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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용산투쟁 1년,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

‘역량’이 아니라 ‘의지’가 광범위한 연대와 참여를 이뤄냈다

 

조희주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노동전선 대표)
4월, 용산투쟁이 힘겨울 때가 있었다. 조금씩 장례를 치르자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투쟁동력은 1월 그 분노에 비해 턱없이 약화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장례를 치룰 수는 없었다. 용산범대위 대표자 농성이 제안됐고 천막을 쳤다. ‘이대로는 열사를 보낼 수 없다’는 맘 때문이었다. 대표단 농성에 4-5명 정도, 10여개도 안되는 단체들이 농성을 이어갔다. 용산참사가 갖는 정세적 엄중함에 비해 운동세력들의 긴장감과 결합력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농성이 이어지고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종교계의 헌신적인 연대가 지속되면서 다시 용산투쟁은 부활했다. 장례를 빨리 치르자는 목소리는 약해지고 더 많은 이들의 결합과 운동세력들의 참여가 이뤄졌다. 누구는 열심히 했고 누구는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참여를 했다가 유보한 단체들도 다시 왔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조직들도 다시 적극성을 보였기에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의 활동체인 노동전선의 적극적 참여에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용산학살은 전체운동세력이 사활을 걸고 함께 해야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했기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우리의 연대가 이처럼 된다면, 부족한 역량이지만 굳건한 ‘의지’를 모아낼 수 있다면, 광범위한 참여와 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용산투쟁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실제 용산투쟁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개개인들의 성원에 힘을 얻었다. 더 많은 이들의 참여와 연대는 바로 ‘이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굳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철거민들은 용기와 희망을 가졌다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철거민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다. 그럼에도 외로운 투쟁을 해왔다.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철거민들이 연대에서 만든 전철연은 정권의 공격대상이 됐다. 계속되는 음해와 왜곡보도로 힘겨운 날도 있었다. 하지만 살인적인 재개발 중단,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확대됐다. 철거민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 운동세력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됐다. 철거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성과다.

전철연은 주거권 쟁취를 위해, 영구임대주택을 요구하면서 투쟁해왔다. 뉴타운,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는 영세상가들도 전철연에 가입했다. 건설자본의 이윤을 위해 주거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전철연과 함께 하고 있다. 철거 과정에서는 용역을 앞세운 살인적인 폭력이 곳곳에서 자행된다. 철거민들은 이러한 거대한 자본, 용역, 자본과 결탁한 정치권력에 맞서 혼자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연대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망루를 세웠고 함께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자본의 이윤논리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재개발, 주거권이 제대로 쟁취될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떠나면 저들은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권명숙 (故 이성수 열사 부인)


애 아빠가 일 년 만에 용산에 돌아왔습니다. 불타고 녹슨 망루처럼, 할퀴어진 건물들처럼,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처럼. 검게 그을리고, 갈가리 찢기고, 차갑게 얼어붙은 남편의 시신이 한 서린 용산에 왔습니다. 2009년 1월 20일, 무엇이 그리 두려웠나요? 왜 시신을 도둑질해서 갈기갈기 찢어놓고 버렸습니까... 육신을 더럽혔으면 명예라도 깨끗이 씻겨줘야지요, 어찌하여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였답니까. 그 한 많은 영령이 어떻게 눈을 감으라고 이런 잘못을 저질렀답니까.

(중략) 용산을 뒤로 하고 떠나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남편의 원혼이 서린 남일당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이렇게 정리하고 떠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시탐탐 저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 (중략) 이제 국민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아서 너무 다행입니다.    
- 노제, 유가족 인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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