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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를 위한 변명?

오랜만에 한국어 책을 읽고 있다.

 

 

 

 

 

예전에 블로그에서도 읽었고, 수정된 윈고를 작가께서 친히 보여주신 적도 있는지라 (영광이오!) 내용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었으나, 그래도 역시 시청각 자료의 힘은 대단하여... 각종 자료와 사진들을 함께 보니 좋기는 하더라.  이 많은 그림들 찾아내고 저작권 확인하느라 편집자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대학 시절, 하루키의 소설을 읽던 중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인지, 상실의 시대인지 구분이 안 됨) 혁명의 가장 큰 적은 전술(이론?)의 빈곤이 아니라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표현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근데, 이거 정확한 기억인가 확신이 안 서네.. ㅡ.ㅡ)

소련 아카데미 교과서(?)의 번역물이었던 세계철학사 1,2,3를 열심히 암기(!)하던 나에게 "상상력과 혁명"이라는 개념은 한번도 함께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계식 언어 조합이었고.... 당시로선 충격이었지.... 

 

이제는 "통통 튄다"느니, "재기발랄"이라느니 하면서 사회운동에서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아직 미덕은 그저 미덕일 뿐....  생활 속의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고 전복적으로 사고하기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장구한 역사의 가부장제, 권위주의적 군사문화, 역시 그와 쌍동이처럼 자라온 권위주의적 운동 문화, 또 개념상실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문화속에서.... 길들여지기는 쉬워도 전복적으로 사고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 면에서 "내가 춤출 수 ~" 는 읽는 순간은 유쾌하게... 그리고 읽고 나서는 익숙한 것들의 이면을 다시 생각해보며 정치적인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책이다.

 

근데... 이거 접대용 멘트가 너무 심한가? ㅎㅎㅎ

음. 사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른 건데....



이 책에서는 아시모프의 로봇관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의 시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일부는 동의.

 

하지만, 아시모프가 로봇 3원칙을 통해서 주구장창 제기해왔던 문제는 "인간 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고 본다.  

 

그의 대표작인 로봇 시리즈 (The caves of steel - 강철도시, The Naked Sun - 벌거벗은 태양, Robots of Dawn -여명의 로봇, Robots and Empire 제국과 로봇) 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도대체 인간을 인간이게끔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면 베일리라는 지구인 경찰 (로봇 시리즈), (이름도 기억 안나는 시골 행성의) 해리샐던 박사(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들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Daneel R. Olivaw 라는 로봇이고, 이 로봇의 "완벽한" 이성적 판단과 행동, 로봇 3원칙을 통해 구현된 "완벽한" 도덕적 행위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무엇인지, 인간 본성의 취약함이 무엇인지, 혹은 강점 (때로는 무모한 도전, 그리고 상상력! 회의주의!)이 무언지, 그리고 연대와 인류애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도록 만든다. 

 

이 책에서 비판한 바이센테니얼맨 (사실, 그 모티브는 단편인 Robbie 에서 비롯되었고 나중에 Positronic man 양전자인간 이라는 작품으로 더욱 확장됨)도,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2백년에 걸쳐 "개인적인" 신분 상승을 "성취한" 로봇의 눈물겨운 성공스토리라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인간과 동등해질 수 없었던 소수자의 이야기라고 나는 이해해왔었다.    

 

아시모프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공포 - 특히 프랑켄슈타인, 정신나간 과학자들의 몬스터 창조로 상징되는 - 를 불식시키고 싶어했고, 그래서 고안한 것이 로봇 3원칙이다. 그렇다고 아시모프가 모든 과학발전은 선이요, 기술발전만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과학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거대한 파급력을 가질수록, 대중들이 새로운 과학기술에 깨어있고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대중적 글쓰기(소설과 각종 에세이)에 힘을 기울여왔던 것이다. 이 바닥 언어로 표현한다면 과학기술의 "사회민주적 통제" 쯤이라고나 할까....   

이런 할배의 지론을 생각할 때, 그의 로봇 3원칙이 자본가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딱 들어맞는다고 비판해버리면, 할배 너무 섭섭할 거다. 더구나, 그의 작품 속에서 로봇이 수동적 개체로 그려지거나, 인간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 적은 그야말로 없었는데 말이지...

 

또, 로봇 3원칙의 몰이해와 왜곡은 물론, 아무 개연성 없는 스토리로 아시모프 팬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아이 로봇" 같은 영화를 이 책에서 언급한 것도 좀 섭섭했더랬다. 사실 이 영화는 아시모프의 원착 I, Robot은 물론 로봇 3원칙과도 아무 관련이 없는.. 그저 제목만 같은 영화라고 보는게 맞는데 말이지.... (아이 로봇은 로봇 3원칙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구현되어 왔는지를 보여준 단편 모음. 파운데이션 시리즈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해왔음)

 

사실, 아시모프에 대해서는 불만도 많은데... 

변명해주려다보니 아시모프 칭찬 일색이 되어버렸네???

할배의 그 다짜고짜 줄거리 위주의 기술 (르귄 같은 작가하고 비교해보면 얼마나 서사가 부족한지.... 정말...)과 완전 뻔하고 유치찬란한 로맨스 양념 (이것만 빼도 소설이 열배는 훌륭해질거야), 거기다 꼭 결말까지 결정적인 비밀을 안고 가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려는 그 무리한 노력....  이런 건 정말 맘에 안 들어... 아무리 팬이라고 해도 말이지....

또 잘난척 하기로 유명하고.. (이런 거야 뭐 논외로 쳐야지. 인간성까지 어떻게 ㅎㅎㅎ)

 

어쨌든, 작가님!!!

혹시나 개정판 내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아이 로봇"은 좀  어떻게 바꿔주셈. 꼭~~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칭찬...

책이 쉽게 쓰여져서...

작가가 읽어주길 바랬던 사람들이 실제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좋아요.

 

 

 

* 사족

제목을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웬지 엠마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뻣뻣하게 말했을 거 같지는 않아서....   오히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내 혁명이 아니야"라고 했을 거 같은데 말이지...  하기야.. 뭐 누가 알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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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성실함 사이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쓴다거나, 혹은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들을 적절한 비유로 콕콕 잘 뽑아내는 경우.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들 무지 싫다. 특히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쓰면서 괴상한 전문 용어들을 마구 쓰거나 혹은 옆에 붙은 영어 아니면 글이 이해가 되지 않도록 쓰는 경우!!!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좀 찔리는 구석이 있음) 근데...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글이라 보기 어려운" 문장 구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깨진 건 기본이요,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어구의 활용... 이게 글재주의 문제일까? 재밌게, 쉽게, 감동적이게 쓰는 것은 글재주의 문제겠지만, 문법 구조에 맞는 문장을 쓰는 게 글재주는 아니잖아? 더구나 사실 위주의 기술과 논증을 다루는 논문에서 말이지.... "재밌고 쉽고 감동적"이기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고.... 문장을 다듬는 성실함이 부족했다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건가? 아니면... 제대로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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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를 알고 싶다고...

뻐꾸기님의 [한미자유무역협정과 노동자 건강, 어려워.] 에 관련된 글. 

아까 잠깐 뻐꾸기 선배와 채팅을 하는데

느닷없이 FTA 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채팅 중에 FTA 라니.. 이런 진지한 선후배 사이란...)

근데, 선배가 털어놓았듯, 나도 FTA 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다.

참세상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벌어지는 소식에 너무 둔감했던 거 같다.

문제라고들 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자각이 마구....

 

근데,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  "겨우" 한국과의 FTA 소식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거말고도 지금 뉴스가 미어터질 지경인데 뭐 그것까지나....

 

그래서 하여간...

채팅 끝나고 인터넷으로 잠깐 검색을 해봤다.

좀 생생하게.. 쉽게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을까....

 

그래서 발견한 두 가지 ...

지금 한국이 준비하고 있는 것과 가장 비슷하다는 NAFTA에 대한 것...

 

(뻐꾸기! 읽어보셈!!!)



1. 하나는 캐나다 국영방송 CBC 역사자료실

 

심지어 학생들을 위한 교사들의 강의자료까지 있으니 개괄에 대해서는 아마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소개가 정말 웃긴다.

 

"It was the most controversial agreement of its kind in Canadian history. Prime Minister Brian Mulroney's vision of free trade with the U.S. read like a Harlequin romance: Canada played the neglected lover, U.S., the negligent partner. Empty promises and veiled threats were all part of the negotiating dance between the world's greatest trading partners".

 

"이것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협정이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에 대한 수상 멀로니의 관점은  마치 할리퀸 로맨스와도 같았다. 캐나다는 무시당하는 연인 역할을, 미국은 무심한 파트너 역할...  공허한 약속과  간접적 위협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무역 상대와의 협상 댄스의 전부였다..... "

 

일전에 네오 아자씨가 노무현과 멀로니의 특별한 관계를 지적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위의 문장도 멀로니 이름만 노무현으로 살짝 바꾸면 크게 달라질게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하여간...오늘은 제목들만 봤으니 나중에 천천히 좀 살펴보자...

 

 

2. Public Citizen의 Global Trade Watch 자료실

 

이 단체는 랄프 네이더가 창설한 것인데, 각종 공공 이슈에 대해 꾸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니까 여기 국제무역에 관한 섹션이 따로 있고 NAFTA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보고서에서 NAFTA 협정 11장 (아마도 투자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그 문제의 조항인 듯)의 문제점을 사례 중심으로 기술했다고 하니, 한 번 살펴봐야겠다.

 

도대체가...

전공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 죽겠는데...

뭐가 이렇게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은지....

더구나 알고 나면... 그 다음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제국 신민으로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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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보며 당을 생각한다.

새벽길님의 [투표를 거부한다는 당신에게] 에 관련된 글.

아무리 인터넷이 시끌벅적하다 한들, 천리타향에서 그 생생한 느낌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제 아침 채팅 중에 엄마가 "너 거기서도 투표하냐?"고 물어보셔서 문득.. 아 진짜 선거가 맞긴 맞구나 생각이 들었더랬다. 

 

엄마의 표현으로는 "한나라당한테 뭘 얻어 먹었는지", 아빠는 엄마의 추궁에 묵묵부답 이유도 안 대면서 은근 한나라당을 찍을 기세란다. 엄마 왈.... "딸이 민주노동당 당원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러게나 말이다  ㅎㅎㅎ 

 

근데,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만일 딴나라 당원이거나, 혹은 열우당 당원이라면 울 엄마가 거기를 지지하게 될까?

 

글쎄... 장담이야 못하겠지만, 그건 아닐 거다. 

 

울 엄마가 가방끈 짧은, 아슬아슬한 정도로만 가난을 벗어난, 서울 산동네의 평범한 할매인 건 사실이지만, 공부 많이 한 의사 딸에게 항상 당부하던 것이 있었다.

"항상,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성공했다고, 없이 사는 사람들 사정을 나몰라 하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이런 엄마에게, 민주노동당은

서민 (울 엄마 아빠 입에서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없음 ㅡ.ㅡ)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고, 직접 서민들이 나서서 일하는 당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 때라고 돈봉투에 식사 대접에.. 이런 거 없고, 방송에 나와서 똑 부러진 소리들 하고, 똑똑해 보이는 젋은 사람들이  길에서 인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와 별로 다를 것 없는 그저그런 구차한 살림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그래서 누구보다 우리네 사정을 잘 알아줄 것 같은....

 

사실 거의 아무 것도 안 하는 페이퍼 당원이기는 하지만,

당의 우경화 (특히 그 위험한 민족주의!!!!)와 현재 보여주는 선거에의 매몰은 정말 우려스러운게 사실이다. 지난 번 노동절 집회가 거의 당의 선거운동판으로 "전락"했다는 여러 블로거들의 지적, 막무가내 4번 찍어요 하는 작금의 선거운동 소식에는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지인 중에는, "왜 탈당 안 하냐"고 묻는 이도 있다.

 

그런데, 탈당 안 하는 이유는....

 



그 탈당의 이유를 우리 엄마 같은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위 활동가들이나, 혹은 활동가는 아니더라도 진보적 성향의 연구자들에게는 이런 저런 근거들을 댈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아무리 부르조아 정치판이라고 해도) 도대체 선거라는 열린 공간마저 포기해버린다면, 도대체 어디서 대중을 만나고, 어떻게 사회변화의 의제들을 알려낼 수 있단 말인가?

차 떼고, 포 떼고... 선진 활동가들하고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하고만, 혹은 노동조합에서 지역에서 한창 투쟁의식이 고양되어 있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이제 누구도 소수 전위에 의한 혁명의 지도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아래로부터의 자발성, 지역에 근거한, 현장에 근거한, 다양한 소수자의 대중운동을 통해서만이 사회변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중들을 어디에서 만나고, 그들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스스로 조직화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수련을 받던 의국에서는 전공의들이 다 당원 아니면 지지자들이라 선거 때가 되도 딱히 꼬시고 말게 없었다. 하지만 교수진들은 사정이 달랐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야기하며 이회창이 "당연히" 국가중대사를 맡아야 할 걸로 생각하는 분도 계셨으니....

선거를 앞두고 교수님들한테 민주노동당의 의제와 사회변혁에 대한 나의 기대(ㅡ.ㅡ)를 알리는 편지를 쓰고는 했다. 받는 분들 완전 황당했겠지만 말이다.... 나도 뻘쭘 민망함 때문에 괴로웠으나... 주변에 있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부터 설득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디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서 쪽팔림을 무릎쓰고..... 그리고, 이게 선거 때가 아니라면 또 언제 가능하겠나 싶었다.  (근데 사실 좀 뻔뻔한 편이라.... 첨에만 쪽팔리고 나중에는 그냥 ㅎㅎㅎ)

 

대전에서 2년여 동안 지구당 건설 모임과 분회 활동에 참가하면서 가장 많이 오고갔던 이야기는.... "도대체 지역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투쟁의 현장이 있으면 뭘 어찌 해보겠는데,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생활의 정치"라는게 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게 우리의 푸념이었다. 그래서 강연회, 영화 상영회 같은 아이디어도 내보고, 주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행사도 고민해보고....

이런 우리에게 선거는 상당히 중요한 기회였다. 궁극의 목표 지점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거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평범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현재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거나 당원인 사람들이,

당의 모든 것에 만족해서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정적 시기가 되면(그게 도대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중이 절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민주노동당 지지의 이유를 여전히 엄마에게 "생활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리고 탈당해야 하는 이유, 지지할 수 없는 이유를 엄마에게 "생활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나는 당원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당의 모든 것을 지지하며, 그걸 따르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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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Marx in Soho

홍실이님의 [그들의 입을 빌어...] 에 관련된 글.

 

마감을 울부짖는 몇 건의 일을 두고..

잠시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암울한, 혹은 긴급한 시기에도 인간적인 삶의 본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엠마 할매의 가르침에 따라 (뭔 헛소리냐?) 연극을 보러갔다.

 

상설 공연하는 상업연극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놓치면 사실 영원히 못 볼지도 몰라...

이런 핑게를....

 



 



사실 연극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마을이었다. (코네티컷 주, Stafford)

혹시나 길을 잃을까봐 일찌감치 출발했는데...

마을에 들어서면서 참으로 망연자실했다.

어찌나 마을이 코딱지만한지...

타운홀 (면사무소?)는 점심까지밖에 일을 안 하고,

시간이 남아 일 좀 하려고 다방을 찾는데 도대체가 그런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뜽금없는 "아리조나 레스토랑"에 "빠리 베이커리"는 뭔지...

까페라고 써 있는 곳이 한 군데 있기는 했으나, 웬지 쌍화탕에 날계란 타줄거 같은 굉장한 분위기.....우와.. 정말 환장하겠더군.

 

할 수 없이 가겟집에 들어가 어디 커피 마시거나 저녁 먹을 곳 없나 물어보니, 주인 할배가 우리보다 더 황당해한다. "지금 이 동네에서 그런 걸 찾겠다는 거냐?" ㅜ.ㅜ

어쨌든 그 할배의 조언에 따라 마을 외곽에서 던킨 도너츠를 확인하고 어찌나 좋아라 했던지....

 

근데 슬슬 걱정이 되었다. 분명히 안내 홈피에는 메모리얼 홀(면사무소 겸용)에서 공연을 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문도 굳게 잠겨 있고..아무런 안내 표지 하나 없고...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보니.... 거기가 아니고 구(!) 메모리얼 홀이란다. 그러면서 위치를 가르쳐주는데, 젠장할 지도에도 안 나와.....

물어물어 찾아갔는데도 긴가민가 하여, 역시 가겟집 앞에 소일하고 있던 마을 할배한테 물어보니... 외지인이라고 완전 반가워하면서 거의 손잡고 데려다줄 태세... 천신만고 끝에 구 마을회관은 찾았는데... 역시 굳게 닫혀 있고 앞에 역시 코딱지한 종이 쪼가리가 붙어 있다 "Marx in Soho".... ㅠ.ㅠ

 

어쨌든 위치를 확인했으니 저녁을 먹어야겠는데.. 가겟집 마을 처자한테 물어보니, 또 "아리조나 레스토랑" 이야기를 한다... 미쳐버려...

그 가겟집에  샌드위치도 판다고 써 있길래 그냥 거기 들어갔는데...

분위기는 양평 서베이 나가서 다녔던 시골 점방 분위기...

웬지 할매가 문 드르륵 열고 내다보며, 유통기한 1년 지난 과자 꺼내줄 그런 분위기...흑.

 

그래도 샌드위치는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것이라 상태가 과히 나쁘지는 않았으나 혹시 한 달 된 빵은 아닐까 의심이 좀처럼 사라지지는 않았음. ㅡ.ㅡ+

 

(근데, 지금 공연 이야기는 안 쓰고 뭐하는 짓이냐)

 

음...

하여간 공연은 즐거웠음.

워낙 희곡 자체가 재미있는 덕이기도 하지만,

빈정거림과 풍자와, 분노와 격정,  그리고 그리움... 이런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실제 상황이 감동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줄거리를 너무 빤히 알고 있어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했는데, 또 책을 안 읽었으면 많은 이야기들을 못 알아듣고 놓쳤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니 뭐 셈셈..

 

특히 마지막 장면.. 아주 인상적이었다..

무대밖으로 퇴장하다 잠깐 돌아와서... 내가 돌아와 너를 성가시게 해서 짜증났냐?

재림이라고 생각해~~~  (사람들 박장 대소!)

 

재미났던 건... ..

배경에 놓인 책들 중에, 하워드 진 할배의 "미국 민중사"가 한눈에 콕 들어오더라.

예리한 나의 눈!!!!

 

(사진은 못 찍고.. 극단 홈피에서 가져옴)

 

 

m180

 

10-26-2005-03

 

 

근데...

도대체 주민 만 명밖에 안 되는 그 작은 마을까지 와서 이렇게 공연하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관객이 백 명도 넘게(!) 온 것도 마냥 신기하고... 사람들의 재밌어 하는 반응도 신기하고.... 음....

 

몇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나중에....

이제 또 열심히 일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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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잡고~

우주의 조화란 게 이런 것인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던 네 가지 일이

우연히도(?) 같은 마감일자를 갖게 되다니...

 

 

손에 손 잡고 나란히 걸어오는 저 공포의 마감 군단 앞에...

 

나는 그저 할 말을 잃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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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임박한 일더미를 옆에 잔뜩 쌓아 두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만... )

 

우연찮게 최근에 읽었던 글 혹은 책들이 하나같이

근거(evidence), 회의적 사고(skeptical thinking)를 목놓아 부르짖었다.

 

칼 세이건의 The Demon-Haunted World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를 지금 2/3쯤 읽었는데, 지금까지 skeptics/skeptical 이란 단어가 백만 번 쯤 나온 거 같다.

 

얼마 전에 읽은 노엄촘스키의 인터뷰 글 (Global values 101)에서도 엄청 강조..

이 할배는 자신의 회의적 사고 외에는 아무 것도 있는 그대로 믿지 말라는 말쌈까지...

 

그리고 사실은 다른 것이 궁금해서 (이건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해야지) 읽어본 에릭 홉스봄 할배의 글 (Identity history is not enough)에서도 근거와 회의적 사고라는 표현이 넘실대고 있었다.

 

연구자, 혹은 과학자(나는 과학자일까?)로서.. 그리고 성찰적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비판적, 회의적 사고라는 셈인데...

내가 이런 거에 잘 훈련이 되어 있는지는 글쎄.. 회의(!)적이다 (ㅜ.ㅜ).

 

주말에 읽은 전공서적인 [관찰 연구(observational studies, Rosenbaum)]에서도 마찬가지로 회의적 비판, 대안적 설명들에 대한 집요한 탐구... 를 무지무지 강조했더랬다.

그 글은 자연스레 레빈스 할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개별 사건이 아닌 체제에 대한 이해, 개연성 있는 모든 가능성들에 대한 고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내 앞에 떼로 나타나서 회의적 사고와 비판적 성찰을 강요(!)하는 이 고수들의 글을 모두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어처구니 없게도...

 

"아이고, 21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어디 논문 하나 쓸 수 있겠나..."

이런 저런 모든 가능성들, 대안적 설명과 이론적 정합성들을 모두 고려하려면 말이지...

 

떼로 나타난 할배들한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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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vs. 하이예크

어제부터 Commanding Heights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자료 분석하던 것도 꼬이고, 머리 좀 식히려고 도서관 미디어 룸에 갔는데...

젠장할..

볼만한 오락 영화는 하나도 남은게 없더라...  아마도 학부생들 시험 기간이라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간이 많은 듯... ㅡ.ㅡ

 

그러다 구석에서 Commanding Heights 를 발견했다.

예전에 에두아르도가 꼭 한 번 보라고, 신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 공고화되었는지 저들(!)의 시각으로 아주 잘 그린 수작이라고 평가했었다.

1998년에 출판된 동명의 책에 기반하여 2002년에 다큐로 제작되었다는데, 

지금도 PBS 웹사이트 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총 3부 중 이제 2부까지 보았는데... 오홋... 진짜 강추!!!

 

몇 가지 짧은 기록...



1. 제목

레닌이 신경제(NEP)를 도입하면서 국가의 핵심 산업분야를 장악하는게 중요하다면서 사용한 표현인 Commanding Heights 에서 따왔다고 한다. 당시의 자료 화면도 보여주는데.. 오호.. 레닌의 그 표효하는 모습... 대단하더군...

 

 

2. 흐름

현대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국가 (케인즈)와 시장(하이예크) 의 고지(commanding heights) 장악의 측면에서 파악했으며, 세계대전과 이후 30여 년 동안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거시 경제학이 시대를 풍미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70년대 후반부터 하이예크의 시장주의가 점점 힘을 얻고 고지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결국 시장과 세계화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내용....

 

3. 등장인물들

나 같은 경제학 문외한이 알고 있는 경제학자의 이름이란 게 뻔해서, 한손으로도 꼽을 수 있는 수준인데, 아마도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 출연하는 경제학 셀레브리티 다큐라고 보면 맞을 듯...  ㅎㅎㅎ 케인즈 살아 생전의 모습, 하이예크는 물론이거니와 갈브레이스, 밀턴 프리드만, 제프리 삭스, 심지어 로렌스 서머스까지....   

근데... 좀 기가 막혔음. 이 소수의 엘리트들이 직접적 (몸소 정책 자문) 혹은 간접적 (학파의 형성을 통해.. 이를테면 시카고 학파)으로 얼마나 전세계 경제 정책들을 쥐락펴락 했는지 직접 보는게 유쾌한 경험은 절대 아님....

 

4. 대처와 레이건

필름에서는 이 둘을 "소울 메이트"라고 표현하더라...

인쇄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실제 육성으로 화면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직접 확인하고 나니.. 완전 소름 오싹 돋았다. 대처가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야말로 "분쇄"한 후에 만면에 미소를 띄며 기뻐하는 모습.... 오..... 나도 모르게 혼자서 XXX 를 외치고 말았다.

대처나 레이건 모두 하이예크의 "roads to serfdom"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고 하며, 심지어 대처는 당선 후 하이예크한테 감사의 편지까지 쓰기도 했더랬다. 

 

5. 어처구니 없는....

충실한 신자유주의 복음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 싶었던 것은...

60-70년대 남미의 경제 문제가 케인즈 혹은 소비에트식의 "중앙집중화" 때문이라고 한 것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잠깐 딴 이야기지만... 케인즈 추종자들은 이 책이 마치 케인즈주의가 소비에트 중앙집중주의와 같은 것으로 취급 받는 것을 엄청 불쾌해했다고 하더군)

아옌데 정부가 실패(!)하고 피노체트가 들어선 것을 실패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하면 어쩌냐구...

도대체... 이 신자유주의 복음을 실현하는 중에 민중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시장의 힘을 관철시키기 위해 동원했던 미 제국주의 "국가"의 횡포와

제 3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남아있던 "식민주의"의 유산... 이런 거는 말 한 마디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 은 쏙 빠지고 마치 국가라는 중립적 장치가 존재하는 것처럼,

"계급관계"는 쏙 빠지고 "단일한 국민경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완전 맘 상했음....

 

 

6. 그래도... 강추!

이 다큐는 볼만한 가치가 있고,

여력만 된다면 반드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왜냐하면... 맨날 우리편(?) 이야기만 들으면 바보 될 수 있으니까 ㅎㅎㅎ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는지,

여러 국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관정을 통해 실현이 되었는지,

그 핵심이 무엇인지...

당시 핵심 인물들의 인터뷰와 자료 화면들을 통해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음

심지어 스폰서 기업 면면만 봐도 분위기가 척!!!

 

국내에는 부지런하게도 1999년에 "국가 대 시장"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되어 나왔는데.. 온라인 서점에서 품절 (이 책은 세종연구원에서 발행했고, 하이예크의 Roads to Serfdom 은 그 위상에 걸맞게 자유기업원에서 발간함)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김수행 번역, 동아출판사),

[세계화의 덫] (강수돌 번역, 영림카디널)

등의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보면 좀더 균형감각 있게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뭐, 다른 책은 별루 읽은 게 없다보니.. 이거 밖에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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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이렇게 무식해도 전문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놀라운 것은,

나만 무식한게 아니더라는.... ㅜ.ㅜ (아, 이건 업계의 비밀인데.. 노출해도 되나)

 

그런데,

어쨌든 굳어버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시험을 치르고,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대학이라는 곳에 취직을 하고 나서 보니,

더욱 난감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만능 엔터테이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물박사는 더더군다나 아닌데...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라거나, 혹은 교육/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살인 면허를 받은 007도 아니고, 대학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 "뭐든지 (전공과 무관하게) 다 잘해요" 면허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는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그러면서, 다른 연구자, 선배 교수들에 대한 강력한 의심.... 저들은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얼마나 경험이 있을까..ㅡ.ㅡ+

 

특히 이런 문제는 사회운동과 관련된 연구/교육 활동에서 두드러진다. 

상대적으로 인력풀도 작고... 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한 동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대의명분"에 따라 이런 저런 일들을 함께 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야 오래 되었지만...

차마 인간적 정리와 그 "대의명분"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제 여성비정규 노동자의 건강문제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사실.. 너무 미안했지만 말이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아는게 뭘 있다고 글을 쓰겠냐 말이다. "아는게 없다"는 표현이 그저 "겸양"일 수 있다면 나도 참 좋겠다. 출판된 자료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정리할 수야 있겠지만, 그거 할 줄 몰라서 부탁하는 건 아니잖은가... 

 

똑같이 상식 수준의 이야기를 해도, 교수가 하고 전문의가 하면 다르게 보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책임질 수없는 내용들을 덥썩 받아서 (그것도 충분히 공부도 안 한 상태에서) 함량 미달의 글을 짜내는 건 사회 운동에 대한 해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특별한 자격을 갖춘 전문가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혹은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픈 건 아니다. 더구나 학문 경계를 엄격히 지켜 전공 분야 안으로 활동을 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면 뭐냐.

변혁의 의지나 실천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자가 함량미달의 성과물을 내는 것에 대한 핑게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필요한 덕목은....

냉철한 주제파악과 성실함 아닐까?

 

모르면서 용감하게 설치지 말자!

용감하게 설치고 싶거들랑, 성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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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월기...

불현듯!

나카지마 아츠시의 산월기(山月記)가 떠올랐음. 

주옥같은 문장들이라 예전에 문서 파일로 만들어 놓은 적도 있는데, 컴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그건 없어진 거 같고...  친절한 네티즌들이 올려놓은 문장들을 발췌...

다시 읽어보아도 역시......

 

그런데... 왜 생각이 났던 것일까....

 

 



.....

 

아까는 왜 이러한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노라고 말했지만,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는 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닐세. 인간이었을 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렸다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말했지. 실은 그것이 어쩌면 수치심에 가까운 것임을 사람들은 몰랐던 거야. 물론 온 고을에서 귀재라 불리던 내게 자존심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나 그것은 겁 많은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었네.
  

.....

 

나는 시(詩)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네. 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

 

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차례로 등을 돌려서 수치와 분노로 점점 내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먹고 살찌우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네. 인간은 누구나 다 맹수를 부리는 자이며, 그 맹수라고 할 수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성정(性情)이라고 하지. 내 경우에는 이 존대한 수치심이 바로 맹수였던 것일세. 호랑이였던 게야. 이것이 나를 망가뜨리고, 아내를 괴롭히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내 겉모습을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는 것으로 바꿔 버리고 만 것이라네.
 

.....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 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 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희한을 느낀다네...

.....

 

처음 호랑이로 변하고 난 뒤 나는 가끔 생각했다네.

나는 왜 짐승이 되어버린 걸까.

그러나 호랑이의 몸과 정신에 익숙해진 지금 나는 문득문득, 예전에 나는 왜 인간이 었을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곤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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