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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0호> DNA 채취법 : 무능력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

무능력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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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다?
4월 7일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철거민 및 제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파업 노동자와 철거민을 여타의 흉악범과 동일선상에 놓고, DNA 채취를 요구한 검찰의 방침을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기자회견과 여론의 비판이 잇따르자, 검찰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 “국회가 합의에 의해 만든 법으로, 지난해 시행에 들어간 이상 법에 따라 DNA를 채취하는 것이며 이는 검사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즉, 법을 따르느라 선택의 여지없이 채취할 수밖에 없었단다. 무슨 법 말인가? 바로 지난해 7월 25일부터 시행된,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대한 법률(이하 채취법)이다.
 
그러나 채취법의 내용을 뜯어보다보면, 검찰의 입장이 얼마나 기묘한지 대번에 드러난다. 채취법 제5조와 6조는 정확히 검사의 ‘선택’ 가능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 수형인 등으로부터 ... 디엔에이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제5조) “검사는 ... 구속된 피의자로부터 ... 디엔에이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제6조) 따라서, 검찰의 입장은 정정됨이 마땅하다. 법에 따라 DNA를 채취하는 것은, 검사의 선택이기 때문에 곧 검사의 의무가 된다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헛소리의 반대편에, 의무였기에 곧 선택으로 여겨진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존재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77일 간의 투쟁에서 패배하자, 해고는 연쇄살인이 되어 되돌아왔다. 이에 국가는 무엇을 했던가? 14명의 죽음이 또 다른 77일 간의 투쟁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비하고 범죄를 예방하고자, 검찰은 DNA 채취를 요구했다. DNA 정보가 자기들 손에 있으니, 다시는 그렇게 투쟁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거다. 마치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듯이. 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이 아니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투쟁이라는 듯이. 무엇을 선택하라는 것인가? 죽음과 투쟁 사이에서?
 

원인과 싸우는 투쟁

“이 법의 시행으로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수준이 한 단계 발전하고, 범죄자의 심리적 압박으로 범죄 예방의 효과까지 있기를 기대한다.” 부산 동부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이 채취법의 시행을 환영하며 했던 말이다. 채취법의 기능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인데, “심리적 압박”에 대한 언급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검찰의 이번 DNA 채취 요구는 14명의 죽음을 짊어진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협박이자,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노동자 투쟁에 대한 국가기구의 무감각과 무능력을 표현한다. 오히려 노동자 투쟁이야말로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며 해결책을 강구해낼 수 있다. 정리해고의 칼바람과 맞서 싸운 77일간의 투쟁, 그리고 현재의 투쟁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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