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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참세상 정은희 기자가 번역소개한 글 „흑 대 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을 재번역해 본다.

원문 „Black vs. Yellow: Class Antagonism and Hong Kong’s Umbrella Movement“는 여기

참세상이 참조한 버전: 블로거 “나오(Nao, 鬧)”가 재게재한 버전은 여기

참세상 번역문은 여기

이 번역은 참세상 정은희 기자의 번역을 참조했다.

번역소개된 글을 재번역하는 동기는 우선 ① 이 글이 운동 서술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에 이어서 ② 번역이 글을 천천히 읽도록 강제하는데  있다. 마직막으로 ③ 번역된 글을 편집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재번역의 동기가 되었다.  

 

 

 

 

 

흑 대 황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일러두기: 이 기사에 직접 입수한 정보와 사진을 제공해준 홍콩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Translation: "Civil Disobedience"

 

제 1 부 : 역사

 

글로벌 시티(Global City)

 

상품사냥에 분주한 행인들이 잠시 멈춰 포즈를 취하고 녹색과 노란색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만(灣) 건너편 금융가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하여 셀피를 찍는다. 그 불빛 아래 유다리아항(維多利亞港/빅토리아 항)에서는 조용히 이는 물결이 다가올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바닷물은 휘돌고 있지만 거기 한 유람선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 그렇게 보인다. 첨사저(尖沙咀/침사추이) 부두에 정박한 이 유람선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핑몰 중 하나로 알려진 곳으로 트랩을 내리고 있다. 세계 도처의 부유한 방문객들이 냉난방 시설이란 구조적 안전과 잘 훈련된 보안의 혜택에서 결코 벗어나는 법이 없이 통제된 한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편리의 트랩이다. 일단 배에서 내리면 승객들은 이 도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식당과 매점에서 면세로 돈을 쓸수 있다. 이런 식이다. 우선 일식 바비큐로 배를 채운 다음 윤기나는 실내 바닥 위로 브랑우징하듯이 미끄러지면서  20세기 20년대의 스타일인 식민지 멋을 마케팅하는 부티크에서 복고풍 영국 복장들을 둘러보는 식이다.

 

바깥 부두에선 셀프를 찍기 위해 쭉 뻗은 팔의 아이폰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 어린 소녀가 남자친구의 어설픈 기타반주에 맞춰 흘러간 광둥어식 대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이젠 모두가 K 팝을 듣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톱니 모양의 홍콩 동전 [2홍콩달러 동전]  몇개를 기부금 통에 떨어트린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마치 마이크의 잡음을 쓸어내리기라도 하듯이 광둥어식 어투를 말끔히 삼켜버린다. 그녀 뒤에는 유람선이 하앟게 그리고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이것이 홍콩의 전투이며, 이 전투가 바로 홍콩이다. 태풍으로 일어나는 바람 속으로 힘껏 내던져진, 그러나  무심한 유람선의 벽과 금융가의 불빛 아래 어렴풋한 모습인 쇼핑몰에 도달하기 전에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흘러간 광둥어식 사랑 노래들. "글로벌 시티"의 전형인 이곳에서 스펙타클은 완고한 인류에 닥치는 스펙타클이다. 자본이 항구를 통해서 흘어 들어올 수 있도록, 그리고 은행들과 부동산시장들이 [자본 통제의 저편에서도] 결코 환경 통제라는 구조적 안전과 보안 저지선을 떠나는 법이 없이 아시아 본토 약탈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위해서 설계된 글로벌 시티의 스펙타클.

 

오랫동안 홍콩은 식민시대가 남겨논 벽지 이상이 아니었다. 생활수준도 아시아에 진출한 유럽열강의 다른 허브들에서 볼 수 있었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조금도 더 나은 게 없었다.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혁명 이후 산업 개발과 농업 개혁을 위한 외부의 지원이 봉기를 억제하기 위한 울타리 구축을 목적으로 하여 이 도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생활 수준과 복지 프로그램은 즉각 진척되지 않았다. 식민정권은 여전히 악랄한 정권이었다. 불안정한 사회를 통치하고 범람하는 이민자를 수용하려고 발버둥이 치는 정책은 잔혹했다. 본토 혁명 후 수십년 동안에는 뜬금없이 일어나는 봉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56년에 들어서 상황이 바뀌었다.] 1956년의 봉기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 봉기들은 차후 대영제국 [식민]정부에 대항하는 반복되는 충돌로 이어진다. 1966년 봄 또 다른 봉기의 물결이 시작됐고 1년 후 1967년 홍콩 봉기로 절정에 달한다. 이 봉기는 홍콩 역사상 가장 큰 내부 혼란이었다. 경찰에 맞선 전시민적인 시가전과 함께 대중파업이 진행되었고, 정부 청사에 대한 폭탄 공격과 우익 언론사 대리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8개월간의 공공연한 저항운동 이후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이 파괴되었으며 5천여 명이 투옥되었고, 2천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본토로 추방되었다.

 

1967년 봉기들의 영향아래 홍콩 식민정부는 대대적인 복지국가 확대에 착수했다. 거의 1백만 명에게 정부출자로 새롭게 건설한 공공 아파트 단지들을 통해서 주택을 공급한다는 ‘Colony Outline Plan’이 그 골자였다. 1950년대 이후 가시화된 제조업의 대대적인 증강은 궁극적으로 절제된 임금 인상과 병행되었고, 초기 ‘아시아의 호랑이’ 경제국 하나로서의 홍콩의 위상은 안전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홍콩은 최근에 개방한 중국본토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물 건너 중국의 첫 경제특구인 심천(深圳)과의 지리적인 근접성 그리고 중국 본토와의 역사적인 연관성이란 양대요소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몇 십년동안 “글로벌 시티”를 위한 토대가 깔렸다. 대체로 말 그대로 깔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인 리자청은 1967년 봉기 후 부동산을 헐값으로 사들여 재산을 형성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바로 이런 부동산들이 홍콩의 척추를 이룬다. 그리고 리자청은 금융가의 주요 고층빌딩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에 속하는 홍콩의 항구까지도 소유하고 있다.


 
바로 이 항구와 이를 중심으로 하여 짜여진 금융구조가  홍콩으로 하여금 1980년대에 들어와서 제조업의 역할에서 발을 빼고 지구적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센터 하나로서의 역할로 발을 내딛게 할 수 있게 하였다. 제조업이 중국 본토 항구 도시들로 이동함으로써 홍콩은 이런 신산업 허브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고 아시아 본토의 입장에서는 역수출의 핵심적인 통로가 되었다. 중국의 신공장단지들 다수가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대만의 자본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뿐만 아니라 더 멀리 떨어진 화교 디아스포라의 자본까지 여기에 참여했다. 현재 중국 내 아시아계 외국인 직접 투자는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의 직접투자를 초과한다. 미국과 유럽의 직접투자는 흔히 일본과 파트너 관계이거나 일본 자본을 대신한다.1

 

오늘날 경계를 이루면서 맞붙어 있는 중국 본토와 홍콩은 이런 분활의 완벽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심천(深圳)쪽으로는 인사불성의 개발이 강변 쪽으로 어지럽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개성이 없는, 절반은 빈 아파트 타워들이 오염물질의 연무 아래 집단을 이루고 있다. 홍콩 쪽으로는 경계지역 전체가 군대가 지키는 자연보호구역과 농업지역으로 전환되어 녹지가 강변을 꾸미고 있다. 여기선  숲에 들어가려고만 해도 특별 허가가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 이 2개의 세계는 중재 불가능한 대립처럼 보인다. 통제 불가능한,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고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심천(深圳)의 성장이 “후기산업적인” 이웃의 목가적인 녹지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대립은 매우 깊은 상호 의존을 의미하는 징후다. 분할된 양측은 서로 상대에 의해서 구성되는 상호구성관계를 갖는다. 홍콩의 자본이 없었다면 심천(深圳)이 건설될 수 없었을 것이고 심천(深圳)의 공장들이 없었다면 홍콩은 결코 쇼핑몰들과 오피스 타워들이 꽉 들어선 삭막한 사막과 주의 깊게 조성된 농경지적인 전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심천과 홍콩 사이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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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 경제 개방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역사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자본의 역할에 대해서는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 중 조반니 아리기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 중국의 시장 경제”를 보라 (훙호펑 편, 존스홉킨스대 편집부 편찬, 국내에서는 ‘미지북스’에서 2012년 출간함. 하남석 외 옮김)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