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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자

이 글은 난타님의 버스를타자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언제 봤던 다큐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친구한테 끌려가서 본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다큐를 보기전에는 부끄럽게도 장애우들의 이동권 문제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내 이종사촌 누나의 경우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옆에서나마 누나의 일상을 꾸준히(?) 볼 수 있었다. 지금 정신연령이 6살 정도인 누나는 걸을 수는 있지만 오래 걷지는 못한다. 발이 선천적으로 너무 작은데다 비만이 심해서 다리가 오래 견뎌줄 수 없는 탓이다. 누나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성당에서 운영하는 쉼터 혹은 집에서 보낸다. 외출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누나의 다리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누나와 함께 걷고 있는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제였던지... 어느 피자집에서 자리에 앉아 피자를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그러더라. 홀 중앙에 앉지 마시고 조금 구석진 자리로 가 달라고... 나는 그러자고 했지만 이모는 끝까지 홀 중앙에서 피자를 드셨다. 마치 오기를 부리시는 것 마냥...

 

솔직히 그때 난 ... 창피했다. 그냥 조용하게 구석자리에서 먹고 가면 될 것을 왜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기어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때부터 난 누나나 이모를 만나는 걸 피해왔고 아직도 그렇다. 마치 이모가 누나 때문에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봐 그게 두려웠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머리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인간이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종로3가에서 이동권쟁취를 위한 서명운동이 있을 때 "폼나게" 서명도 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건 나로서는 숨겨야 할 부끄러움으로, 그리고 누나는 시혜적인 동정만으로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야 할 착한 존재로 인식되어왔던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들은 더이상 시혜적인 동정을 구걸하고 떡고물이 떨어질 때 "아이구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착한 존재"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뻔뻔함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모습이 뻔뻔스러움으로 느껴진다는 건 항상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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