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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정세와 전망 4호 초점> 경제민주화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경제민주화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주주자본주의에 근거한 재벌개혁론’과 ‘재벌타협을 통한 복지국가건설론’은 모두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아니다.

 

 

1. 장하준 그룹의 경제민주화론 비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인 기자가 출간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경제학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발화점이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경제민주화론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재벌개혁, 재벌 해체를 주요 의제로 하는 경제민주화론자들의 실상은 금융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자들이며, 이는 진보적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즉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이며,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정승일: “한국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나쁘지만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란 식의 인식이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거죠. 앞으로 많이 거론하겠지만,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자유주의 혹은 합리적 자유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 사회적 자유주의자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볼 때 그분들의 주장은 대부분 한국의 노동자, 시민이 아니라 국내외 금융 자본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그룹은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사실상 영/미식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며, 재벌의 지배에 맞서 싸운다는 명목으로 실상은 해외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IMF 구제금융 이후 본격화된 시장개방의 결과 한국자본주의는 국제 금융자본에 의해 포위되었고, 그 결과 SK그룹이 기업사냥꾼 소버린에 의해 경영권을 위협받았고(2004), KT&G가 마찬가지로 기업사냥꾼인 아이칸에 의해 경영권 위협을 받는 상황(2005~2006)이 벌어졌듯 해외 금융자본은 주식시장을 통해 한국 재벌들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자신의 투기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버린과 아이칸은 주식을 매집하며 경영권을 위협했고, 결국 SK, KT&G 모두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로부터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주식은 단기간에 폭등했고, 소버린과 아이칸은 모두 단기간에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한국시장을 떠났다.

 

금융시장의 자유화, 외국자본 규제철폐 등의 시장 자유화는 한국 경제를 엄청난 불안정성 속으로 밀어넣었으나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재벌의 기형적 소유구조를 해체시킨다는 명목으로 자본시장 개방과 시장자유화를 환영하고 있으며, 소액주주운동을 벌여내는 등 주주자본주의를 관철시키면서 결국 국제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뿐이라는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한국 사회 전반에 금융-주주자본주의의 원리가 관철되어온 결과, 기업들은 금융자본의 요구대로 단기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자본은 자신이 벌이는 ‘사업’ 역시 ‘재테크’의 입장에서 접근하게 되었다.

 

정승일 : “시장개혁 이전에는 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는 자리가 신사업 기획이나 해외 수출 같은 영역에 있었습니다. 재무나 경리 파트는 늘 후순위였어요. 그런데 IMF 사태 이후부터는 재무 당담 이사들이 위세를 떨치게 됩니다. 이분들은 재테크의 관점에서 기업의 방향을 제시해요. 재무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의 신사업 투자도 일종의 재테크니까요. 그런데 재테크에서는 단기간에 안정적으로 많은 수익을 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핀란드 노키아의 경우 전자 사업에서 흑자를 내는 데 무려 17년 걸렸습니다. 한데 지금처럼 단기 수익만 본다는 건 우리는 앞으로 이런 사업은 안 하겠다는 뜻이에요. 또 이렇게 되면 기업집단 차원에서 신산업 부문의 신생 기업을 도와주는 계열사 상호지원도 못하게 됩니다. 재무적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회사가 수익을 주주에게 배분하지 않고 다른 회사를 지원해 주가 하락을 자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결국 국내 대기업 경영자들은 국제 자본 시장의 요구에 맞춰 경영하게 된 겁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IMF 구제금융 이후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각급 규제가 철폐되면서 한국 자본주의에는 금융-주주자본주의가 지배적 원리로 확립되었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금융 자본의 지배가 확립된 결과 신규투자가 급감하고 고용이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해외 금융자본의 적대적 M&A 시도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주가가 높아야 하는바,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도 자본은 장기적인 자본투입이 요구되는 프로젝트 대신 단기적인 수익성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금을 축적해 고용을 늘리고 신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배당을 늘리기 시작했고, 주가 상승을 위해 하청업체를 쥐어짜기 시작하며, 비정규직을 늘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지금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국제 금융자본이 만들어 놓은 주주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60 퍼센트에 이르는 대기업들의 경우 만약 배당금 적게 주고, 노동조건 재선하다가 주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경영권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거나 적대적 M&A 위기를 맞게 될 공산이 큽니다. 이런 위험을 피하려고 미리미리 알아서 챙기는 거죠. 예컨대 삼성전자 같은 큰 상장 회사들은 시장 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영업 이익 대비 주주배당률이 대단히 낮아서 불과 2퍼센트 내외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업 이익 대비 주주 환원 비율이 무려 50%에 이르는 경우도 있더군요, 20~25배포 폭증한 겁니다. 만약 삼성전자의 배당 성향이 과거처럼 낮은데도 적대적 M&A 시도가 없다면 ‘한국은 아직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다’는 판단이 옳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주 자본주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어 있어요”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2. 주주 자본주의론자들의 재벌개혁론

 

장하준 그룹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열렬히 주장하는 김상조, 장하성 류 주주자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영미식 신자유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상조, 장하성 등은 이들이 벌여냈던 소액주주 운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액주주 운동의 논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벌들에 의해 행해지는 상호지급 보증, 전적으로 총수일가의 독재적 의지에 의한 사업결정은 시장에 의한 합리적 자원배분을 가로막아 왔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이 이건희 일가의 지배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고, 계열사별 순환출자, 상호지급 보증을 통해 삼성자동차 등 수익성 없는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룹의 각 회사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호지급보증을 통해 사업의 성패와 관계없이 퇴출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비대해진 재벌은 한국 사회에서 그 누구에게도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이런 통제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이야기되는 소액주주 운동은 결국 재벌기업들의 기형적인 지배에 의해 주주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으며, 이 피해는 선량한 소액주주들에게 돌아온다는 주주행동주의에 기반한다. 각 회사가 순환출자, 상호지급 보증을 통해 묶여 있기 때문에 개별 기업들의 효율성이 떨어지나, 총수 일가는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지배구조를 합리화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고, 그 수익성 증대에 따라 주식 한 장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며, 그 주가상승의 이익은 주주들에게 온전히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행하는 비판의 칼날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가로막는 재벌집단을 향하며,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통해 경영권을 노리는 금융자본 역시 재벌개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들은 자유주의자들이다. 결국 시장은 그 본성상 합리적으로 작동하며, 시장이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때 공정한 자원배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경제민주화론자-주주자본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들의 재벌에 맞선 싸움은 소유권에 근거한다. “우리도 주식 소유자이고, 기업의 소유권을 분점하는 자로서의 권리를 가지는데, 왜 우리의 권리를 짓밟는가?”라는 항변인 셈이다.

 

이런 논리는 한국 사회에서 IMF 이후 폭발적으로 팽창한 금융시장 및 금융자본의 논리와 공생할 수밖에 없다. 예금과 적금 밖에 모르던 노동계급이 너도나도 금융시장으로, 재테크 시장으로 뛰어들었던 기점인 IMF 구제금융 이후의 상황을 기억하자. 주주 자본주의론은 공황에 의해 잔인하게 깨어지곤 하는 ‘너도나도 자산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꿈과 공생하며, 모두가 소액주주로서 자본시장의 행위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구조조정의 현실, 즉 삶을 위해 한층 격화된 경쟁구도에 내몰리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자신도 금융시장의 현명한 투자자로서 나서는 것밖에 없는 절박함이 금융시장 팽창의 이면에 있는 현실이다. ‘누구나 자본시장에 참가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가혹한 정리해고와 무차별적 비정규직화의 압박 속에서 노동계급에게 주어지는 거의 유일한 꿈인 셈이다. 1998년 이후 거듭된 노동계급의 후퇴는 자본가계급에 대한 배타적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노동계급의 정체성 자체를 흔들어놓았고, 이와 동시에 진행된 것이 노동계급에 대한 자산 소유자로서의 정체성 이식이다. 그런데 그 행위가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정의로움과 연결된다니, 이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런 논리대로라면 기업사냥꾼인 소버린도, 아이칸도, 모두 합리적 시장의 작동을 위해 재벌과 싸우는 주체가 된다.

 

실제로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장하성은 실제로 ‘라자드(Lazard Asset Management)’라는 해외금융자본이 설립한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일명 장하성 펀드)를 운용하며, 주식시장에서 금융자본으로서 기능한다(지분을 매집하며 태광그룹, 대한화섬 등과의 경영권 분쟁에 나서기도 했다). 명분은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하여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한다는 것이지만, 장기적인 ‘투자자’로서의 주주와 단기적인 ‘투기자’로서의 주주는, 난마처럼 얽힌 자본주의 속에서 구분되지도, 구분할 수도, 구분될 필요도 없다. 현재 투기자는 투자자이며, 투자자는 투기자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만악의 근원이자 원흉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재벌, 그리고 재벌체제를 잉태한 박정희 체제가 된다. 이들은 결국 아담 스미스까지 올라가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논리에 근거한다(그러나 아담 스미스 역시 통념과는 달리 시장의 합리적 작동을 위해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구)자유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신자유주의는 나쁜 것이다. 그러나 (구)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장하준 그룹의 주장대로 자유주의는 결국 시장주의이며, 이들이 시장주의자인한, 이들은 신자유주의자와 실천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3. 이른바 재벌과의 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론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재벌개혁, 더 나아가 재벌해체를 주장하는데 반해, 장하성 그룹은 재벌과의 타협론을 제시한다. 국제 금융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는 재벌들에게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안정적 고용보장과 복지확충 등 복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재벌이라는 특수한 기업집단이 가지는 의미를 인정한다. 스웨덴 역시 발렌베리 가문이라는 독점적 재벌집단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타협을 통해 형성된 것이 스웨덴식 복지국가라고 말한다.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주장대로 재벌을 계열분리 했을 경우 이들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정승일: “그런데 한번 따져봅시다. 삼성그룹을 해체한다는 게 뭘 의미하죠?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을 떼어 내 매각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면 누가 그 회사의 주인이 되는 거죠? 지난 민주 정부 시절의 재벌 개혁 경험으로 볼 때 GM 같은 다국적 기업들 아니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 그것도 아니면 다른 재벌이 인수하는 게 현실 아닙니까? 이런 새 주인을 맞는 게 이른바 진보고 민주주의인가요?”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예컨대 통합진보당의 중심선거 공약이었던 재벌해체의 경로는, 순환출자로 얽혀있는 현재의 재벌을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하고, 현행 지주회사의 규정인 40%이상의 보유를 80%로 늘리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삼성그룹의 경우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금지하는 동시에, 이들을 지주회사라는 수직 출자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동시에 지주회사를 통한 계열사의 지배요건을 법적으로 상향조정하면 계열을 분리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총수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총수의 전횡을 제어하기 위해 계열을 분리하는 것과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에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중소기업의 노동환경이 대기업보다 양호하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계열 분리된 회사들 간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들 간의 한층 심해진 경쟁으로 ‘더욱 공정한 시장질서’가 마련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공정한 시장질서가 노동계급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십중팔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더욱 극심한 자본간 경쟁일 것이며 한층 강화된 국내/외 주식소유주의 영향력에서 배태되는 정리해고, 비정규직화일 것이다. 총선기간에 나왔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의 “우리가 진짜 주주 자본주의자”라는 말은 바로 이런 맥락에 근거한 것이다. ‘재벌해체’라는 급진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재벌 분할을 통한 시장경쟁 강화, 그를 통한 주주 이익 환원이라는 금융-주주 자본주의자들의 논리인 것이다.

 

재벌해체론은 공정한 시장경쟁론일 뿐, 그 속에 노동계급의 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그리고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의 시민단체가 ‘재벌개혁’을 그토록 외치면서도 노동계급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던 이유이다. 노동조합 역시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이윤의 주주환원을 가로막는 하나의 걸림돌일 뿐인 셈이다.

 

장하준 그룹은 이를 비판하며 재벌과의 타협론을 제기한다.

 

정승일: “그렇지 않아도 1997년 IMF 사태 직후에 한국에 투자해 재미를 봤던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요즘 다시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제 민주화라는 등장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진 거죠. … 골드만삭스나 J.P. 모건 같은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의 핵심인 투자 은행과 사모펀드들에게는 통합진보당 같은 한국의 좌파가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장하준 “시민들이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 장치를 허용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대가로 제안할 수 있는 건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 및 R&D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등이 있을 수 있죠. 아무튼 반드시 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재벌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국내 대기업들을 지금보다 더 국제 자본 시장의 압력에 노출시켜야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해온 셈입니다. 하지만 이건 한국 경제가 국제 금융자본의 논리에 전면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하는 해악을 간과하는 태도예요.”

 

결국 장하준 그룹에게 국제/국내 자본주의를 규율하는 제1 원리는 금융 자본이며, 이 금융자본의 압박 속에서 재벌들 역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금융자본의 압박으로부터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대신, 이들로부터 보편적 복지국가의 재원을 마련하는 자본과 노동의 대타협을 하자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하나 황당한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의 기원은 프로이센 제국의 비스마르크로 올라간다. 왕당파였던 비스마르크의 반동 체제가 복지국가의 연원인 된 것은 혁명의 위협을 체제 내로 관리하려는 자본가 계급의 수동혁명(그람시 식으로 말하면)라 볼 수 있다. 비스마르크의 복지정책은 ‘사회주의 탄압법’과 함께 시행되었다. 이는 결국 노동계급에게 체제 내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며 체제를 지양하려는 운동을 흡수하는 지배계급의 전략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남한의 재벌이 과연 노동계급과 무엇을 거래하려고 할까? 이재용이라는 재벌 3세가 16억 원의 세금으로 전체 삼성그룹을 3대째 승계하고, 현대차 그룹이라는 재벌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사법부 최고기관의 판결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재벌이 무엇이 아쉬워서 복지국가 건설의 주체가 되려고 하겠는가?’

 

장하준 그룹은 재벌의 비정규직 양산이 무차별적 금융자본의 압력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파악한다. 일견 옳은 말이다. 실제로 1998년 이후 비정규직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했으므로. 그러나 1998년 이전의 체제는 무엇이었는가? 1998년 전에는 비정규직이 양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았다고 볼 수 있는가? 또 1987년을 기점으로 한 계급투쟁의 활성화 이후, 1997년 IMF 사태 이전까지의 체제가 일종의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 체제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단 한 번도 안정적 계급타협이 존재한 적이 없는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그 가능성을, 그것도 지금과 같은 공황의 시기에 모색한다는 것은 공상이나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모든 계급 타협은 자본주의의 팽창기, 혹은 안정기에나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웨덴 계급타협의 장기 지속성, 서유럽식 복지국가, 심지어 비스마르크의 체제 역시 그러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30여년 간 지속된 구미의 복지국가 체제는, 브레튼우즈 체제에 근거한 안정적인 금-달러화 본위체제가 뒷받침하는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성장체제에서나 가능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이 금융-주주 자본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에서 일정한 적실성을 갖는다 해도, 미국, EU 등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자체가 흔들리는 현 세계경제위기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축적체제로부터 독립된 한국 경제의 축적체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더욱이 이들의 주장은 지배계급(재벌)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은 치열한 투쟁과 노동자민중의 힘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 또한 재벌 역시 금융화-주주 자본주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결국 장하준 그룹의 제안은, ‘봉건제의 몰락 속에서 소집된 3부회가 체제 지속을 위해 계급균형점을 찾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가정만큼 무의미한 계급타협 제안이다.

 

 

4. 대안을 찾아서

 

결국 ‘주주자본주의에 근거한 재벌개혁론’과 ‘재벌타협을 통한 복지국가건설론’의 대립으로 요약되는 현 논쟁은 모두 현재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못하는 대안끼리의 논쟁일 뿐이다.

 

노동자민중을 삶의 벼랑끝으로 몰고 있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없어지고, 심야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없어지며,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 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것, 전면적 복지가 시행되는 것은 재벌개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재벌과의 타협을 통해서도 불가능하다.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나 재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더욱이 이들의 대안은 현재 세계자본주의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서, 그 위기를 끝내는 방향이 아니라 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논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이 분명하다.

 

<노동자 자본가 사이에 결코 평화란 없다>는 노래 가사가 오늘날만큼 현실적인 적이 또 있었을까.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대안은 자본주의를 체제를 넘어서는 시야를 가질 때 찾아질 수 있다. 재벌 등 독점자본의 소유를 전사회적 소유로 바꾸고, 노동자민중이 경제를 통제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민주화’이며, 노동자민중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가? 우리가 보기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떤 형태로건 계급 균형점을 찾음으로써 안정적 발전을 지속하고 노동자민중의 삶을 보장할 것이라는 가정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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