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0/09/16

  • 등록일
    2010/09/16 12:32
  • 수정일
    2010/09/16 12:32

사흘을 정신 없이 보냈다. 방송대 강의, 학원 강의, 교재 준비. 그래도 근 한 달여 만에 그녀의 책을 정리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그녀의 손때가 묻은 것들을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으니 벌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기초 서적은 제일 아래 칸에, 서양 문학과 전집은 둘째 칸과 셋째 칸에, 비평서는 셋째 칸 왼쪽에, 시집은 둘째칸 왼쪽과 내 책꽂이 여기 저기에, 그리고 이론서는 제일 윗칸에.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그 책들이 우리 그간의 추억들을 빤히 비춘다. 저 책들, 그리고 함께 놓인 내 책들. 그 많은 고통과 기쁨들. 그 우여곡절 속에서도 저 책들은 우리와 함께 있었다. 때로는 눈물 흘리던 밤 머리맡에, 때로는 같이 걷던 종로 거리 커피숍 테이블 위에, 또 서로를 위무하던 신대방동 그 방 창가에, 서로 책 하나를 두고 토론하고 낄낄거리던 그 많은 날들의 편린 속에, 저들은 칸칸이 우리를 바라 보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저것들. 난 그만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천방지축으로 튀어 다니던 그 시절에도 저것들은 우리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저 책들이 없는 우리 삶을 생각할 수 있을까? 언제난 저들은 지척에 있었고, 우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지나치곤 했다. 하긴 앞으로도 오랫동안 책들은 우리를 그렇게 응시하며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문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일종의 반복되는 제의를 즐긴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문자들은 산 자들, 또는 한 때 빛났던 그들의 흔적들을 한 번 더 기념하는 일일테니 말이다. 조금의 경외심도 없다면 이 문자들을 첫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지독하게 음미할 리가 만무하다. 문자를 대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대한다기 보다, 이런 저런 삶을 내가 다시 산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문자들이 내게로,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 삶의 칸칸이 빛을 주었듯이 말이다. 책이란, 문자란 그렇게 검은 날개의 천사처럼 언제나 우리 주위를 배회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