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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9호> 통진당 분당? 정치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통진당

통진당 분당?
정치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통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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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의원총회를 통해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이 부결되자, 신당권파는 어떻게 어떤 시점에 보따리를 쌀 것인가 궁리하느라 분주하다. 게다가 14일 새벽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통진당 ‘지지철회’를 결정함으로써 탈당과 신당 창당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신당권파는 스스로의 근본 한계로 인해 여의치 않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지금 탈당을 하자니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버려야 해서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오로지 의석 수 계산밖에 없었던 3자 통합이다 보니, 의석 때문에 쉽게 탈당하지 못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탈당세력과 공조한다는 ‘굿 아이디어’까지 궁리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의회주의의 구차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통진당 안에 가해자-피해자가 있을까
 

통진당 사태 이후 구당권파는 죽일 놈, 신당권파(참여계, 진보신당 탈당파, 시민운동 일부, 민족주의 계열 일부)는 피해자라는 구도가 연출되고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사태의 본질을 가리는 가장 큰 장막이다.
오늘의 막장은 바로 노동자계급을 배신한 그들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다. 3자통합 당시 사노위를 비롯한 노동자계급운동진영과 활동가들, 그리고 적지 않은 노동대중은 심각한 우려와 반동성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에 코웃음치고, 오히려 현실을 모른다고 질책했다. 4.11 총선에서 노란색 옷과 보라색 옷을 번갈아 입어가며 오직 야권연대, 오직 당선을 외쳤던 그들이었다. 의회에 들어간다면 양잿물도 마실 기세였다. 정파 간의 갈등과 당선경쟁 과잉은 3자통합 때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노동자 중심성’이라는 말조차 꺼려하였으며, 4.11 총선에서는 노동의 ‘노’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국가 논쟁에서는 국가주의를 대중의 정서라고 각색하며 우경화를 촉진하였다. 신당권파는 말한다. “더 이상 당내에서 혁신이 어렵다”, “대중이 신뢰하는 진보대중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혁신이란 무엇인가? 각색된 대중의 정서, 국가주의에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생활정치란 이름으로 계급투쟁을 부정하거나 시대착오라 여기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뒤통수를 치는 자유주의세력과 연합하고 연립정부를 꿈꾸는 것이다. 

 

 

정치는 없고, 정치꾼들만 보일 뿐


물론 당을 만들었다고 해서 영원히 같이할 이유는 없다. 분당도 탈당도 악이거나 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신당권파라는 자들의 행태는 구당권파의 행태와 다를 바 없었으며, 정치구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럼에도 ‘진보’를 가장 낡은 것으로 만들었던 자들이 마치 피해자로 행세하고 탈당을 운운하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도모한다니, ‘정치’는 보이지 않고 ‘정치꾼’만 보인다.
구당권파의 전횡은 무엇 때문에 비롯된 것인가? 통합할 때 3자는 이념도, 과거 행위도, 전망도 상관없이 제도권 안착 외에는 목표가 없었고, 이것을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진당 어느 정파건 ‘페어플레이’라는 것은 실상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더티플레이’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한 성찰이 없기는 구당권파나 신당권파나 매 한가지다.
노동자계급정당이 절실한 이때, 노동대중은 통진당의 바로 이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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