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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들의 동원령

[김영수의 세상뒤집기]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싫어하면서도 한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겐 거짓말이야말로 가장 큰 잘못이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거짓말에 익숙하다. 가끔은 전체를 위해 ‘선한’ 거짓말을 하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말한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아이들은 기성세대들의 크고 작은 거짓말에 불쌍하게 목숨을 잃는 양의 신세로 전락한다. 시험 삼아 거짓말을 했다가 정작 늑대가 왔을 때는 사람들을 동원하지 못해 양들을 잃어버리고 쫓겨나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살아야만 했던 양치기 소년. 후보 시절에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학교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던 소위 진보 교육감조차 양치기 소년으로 변했다.
이명박 정권은 일제고사라는 ‘시험 동원령’으로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을 일제시대의 ‘전시 동원령’과 유사하게 동원하고 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선생님들은 징계를 받아야 하고, 시험을 거부하는 학생들은 무단결석으로 처리된다. 그 진보 교육감은 ‘시험 동원령’만이 아니라 최근엔 면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경찰 동원령’까지 내렸다. 자본주의 교육정책의 파발마만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몸과 마음을 짓밟으면서 내달리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면서 자본의 돈벌이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양성하려 한다. 1994년 자본의 세계화 전략에 부합하는 제7차 교육과정이 수립된 이후, 학생들은 세계의 언어와 전쟁하는 병사로, 자본의 경쟁력이라는 ‘교육의 꽃’을 일구는 예비 노동자로 동원되었다. 이전 정권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최소한 배를 곯지 않으면서 살수 있다는 교육정책의 메시지 앞에 경쟁과 살육의 전쟁터에 나가야만 한다. 그 터는 바로 일제고사 시험장이거나 수능 시험장이다. 이제는 오로지 시험 결과로 개인과 학교를 등급화하거나 서열화하는 교육정책이 전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들은 보다 높은 서열과 등급의 학교까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학교선택제도’ 앞에서 등급화와 서열화의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안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양치기 소년들의 ‘책임을 떠넘기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자본주의 체제는 학력을 추구해야 할 교육의 본질적 기능을 실용주의적인 돈의 욕망으로 변질시켰다. 학력이란 사물과 상황을 보다 과학적으로 인지하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하는 자본주의 교육정책의 능력 때문에 학력을 시험능력으로 오해한다. 그 중심에 양치기 소년들이 있다.
그래서 국가 아니 지구의 천년지대계를 위해서라도 후세대들의 학력을 키울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지식의 전달만을 위해 존재하는 현행 교과목의 형식과 내용을 폐지해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교육방식도 물론 학력을 키우기 위한 차원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제고사만 보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의 학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종합대학교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전문대학을 해체하는 방안이다. 대학교육기관은 전국에 하나면 족하다. 그 기관은 전문적인 영역별 단과대학체제로 전국에 배치되어 운영되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맞는 단과대학에 무시험으로 입학하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자신의 관심과 적성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공부하면 된다. 교육은 자본의 돈벌이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만들거나 은연중에 평등의식을 강화·조장시킨다는 자본의 두려움과 그 동안 학교를 매개로 돈벌이가 취약해졌다는 사립학교 재단의 탐욕을 넘어서서, 진정한 삶의 행복을 일상생활에서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 흘러나는 세상을 만드는 수단으로 존재해야 한다.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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