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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 등록일
    2010/08/27 13:48
  • 수정일
    2010/08/27 13:48

당대에 가장 흔하게 작동하는 심리 현상은 '원한'(ressentiment)과 원망(Wunsch)이 아닐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원망, 가장 강한 그 무의식은 사실상 결코 그 대상(objet)을 쟁취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대상과의 동일시의 본질은, 그래서 '비동일시'가 된다. 문제는 이 비동일시의 운명 안에서 인간은 지속적으로 그것의 충족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기보다, 인간은 허무를 의지하기 때문이다(니체).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러한 원망충족의 지향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이때 무의식의 카덱시스는 자신이 위장하고 있는 그 원망충족이라는 희망에 반해 '진실'을 알려주는 모든 대상들에게 적의를 품는다. '너는 끝내 좌절할 것이고, 남는 것은 허무밖에 없다'는 그 진실 말이다.

 

이 진실은 곧 생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것임에도, 원한에 휩싸인 자는 이 덧없음을 인정하기보다 거기에 화려한 미래라는 위장물을 덧씌운다. 그것이 바로 허무를 의지함으로써 원망충족의 좌절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끈질김, 이 무서운 집착. 이것들은 자신의 나르시스적 원망을 향하면서 끝없는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숨을 건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대적 현실이라면, 지금 인간들은 서로를 공멸로 몰고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이 된다. 제도와 관습, 그리고 조직적 고려가 투여된 합의 같은 것들은 이런 각자의 투쟁을 공통된 이념 아래 포섭하고, 하나의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선험적인 어떤 자아, 초월적 통각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며 그 매듭들이다. 본질적으로 분열적인 사회체는 이 과정을 통해 기능부전에 빠지지 않고, 각각의 매듭(노드)들을 통해 속도를 조절한다. 결국 분열증의 평면에 편집증의 매듭들. 이것이 사회체의 전체 구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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