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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0
    [충남] 용산학살, 7개월이 흐를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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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용산학살, 7개월이 흐를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8월 19일 밤, 천안역에 오랜만에 촛불이 켜졌다.

 

작년 이맘 땐 충남지역 거의 모든 시군에 촛불이 켜졌다. 언제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을지 모르는 대중적 공포감이었는지, 꽉 막힌 일방통행식 통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는지, 아니면 신자유주의 10년이 만든 현실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땐 그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촛불이 켜지면 삼삼오오 모였고, 초를 나눠주었으며, 스스로 나가 발언대에 올랐다. 서울만큼은 아니었지만, 지역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었다.

 

지난 1월, 상상하기도 싫은 국가폭력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낸 용산학살이 자행되었을 때, 분노만큼 컸던 ‘기대’가 있었다. 2008년 촛불 처럼 거대한 자발적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 믿었고, 작년 촛불투쟁을 통해 많은 반성과 고민을 했던 조직노동자들과 운동단위들이 벌 떼처럼 일어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후 7개월이 지났다. 기껏해야 내가 한 것은 검찰청 앞 1인시위였고, 어쩌다 한 번 용산에 올라가는 일이었다. 지역에서는 용산대책위가 만들어졌지만, 실은 거의 아무활동도 하지 못했다. 갑갑함과 답답함에 짓눌리는 시간들이었다.

 

용산학살 유가족들과 범대위, 지역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촛불문화제는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용산학살을 중심으로 한 지역 집회는 사실상 처음있는 집회다. 다른 촛불문화제와 다르게 사람들도 많이 와 앉아 있다. 공연과 동영상상영, 발언들이 이어졌다.

 

다른 말들은 거의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유가족 두 분의 발언이 계속 귓속을 맴돈다.

 

“유가족과 모두의 힘이 너무 약해 여기까지 왔나 봅니다.”

 

“약해서... 이명박 정권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을 주십시오, 사랑이 고파서 왔습니다”

 

사랑이 고파서 왔다는 그 말에 저절로 눈물과 한숨이 나왔다. 조직운동을 하겠다는 내가, 계급투쟁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떠들고 있는 내가 눈앞에 벌어진 폭력과 잔인한 학살에 조직적이지도 않고, 투쟁적이지도 않으며,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실천조차 하지 않는 것이 화가난다. 7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모든 것을 내놓고 투쟁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유가족들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또 화가난다.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투쟁, 그 어느 것 하나 패배할 수 없는 투쟁들이다. 더욱이 용산투쟁만큼은 기필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투쟁이다. 공황기의 초입단계에 들어선 지금, 자본주의의 폭력적 재구조화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 현재 벌어지는 폭력과 야만에 대항한 강력한 저항과 투쟁뿐이다. 여기에 용산의 투쟁이 있다.

장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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