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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잃어버린 정체성부터 찾아야

 ‘다 같이 잘해보자’로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 마주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

민주노총 선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정파운동이 조직을 흔들어버린다’는 정파운동에 대한 공격부터, 무조건적 통합이 강요되기도 한다. 후보사퇴라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논란의 배경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존재한다. MB정권의 노동자에 대한 적대의식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면서 ‘민주노조’ 존립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이다. 일부에서는 정파운동의 폐해가 심했으니 어려운 때이니만큼 공조직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통합지도력 구축을 통해 돌파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의도와 무관하게 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정파운동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위기는 총체적이다. 단순히 사회적 위상추락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조차 ‘부끄러운 조직’이 됐다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극복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안정성’이 아니라 ‘정체성’
왜 그런가. 지난 6년 동안 소위 국민파가 집권한 민주노총은 사상 초유의 지도부 비리사건, 성폭력 사건으로 얼룩져 민주노조의 도덕적 우위는 사실상 해체됐다. 단위 사업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요 대공장의 채용비리와 회계비리 등의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일부 노조들의 노사담합적인 밀실 이면합의 등이 언론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민주노조의 도덕성, 자주성이 훼손됐다.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조직 내 갈등은 조직의 지도력을 약화시켰다. 노동조합의 민주주의가 ‘다수결’ 로 협소하게 인식되고 왜곡되면서 패권적인 조직운영에 대한 비판적 제기가 대두됐지만 이런 문제가 제대로 소통되고 합의를 이뤄내기는커녕 ‘비판’은 정파의 이해로 왜곡됐다.
‘총파업 남발’이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준비된 총파업’ 구호는 허상이었고 로드맵, 비정규악법에 대한 민주노총의 투쟁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조직력, 투쟁력은 급격하게 약화되고 ‘교섭’, ‘의회’에 의존하는 경향은 총파업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정권과 자본의 ‘대공장-정규직 노동자 이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의 실리주의적-투쟁회피적 경향을 제어하지 못하고 비정규노동자투쟁은 총노동의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방치되기 일쑤였다. 20년 민주노조 투쟁의 역사가 일궈 논 전체 노동계급의 대표성은 사라지고 연대는 약화됐다. 2009년 사회연대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과의 연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노동자 내부의 연대가 강조됐지만 용산투쟁, 쌍용차 투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민주노총은 ‘연대’라는 구호만 현란했을 뿐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한 성적표를 갖고 있다.
이렇듯 지난 몇 년간의 민주노총을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고, ‘위기니까 평가나 비판하지 말고 통합해서 조직의 안정성을 회복하고 돌파하자’는 주장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직면한 문제는 ‘조직 안정성’이 아니라 바로 ‘잃어버린 정체성’ 이기 때문이다.

엄혹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정체성 찾기
경제공황과 노동자들에게 적대의식을 갖고 있는 이명박정권의 대대적인 공격 앞에 놓인 민주노총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그 근본적 변화의 지렛대는 바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가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제 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평가는 필수적이다. 상호 비판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최근 몇 년간의 민주노총 운동이 드러냈던 민주성, 자주성, 투쟁성의 훼손을 스스로 드러내고 집행부를 비롯한 대대적인 쇄신작업에 돌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노총 선거를 통해 공론화되고 소통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는 묻어둔 채 ‘다 같이 잘해보자’는 민주노총을 더 큰 위기에 빠뜨릴 뿐이다.
 

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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