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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 등록일
    2010/08/27 00:19
  • 수정일
    2010/08/27 00:20

원한이 깊은 자를 대하기는 두렵다. 이 사람은 사태를 보는 눈이 멀어 있으므로, 사랑을 모른다. 분노는 무지에서부터 나오고 사랑은 이해에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대할 때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이 사람과 같다는 사실이다.

 

원한이 깊은 자는 자신의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필요로 한다. 그 고통이 곧 스스로의 상처가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맹목, 이 어두운 본능. 감정은 상상력이 동요하는 그 순간 상상력의 에너지를 먹고 자란다. 지혜로 향하지 않고 죽음으로 향하는 상상력은 곧 원한이 될 것이다. 그 원한이 다시 상상력의 방향을 재정립할 것이고, 지혜와는 더 멀어진다.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의 원한이 타자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그 사실을, 그리고 그 고통이 결코 자신의 상처보다 작지는 않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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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괴로워하는 사이에 사랑은 저 멀리 있다. 현격함. 또는 서러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렇게 슬퍼한다. 내가 투쟁하는 그 지점에서 너는 저만치 떨어져 있고, 오히려 그것이 더 안전하다. 내가 원하는 것도 그것이다. 하지만 더러 이렇게 슬프다. 이런 경우 나는 어째서 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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