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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살던 곳

 

 

 

[02. el bimbo.mp3 (3.55 MB) 다운받기]

 

오늘 우연히..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서당이란 만화를 보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글자를 배우게된 교과서..  두심이 표류기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봉당을 지나면 조그만 마루가 있고 마루 한켠엔 조그만  냉장고가 있었다.  마루 밑으로 햇볕을 거울에 반사시켜 비춰보면 벽돌 조가리 등 돌덩이들이 너저분하게 마루아래 깔려있었다. 봉당위 처마엔 가끔씩 제비가 둥지를 틀고는 하였다.

부억에는 심지를 잘 맞춰야 그을음이 올라오지 않던 석유곤로가 한대 있었고.. 연탄 뇌로가 놓여진 아궁이가 안방, 작은방 두개가 찬장 아래로 나와있었다.  안방 뇌로 중간에는 커다란 양은 솥이 하나 걸려있어.. 솥에 물을 끓이기도 하고 연탄로라를 끝까지 밀어넣아 안방을 덥히기도 하였다.

찬장안에는 간장병과 소금, 고춧가루통 등 양념통이 1층에, 밥그릇이 2층에 놓여 있었다. 가끔씩 부억으로 들어오던 쥐는  뒤란문을 막고 연탄로라 뇌로 덮개를 막으면 항상 찬장과 벽 뒤로 숨어들었다. 그럴때면 연탄로라 밀어넣던 길다란 쇠꼬챙이로 틈바구니에 있던 쥐를 후려갈겨 잡고는 하였다.

 

  목욕을 할때면.. 어머니는 부억바닥에 연탄로라를 꺼내 들통에 물을 데웠다.  커다란 고무다라를 놓고 들통에 뎁힌 물을 한 바가지씩 꺼내   누나.. 형..  작은누나..  나를 차례차례  씻겨주셨고..  마지막엔 어머니도 씻으셨다.  한 번은 어머니께서 부억을 뛰쳐나와 마루에 축 늘어진채로 숨을 헐떡이셨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돌아가실 것만 같았던 어머니의 지시대로 뒤란 항아리서 퍼온 동치미 국물을 조금씩 드시고는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마당한켠엔 뒤에 실려 무심천, 용화사를 다녀왔던 아버지께서 타고 다니시던 신사용 자전거가 서있었다. 네모난 보도블럭을 하나 들쳐내면 지렁이가 몇마리 꾸물거렸고..  거기에 호박씨를 심었다. 호박은 담을 타고 자라나..  결국 지붕위까지 자랐다.  조그만 화단엔 비료를 많이 줘서 죽은 라일락, 매년 심던 해바라기, 분꽃 이 자라고 있었다.  화단옆엔 고무로 된 쓰레기통이 있었고..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면 연탄재 등이 담긴 이 커다란 고무 쓰레기통을 골목 밖으로 갖고 나가 리아카에 쏟아었다.

 

  작은방에 떠다놓은 대접은 다음날 얼어붙었다.   작은 방 창호문 옆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겨울이면 창문과 방으로 난 창호문 사이 조그만 공간에 들어가 따뜻한 햇볕을 쪼였다. 심심하면 창호문에 구멍을 내었지만..  방에서 구멍을 통해 찬바람이 들어왔기때문에 더 이상을 구멍을 뚫지 않았다.

 

  마당 옆엔...  개장이 있었다.  나무로 된 개장이었으나 개가 부셔먹어 나중에는 공구리로 개장을 지어줬다.  봉당에 앉아 햇볕을 쪼이다가..  개 등에 올라 탔다.   개가 물면 나도 개를 물었고 개가 장난치면 나도 개에게 장난을 쳤다.  개가 햇볕을 조용히 쪼이면..  나도 햇볕을 쪼였고 개가 졸면 나도 졸았다.

 

   밤중엔 골목길 여인숙에서는 간간히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새벽엔 용화사 타종소리가 들려왔다. 전봇대 뒤 감나무서 떨어진 감꽃을 한움쿰 주워서 먹었고.. 봄이면 엄청큰 목련나무 꽃향내가 해마다 진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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