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과 연락...

from 나홀로 가족 2005/12/26 20:05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친구는 동명이다.

24일 느지막히 일어나서는 점심때가 지난 후에야 연습하러 간다고 5천원을 받아서는

집을 나갔다.

그리고 저녁 늦게 아내가 들어와서는 '동명이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다.

엄마한테는 자고 온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동명이는 들어오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아내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 어디가서 이새끼는 연락도 없는 것이야?

- 5천원 갖고 가서 뭘 먹고나 있는 것이야?

- 도대체 나가면 왜 연락이 없는 것이야?

그리고 항상 결론으로 붙는 말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니깐...

 

옆에서 툴툴거리면서 '당신은 궁금하지도 않냐?' '전화라도 한번 해보지?'하니까

번호를 눌렀는데, 처음에 신호가 가는데, 안받고, 그리고 다시 했더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응답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도 시간은 흘러 11시...

이제 아내는 좌불안석이다. 동명이 친구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한다.

"너는 안나갔다구? 동명이 전화도 안되는데, 알아보고 연락좀 해줘!"

또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아내는 다시 전화를 건다.

"연락안됐니? 다시 한번 연락해줘!"

잠시 후 전화가 왔고, 그 전화를 끊고 나서 아내는 말했다.

"라페스타에서 지금 놀고 있는데, 곧 들어올 거래..."

 

한 30분 지나서 "다녀오셨습니다"를 외치며 동명이가 들어왔다.

"야, 똘! 너 이리로 좀 와바!"

"어, 옷 갈아 입고..."

마루에 마주 앉아서 뭔가 고상하게 잔소리라도 좀 늘어놓을까 했든데,

아내가 옆에서 다 혼내고 만다.

 

- 야, 이새끼야, 너 깝작대고 다니다가 어디 잡혀간줄 알았잖아..

= 내가 왜 깝작거려? 글구 잡혀가긴 어딜 잡혀간다구..."

- 늦거나 안들어오면 전화도 못해주냐?

= 전확 밧데리 나갔다니깐...

- 그럼 친구 전화기라도 연락해 줘야지

= 알았어...

 

그러고 나니 아빠로서 산오리는 할 말이 없다.

"야 좀 연락이나 해줘라, 엄마 맨날 걱정하잖아..."

"어........."

 

집 나서고 집에다 연락 안하는 거는 산오리만큼 심한 인간도 드물거다.

집에 전화기가 생긴 것도 대학 들어간 이후 였으니까 그 전에는 당연히 집에 연락할 방법도,

할 이유도 없없다. 물론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어디 싸돌아 다니지도 않아서 연락할 일도 없기도 했지만..

집에 전화기 생긴 이후에도 연락 안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안하는 이유는 '늦었는데, 괜히 전화해서 부모님 잠 깨울 이유없다'

말도 안되는 이유였지만, 전화하기 싫은 것을 이런 핑계로 돌렸다.

그런 일이 몇번 지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집에 안들어와도, 연락이 안와도 별로(아니 거의) 상관을 하지 않았다. 어디 갔느냐?뭐 했느냐?는 질문도 당연히 없었다.

애새끼들 많아서 누가 안들어왔는지 일일이 챙길 여유도 없었을 것이고,

또 산오리가 원체 '모범생(?)'이다 보니 어디 나가서 안들어와도 무슨 일이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아직도 부모님은 산오리가 뭘 한다고 하면 그렇게 믿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외박을 하는 것은 자유로왔다.

그건 결혼을 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왜 안들어가는지, 언제쯤 들어가는지를 연락하지 않았다. 소싯적부터 버릇이 그렇게 들기도 했고, 늦게 전화해서 잠깨우기 싫다는 억지 변명까지 곁들여서.... 처음에 아내와의 갈등이 엄청 많았다. 그깟 전화 한번 못해주느냐고?

고스톱 치다 보면 잊어버렸다. 상가집에 가서 어울려 술마시다 잠자느라 깜박했다...

뭐 갖다 붙일 사연이야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왜 연락이 없느냐는 아내의 핀잔과 구박도 몇년 지나니까 사그라 들었다.

대신 아내가 연락없이 늦게 들어오고, 안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 들어와서 아내가 늦게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심지어는 안들어 오는 동안 잠들지 못하고, 온갖 상상을 다해 가면서 열받아 했다.

그리고는 또 몇년이 지나니 이제는 서로 늦게 들어와도 간섭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애비가  동명이 하루 외박하고(더구나 엄마한테 애기한), 또 담날 늦게 들어온다고 해서 무슨 설교를 할수 있었을까?

늦게 오면 전화라도 한번 해라!고 얘기하겠지만,

그 말에 얼마나 무게가 실리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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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6 20:05 2005/12/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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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2/26 21: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ㅋㅋ,이 글 읽자마자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2. 자일리톨 2005/12/26 23: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하긴 저도 연락을 잘 안하는 체질인지라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만... 암튼 돌멩이 화이링~~~!!!

  3. 뻐꾸기 2005/12/27 00: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인 저는 누가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오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답니다. 요즘엔 이메일도 있고 문자메시지도 있으니 깨우는 것 미안해서 연락 못한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가요.

  4. 정양 2005/12/27 17: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난 딴것보다
    동명씨가 들어오면서 "다녀오셨습니다" 한다는거 ㅎㅎ
    다녀왔습니다, 가 아니라, 다녀오셨습니다? 크크

  5. 산오리 2005/12/27 18:2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단/나두 엄마한테 전화 한번 해야겠네요...ㅋㅋ
    자일리톨/그래도 결혼하시면 자주, 계속 연락하세요..
    뻐꾸기/심려가 너무 깊으십니다...마마...ㅎㅎ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꽤 많더군요. 그렇다구 밤늦게 이메일로 '늦는다'고 보낼까요?ㅋㅋ
    정양/잔소리든 뭐든 별로 신경안쓰고 제맘대로 하는게 부럽기도 하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