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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새벽, 광주에 왔다. 비가 추적추적 왔었는데, 지금은 제법 날씨가 훤하다. 지금 여기는 전남대 예대 뒤 카페 [케냐]. 집에서(물론 그녀 집이다. 이제는 그냥 '집'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일 디보](Il Divo, 파올로 소렌티노, 2008)를 마저 보고 나왔다. (어제 밤은 너무 피곤해 눈을 금뻑거리며 중간 정도 보다가 잠이 들었었다). 정치 누와르 영화, 뭐 그 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이건 작품이 꽤나 수승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장르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복합성(compication)이 존재한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그리고 (몰랐는데) 최근, 조정환 선생의 [미네르바의 촛불](2009)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율평론] 사이트에 잘 들어 가 보지 못했는데, 오늘 들어가보니 인터페이스 가득 논쟁글들이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아주 잘 정리된 채로 말이다. (맛난 음식 앞에서 침을 삼키듯, 꿀꺽, 했다는 ...) 어제 영화를 보기 전에 그 글들을 프린트해서 읽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 프린트 뭉치를 옆에 놓고 있다.다 읽어 봐야 되겠지만, 잠깐 인상비평 하자면, 둘 다 상대를 잘못 고른듯 하다는 것(한 사람은 너무 성마르고 또 한 사람은 너무 능하다) , 정도가 문득 떠오른다. 촛불에 대한 내 생각을 음미(examine)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긴 한데, 내가 이 논쟁에 끼었다면, 아마 상당부분 조정환 선생 편에 기울었을 것이라고 고백해야 하겠다. 이택광 선생의 '촛불중간계급론'은 논의구조가 너무 단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장의 흐름을 개념화하기에는 '계급'과 '중간'이라는 말의 전통적 함의가 너무 강하다. 게다가 이택광 선생은 이 개념에 어떤 '실체성'마저 부여하고 있다. 이래서는 이 개념의 함축에 대한 증거와 논변을 가져다 대기 위해 정력을 낭비해야 하고(라캉, 랑시에르), 그렇게 되면 결국 이 논변은 권위에 기댄 논변이 되거나, 관전하는 측에서 보기에는 '변명'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택광 선생 자신도 인정했다시피, 조정환 선생의 내공이 그러한 '권위'에 고개를 끄덕일만 하지도 않아 보이고 말이다.
뭐, 하여간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조정환 선생 쪽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
이런 저런 일상을 쓰려고 했는데, 또 책 얘기나 하고 말았다. 끙 ~ 이놈에 먹물근성이라니...
카페 창문 너머 다세대 주택 지붕으로 잠자리들이 설렁설렁 날아 다닌다. 사람들이 카페 안에서 수런거린다. 설렁설렁, 수런수런 ... 평화롭다. 조금 있으면 그녀가 올 것이고, 난 자리에서 일어설 것이다. 내가 앉았던 자리엔 다른 사람이 와 앉을 것이고, 그렇게 관계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모든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되는 것처럼, 이 모든 평화로움이 내겐 기도의 순간처럼 오롯하다. 감사한다. 그 모든 관계들에게 말이다.
그러고 보니 [Il Divo]에서 이탈리아 수상 안드레아티에게 어느 지식인이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것은 신의 뜻이라고 봅니까?" 영화에서의 맥락과는 좀 다르지만, 내게 그렇게 물었다면, 그건 운명(fati)이야, 라고 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벤냐민의 '신학' 속의 그 신은 중간계급이 아니라 촛불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신의 정체는 니체의 신, 즉 디오니소스 또는 거대한 주사위, 하나의 삶(Une Vie)인 것이고? 아, 갑자기 머리가 깨질것 같다. 큼... 옴마니반메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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