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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9
    '내가 살던 용산'(6)
    무화과
  2. 2010/01/13
    시간의 노예에서 시간의 주인으로(4)
    무화과
  3. 2010/01/09
    왼쪽 발바닥께 통증(1)
    무화과
  4. 2010/01/07
    기타연습
    무화과
  5. 2010/01/02
    배팅볼 투수가 되고 싶다.
    무화과
  6. 2009/12/30
    2009/12/30
    무화과
  7. 2009/12/29
    수다는 나의 힘
    무화과
  8. 2009/12/21
    용산에서 무너진 것은 망루만이 아니다 (4)
    무화과
  9. 2009/12/18
    나에게 필요한 것
    무화과
  10. 2009/12/15
    서울, 안녕히~
    무화과

'내가 살던 용산'

 

내가 보리 들어와서 처음으로 편집한 책이 나왔다.

처음이라 서툴러서 책한테 미안한데, 하필이면 용산 책이어서 더욱 그렇다.

나 말고 능숙한 편집자를 만났으면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정말 관심도 없고 의지도 안생기는 분야였다면

진짜 일하기도 싫고 책도 그 마음 따라 거지같이 나왔을텐데,

내가 처음 맡은 책이 용산 책이라서 너무너무 고맙고 다행이다.

뭐 사실 '첫 책'이라는 의미는 별로 모르겠고, 용산 참사를 다룬책이라서 애착이 많이 간다.

일하는 중에는 야근도 너무 많아서 싫었고,

여러 작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워낙 처음이라 쉽지 않았고,

가장 힘들었던 거는 회사 사정상 나에게 편집자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 번도 안해본일을 덜컥 맡아서 진행해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처럼 많은 사람들 도움으로 1주기 전에 책을 낼 수 있었다.

 

책에 편집자들이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공간이 없어서 이 자리에 기록해놓고

잊지 않고 두고두고 갚아줘야겠다.ㅋㅋ

 

먼저,

안그래도 일 많은데 초보 편집자랑 일하느라 고생했을 디자이너 수경선배

전우치 마감 때문에 자기 일도 바쁜데 내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귀찮은 티 안내고 성심껏 대답해준 승윤이

'내가 살던 용산'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스 받는 나에게 신경 많이 써주고 내가 다른 일 손 놓아버린 탓에 일거리 늘어난 문정태랑 소영누나

이 책이 널리 읽히도록 애써줄 최정식 차장님, 규성이, 현경이

편집자가 해야할 잡다한 일들을 무턱대고 부탁할 수 있었던 유아언니

눈물 펑펑 흘리게 하는 좋은 글 보내줬는데 미안하게 된 박진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마다 치킨 먹을까하는 고민을 안할 수 있게 수다로 나를 구원해준 오리, 날맹, 신혜, 선미

 

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인복이 좀 많은 거 같다. 결국 또 자랑질이네...ㅋㅋ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주변 사람들 도움 받는 건 좋지만^^ 

다음에는 내 일 하면서 오히려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살던 용산' 잘 나가면 좋겠다.

용산 투쟁에 보탬이 많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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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노예에서 시간의 주인으로

파주로 이사온 가장 큰이유는 출퇴근이 너무 짜증나서, 그리고 독립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조금 멋있게 말하자면, 시간에 통제당하는 삶이 아닌 시간을 활용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집에 들어오면 잠들기 빠쁘고 일어나면 씻고 밥먹고 새벽같이 집을 나서고 하루에 3시간 넘게 출퇴근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생각이들었다. 시간의 노예로 살아간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주로 오게 되었다.

 

물론 나는 자연의 시간을 거스를 생각은 없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거야 노예가 된다고 할 수 없다. 우리들은 모두 자연의 일부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다른 생명들과 공존하기 위함이니까. 하지만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다르다. 바쁘게 바쁘게 챗바퀴 돌고,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무엇을 하고 살고 싶은지 잊고 살게 된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내 주인이 되어 나를 조정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자연의 시간은 좀스럽지 않다. 그 유구한 세월 속에서 인간이 구획지어놓은 시간이 좀스러울 뿐이다.  그러고보니 자연의 시간의 '세월'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고, 인간이 구획지어놓은 시간은 '시각'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암튼 각설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내 힘으로 밥벌어 먹고, 내가 내 힘으로 살림살이하는 것처럼 내가 내 의지로 무엇을 할 지 결정하고 싶었다. 시간에 쫓겨 시간을 빼앗겨 급하게 다긋치듯 몰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이사온 지 보름정도 되었나? 회사일이 바빠져서 아직도 집과 친해지지 못하고 정리도 다 못하고 살림살이도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시간의 노예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듯 싶다. 부천에서는 집을 나서야할 시각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노래도 듣고 책도 몇 자 읽고 아침밥 먹고 출근해도 시간이 남는다. 회사에 와서는 기타연습을 한다. 이제야 조금 내가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시간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일부러 컴퓨터와 티비도 안놓았다. 긴 긴 밤을 내가 지배하고 싶었다. 그래본 경험이 있다. 감옥에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처음에는 허둥댔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고나서 나는 내 시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물론 그 안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지만(책을 보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그래도 내가 결정해서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퍽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파주로 들어올 때 일부러 나를 유혹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오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몸서리치게 심심하고 외롭고 지루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살던 용산' 마감이 걸리면서 매일같이 새벽에 퇴근하게 되었다.

밤이 심심할 여유도 없이 잠도 충분히 자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제, 오랫만에 6시에 퇴근을 했다. 배달된 냉장고를 받고 저녁을 먹고, 씻고, 냉장고 정리와 청소를 하고 시계를 보니 8시 30분. 아직도 밤은 길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잠들어버렸다ㅠㅠ 9시도 안돼서 잠들어버린것 같다. 다행히도 불끄고 이불 제대로 펴고 잤다.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나 잠의 노예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책읽었다!!! 뿌듯하다! 기분 좋다. 이문구 '우리동네' 읽었다. 회사친구들과 함께 책 읽는 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이다.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와 입말에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퍽 재미있더라. 책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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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발바닥께 통증

왼쪽 발바닥, 엄지발가락 아래, 옴폭 패었던 가운데에서 볼록하게 올라오는 넓고 펑퍼짐한 그 부분에 미세한 통증이 있다.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인데, 좀 무리해서 뛰어가 걸으면, 혹은 날씨가 너무 추운날에는 목에 생선 잔가시가 걸린것처럼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신경쓰이는 정도여서 굳이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성가시긴 해서 몇 번 병원에 가봤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발 편하게 하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같은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밖에 없더라. 그래서 그냥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불편이 없기에, 그냥 귀찮고 성가시면서도 그냥 살고 있다. 눈물나게 아픈 것은 아니지만, 이 미세한 통증을 달고 사는 것도 참 신경쓰이고 힘든 일이다.

 

이번에 용산 일지를 정리해보면서 내 왼쪽 발바닥께 통증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았다. 2009년 1월 23일. 용산참사가 일어난 3일 후. 범국민대회라는 이름이었던가, 서울역에서 시작된 집회는 홍대까지 행진을 하고 끝났다. 설연휴 직전이었던 그날 이후, 왼쪽 발바닥께 통증이 생겼고 일년 가까이 지났다. 평소에 많이 걸어다니는데, 서울역에서 홍대보다 더 먼 거리도 많이 걸어봤는데, 그날 다치거나 특별히 힘들지도 않았는데, 이 통증이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이 미세한 통증도 일년을 함께 살아오니 짜증스러운 것이 되었다.

 

미세한 통증도 일년을 겪어내는 것이 이럴진대, 용산 참사 유가족들은 오죽했을까. 건강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어서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 죽음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과 삶을 권력으로 능멸할 때, 유가족들이 일년 동안 겪었을 일들과 마음은 오죽했을까.

 

얼른 차려입고 장례식에 가야겠다. 요새 날이 추워서, 월요일날 내린 폭설이 도로에서 얼어붙어 길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왼쪽 발바닥께 통증이 부쩍 심해졌지만, 그래도 나가야겠다. 다섯 분이 이제 강제철거도 없고 서러움도 없는 세상으로 편안하게 가신다면, 용산참사의 책임자들을 명확하게 밝혀내서 엄중하게 처벌한다면,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왼쪽 발바닥 통증은 사라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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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습

기타 사길 잘했다.

파주로 이사온 후 퇴근 시간 단축하고 책좀 많이 읽었으면 했는데

가까이 살기때문은 아니겠지만 암튼 늦게까지 일하게 된다.

이런 건 내가 바란 삶이 아닌데...

할 일이 많기도 하지만, 굳이 이 시간까지 사무실에 안있어도 될꺼 같은데...

 

일이 많다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

스트레스 받는 일은 따로 있다.

요새 참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세상 참 만만하게 봤나보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어거지로 이해하는 척 하진 않겠다 

 

오늘 같은 날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은 일들이 일어난 날은

소주 벌컥벌컥 마시고 잠푹자면 좋으련만

그래서 은근히 집에 가져가려고 소주도 챙겼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 가면 그냥 자야겠다.

 

대신에 기타 연습을 했다.

아직 코드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연습하는 코드는 분명 기본 코드일텐데 그마저도 어렵다.

C코드는 계속 가야금 튕기는 소리가 난다.

G코드가 그나마 소리가 잘 나는 것 같다.

멋모르고 치는 기타소리에 마음이 다독여진다.

다행이다. 술안마셔도 괜찮겠다.

기타 사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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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팅볼 투수가 되고 싶다.

새해 계획 세우고 뭐 이런거 잘 안한다. 귀찮아서.

학생운동 할 때, 해마다 연초에 올해 조직적인 목표와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하면

참 난감했었다. 뭐라고 대답을 하지? 학생운동은 그나마 학사행정 때문에

1년 단위로 일정한 싸이클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나에겐 너무 힘든 질문이었다.

나는 한 번도 1년 단위로 세월을 나눠서 생각해보질 않았다.

12월 30일과 12월 31일, 그리고 12월 31일과 1월 1일. 나에겐 그저 똑같은 하루 차이다.

지나가 버린 세월은 한 해 한 해 어느정도 갈무리가 되지만 남아있는 세월은 그냥 한무더기다.

어디서 쉼표가 찍힐 지, 어디서 마침표가 찍힐지 나는 알 수 없다.

 

2009년을 갈무리 해본다. 너무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사는 일이 다 이별하는 일이라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가 멀어졌다.

앞으로는 내 곁에 어느 누구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그럴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지않다.

 

2010년 계획 따위는 없다. 사실 내 인생 계획이 없다. 목표를 세우고 용맹정진하는거

그런 거 잘 못한다. 그냥 지금처럼 살거다.

2010년에 이룰 목표나 꿈은 아니지만, 2009년을 지나면서 꿈이 하나 생겼다.

 

내 꿈은 배팅볼 투수가 되는 거다. 속 150을 넘나드는 정통파 에이스도 아니고 방어율 제로를 자랑하는 철벽마무리도 아니다. 각해보면 지금까지 내 삶은 항상 주인공이었다. 학생운동을 할때도 선미와 창언이의 말처럼 언제나 소수파에서도 메인스트림에 속해 있었다. 골든글러브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1군 붙박이에 누구나 이름을 알 정도의 주전급이었다고 생각한다. 전담포수까지는 아니어도 나와 호흡이 잘 맞는 포수가 누군인지 신경쓸 정도. 물론 과대망상일 수도 있다. 허나 적어도 내 스스로는 그렇게 의식하고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 삶에 맞추기를 바라며 살았다.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주전이니까 당연한거였다. 그래서 내가 속한 팀이 인기없는 팀이고 약팀이었을지언정 나는 그 안에서 최소 5선발 로테이션에 항상 끼어있는 1군 주전 투수였다.

 

이제는 배팅볼 투수가 되고 싶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보지는 못했지만(그 자리에 딱히 관심도 없었으니) 충분히 할만큼 해봤다.이제는 다른 플레이를 하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고 내 희생이 다른 이들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타자들을 성장시키는 그런 삶. 강속구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지 않고, 변화구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며 농락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칼같은 제구력으로 꼭 필요한 공은 던져주는 배팅볼 투수. 내 자신의 기록지보다 내가 볼을 던져준 타자가 낸 성적으로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

 

근데 아직 나는 배팅볼투수가 몸에 익지 않았다. 여전히 승부처에 올라 살얼음판을 내딛는 것이 익숙하다. 아직 나를 완전히 죽이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타자가 배팅볼을 뻥뻥 쳐내기라도 하면 약올라 전력투구로 삼진을 잡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믿고 맘놓고 연습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몸쪽빠른직구를 빈볼처럼 느끼게될지 모른다. 아니 빈볼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배팅볼투수가 되고 싶다. 에이스 투수가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하는 것처럼

배팅볼투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내가 빛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 참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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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

그 누구도 탓하지 말자.

그런 건 아무 도움도 안된다.

 

일이 아무리 꼬여있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하면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하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못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안되는 일은 그냥 안되는 일이다.

 

계속 이렇게 다짐을 해본다.

주문을 걸어본다.

근데 꼬이고 꼬여도 스트레스 받기는 해도

은근히 재미도 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정면 돌파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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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는 나의 힘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는 날이었는데,

해야하는 일 많은데  자꾸 방해하는 사람이 있어서 일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왕창 받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나 스트레스 잘 안받는 성격인데,

그럼에도 하루종일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카락 한움큼 빠져나간 기분이었는데,

 

야근하고 홍대앞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다행이다. 나에게 스트레스 이빠이 심어준 사람 뒷담화를 할 타이밍이었는데,

만약 뒷담화 신나게 했다면 잠깐 동안은 즐거웠겠지만 마음에 짜증만 남았을텐데,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짧은(?) 시간이나마 즐겁게 보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마치 정신없이 한 5~6시간 사무실 의자에 처박혀 일하다가

산책하러 나와서 들이마시는 겨울 바람같은 기분이다.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웃어주는 친구에게 거듭 감사하는 마음이...

게다가 맛난 커피까지 사줬으니ㅋㅋ

 

그런데 막상 집에오니 내일 이사도 걱정이고, 용산 만화도 걱정이고, 걱정만 태산이네ㅠㅠ

 

아무튼 수다 덕분에 좀 살겠다. 나는 뒷담화 굉장히 좋아하지만,

뒷담화 없는 수다 상당히 매력적이다. 물론 수다 상대가 누구인지가 중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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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무너진 것은 망루만이 아니다

대추리에서 파헤쳐진 것이 논밭만이 아니듯

천성산에 뚤린 것이 터널만이 아니듯

새만금에서 말라 죽은 것이 백합만이 아니듯

 

용산에서 무너진 것은 망루만이 아니다

용산에서 불타버린 것은 망루만이 아니다.....

 

 

 

차마 쏟아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 글을 시작했었는데,

딱 저기까지 쓰고 한글자도 더 쓰지 못했다. 벌써 며칠이 지났다. 아마 저 뒤는 쓰지 못할 것이다.

왜 못쓰는지 안다. 만약 평택 대추리였다면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다른점, 용산참사에 마음아파하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한발짝 떨어져있다.

그러니 저 뒤에 들어가야할 구체적인 이야기를 채워나갈 도리가 없다.

 

일주일 전부터 용산만화책 편집에 온 정신과 시간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초보편집자라서  더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겁다.

맨정신으로 이 감정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한발짝 떨어진 내 마음이 이렇다면

그날 이후로 삶이 송두리째 뒤엉키고 바뀌어버린 유가족들은 또 어떨까.

덕분에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셨다. 목소리가 완전히 가버려 회복이 안된다.

원고를 교정보기 위해 펼칠 때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리두기를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원고를 보면 훌쩍훌쩍 거린다. 이젠 서로 창피하지도 않다.

 

하필이면 이 책이 내 첫번째 책이라서

아직 내 부족한 부분으로 책이 망가지지는 않을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지는 않을지...

정말 잘 만들고 싶다. 첫번째 책이라서가 아니라 용산 책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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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한 것

나에게 필요한 것

 

포근한 잠,

따뜻한 차,

나른한 휴식,

아프지 않은 노래,

반가운 목소리,

 

생각보다 많네.

일단은 잠!잠!잠!

 

그래서 꾸벅 꾸벅 꾸벅 꾸...벅...

밤에도 낮에도 아침에도 오후에도

버스안에서도 책상앞에서도 회의실에서도 밥먹을 때만 빼고

꾸벅 꾸벅 꾸벅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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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녕히~

오늘 집을 계약하고 왔다. 원래 봐 놨던 집은 참 좋긴 한대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집주인이 빚이 너무 많았다.

정말 좋은 집이었는데 눈물을 머금고 포기ㅠㅠ

 

딱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심하게 거슬릴 것도 없는 집으로 계약했다.

이사 날자는 12월 29일로 잡았다. 아. 이제 이사를 가는 구나, 갑자기 실감이 난다.

 

문득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내가 태어났고, 가장 오랜시간을 살아온 서울.

뭐 파주로 이사간다고 해도 일때문에 그리고 친구들 만나러 자주 서울에 나올거라서

떠난다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그래도 실제적인 삶과는 별개로

내 마음이 서울에서 떠나는 거라서 새삼 기분이 싱숭생숭 해진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주소를 엄밀히 따지면 부천이지만

모든 생활권이 서울인지라 지자체 선거 할 때만 빼면 스스로 서울시민처럼 살고있었다.

거의 10년을 살아온 이 동네에서 은근 동네친구도 만들고,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산

동네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정 붙이지 못했다. 새로 이사가는 동네도

동네 자체에 얼마나 정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많은 서울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동네에 정붙이고 살아가는 방법을

완전히 까먹어버린 일종의 불구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10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을 살았던 도시 서울

한 때는 서울과 친하게 지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지금도 딱히 사이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서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서글픈 마음과

그보다 훨씬 큰 홀가분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 도시를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는 것을 서울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서울 안에도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이제, 서울이 지겨워졌을 뿐이다. 조용히 책을 읽을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다시, 언젠가, 서울로 돌아올 수도 있다.

혹은 돌아와야 할 수도, 돌아오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이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나를 거부할 수도 있지만.

 

문득 서울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이 어떻다고 분석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서울에 대해서

내가 바랬던 서울에 대해서

내가 돌아오고 싶지 않은 서울에 대해서

사실은 내가 그리워했지만 사라져버린 서울에 대해서

 

서울, 이젠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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