간함. 하남석 외 옮김)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