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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문 사노위 53호>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노동운동과 혁신의 가능성

[2008년 이후 노동자투쟁 평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노동운동과 혁신의 가능성

사노위 신문은 이번 호 [2008년 경제공황 이후 노동자투쟁 평가와 대응과제]를 주제로 기획연재를 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자본의 경제위기에 맞선 노동자투쟁이 무엇을 극복해야 해나가야 하는지를 밝혀나고자 한다.

[기획연재 순서]
1. 2008년 이후 한국사회 노동자투쟁 평가, 2. 2008년 이후 전세계 노동자투쟁의 주요 특징과 실천적 교훈, 3. 박근혜정권하에서 노동자투쟁 전망과 대응과제

MB라서 유독 힘든 것이었을까?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공황이 전세계를 급습하면서, 한국사회 역시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 공공부문 민영화 등 지배계급의 전면적인 공세와 맞닥트려야 했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이같은 파상공세는 재임기간 내내 ‘친기업 반노동’행보로 일관했던 MB정권이 특별히 악독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명박에 앞서 김대중 정부 시절 이미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이 도입되었고, 뒤이어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법과 한미FTA협정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보다 공고히 다졌던 과거를 상기해야 한다. 실제로 고통분담론이나 노사화합 이데올로기는 이명박 정부 때 갑자기 등장했던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역대 정권들이 즐겨 쓰던 고전적인 위기타개책이었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졌던 이른바 민주정권 10년의 세월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자리잡아가는 시기였다면, 이명박 정부의 5년, 연이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은 이 모델이 완성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깊어지는 위기, 들끓는 분노

한편, 2008년 세계경제공황 발발이후 최근 5년여 간의 국제 계급투쟁 정세는 오랜 침체기를 서서히 벗어나면서 2011년 아랍의 자스민 혁명과 월가로부터 시작된 점령운동으로 폭발했고, 최근까지도 유럽, 남미, 아랍 지역 등 대륙 곳곳에서는 노동자투쟁이 역동적으로 솟구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긴축재정과 임금 및 복지 삭감, 연금제도 개악 등 긴축드라이브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유로존 국가들은 여지없이 이 같은 노동자투쟁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 계급투쟁의 양상은 그 전개속도나 폭발력 면에서 사뭇 더디게 진행되는 편이었다. 점령운동이나 가두투쟁이 세계경제위기의 중심부에서 위력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이, 국내에서는 그에 비견할 만한 대중운동의 괄목할 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일정한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고군분투, 각개약진하는 한국의 계급투쟁

한국 노동자투쟁에서 이 시기동안 총노동전선은 유실됐고 일점돌파식의 전선이 구축과 해체를 거듭해왔다. 2009년 쌍용자동차와 용산, 2010년 동희오토와 기륭전자, 그리고 현대차비정규직 투쟁,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와 유성올빼미 투쟁, 이듬해 희망광장, 희망뚜벅이,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사수투쟁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들은 당시 정세를 관통하는 중요한 투쟁이었으나, 조직노동자운동 내부의 단결된 힘을 효과적으로 발휘해 정치·사회적 투쟁으로 추동시켜내지 못한 한계가 가로놓여 있다. 이는 기존의 조직노동자 운동이 관료적 지도부의 타협적인 행보를 제대로 혁신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체들의 힘을 아래로부터 결집해내지 못한 탓이 크다.
계급투쟁의 총체적인 시야를 버리고 개별사업장 중심의 단기적인 이익을 선택한 결과, 미조직노동자를 포괄하는 전체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는 여전히 불가능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존의 조직노동자 운동이 제몫을 다하지 못한 틈새를 새로운 운동형식이 메우기도 했다. 김진숙 동지의 85호 크레인농성으로 시작된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운동은 정리해고 철회투쟁의 유력한 주체였던 민주노총이 아니라 바깥으로부터 그 힘이 수혈됐다. 희망버스운동은 자발적인 수평적 연대에 기초한 운동의 놀라운 역동성과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대중들에게 희망버스가 던진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자발적인 연대행동들을 촉진시켰다.
또한 지침에 의거한 기존 조직노동자 운동의 관성을 희망버스를 통해 조금씩 탈피하려는 흐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현안에 대해 대중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동원과 소집 개념에 가까웠던 연대는 일상적인 접근으로 전환하는 실천들이 나타났다. 이로부터, 개별사업장의 고립된 투쟁을 넘어서 전사회적 의제로 요구를 집약하고 아래로부터의 폭넓은 연대를 건설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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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어진 비정규 주체들의 투쟁

투쟁의 의미를 사회화하고 광범위한 연대를 조직하는 것은 특히나 비정규직 투쟁에서 중요한 과제였다. 2010년 동희오토 사내하청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 2011년 GM대우(현 한국GM) 비정규직지회와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이명박 재임기간 5년을 넘어 지금까지도 굽힘없이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현대차비정규직, 재능교육지부 동지들의 투쟁 등 비정규 투쟁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특히 현대차를 비롯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불법파견 문제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현대차 자본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한 대가로 거대한 부를 쌓아올린 재벌들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조직노동자 바깥에 개별적으로 흩어져있는 미조직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두텁게 형성할 수 있는 단초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비정규직 투쟁은 정규직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으로 발전하고 있지 못하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은 임금삭감과 비정규직 우선해고,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정권은 파견법 개악과 사내하도급법 등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을 동시에 겨냥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이 위기가 심화될수록 자본가계급의 ‘나라경제 살리기’, ‘회사 살리기’이데올로기는 더욱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체제에 맞서, 수세적인 생존권 방어투쟁에서 ‘비정규직, 정리해고 철폐’를 전면에 내건 정규직·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되고 있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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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맞선 현장투쟁

조직노동자운동을 무너트리기 위한 자본의 공세는 복수노조 허용 및 창구단일화 제도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10년 타임오프제 시행은 민주노조 운동을 말살하기 위한 총공세의 신호탄이었다. 단순히 노조전임자의 숫자를 제한하고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장탄압을 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본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이듬해 7월부터는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창구단일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자본은 공세의 고삐를 더욱 죄였다. 2011년 유성기업과 2012년 SJM, 만도기계에서는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에 이은 복수노조 설립으로 자본의 노림수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복수노조 설립을 통해 노노갈등을 일상화하는 한편, 교섭창구단일화로 민주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공세가 거침없이 자행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조탄압에 대응하는 투쟁은 총노동, 적어도 산별노조 운동 차원에서 조직됐어야 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개별사업장들의 대응과 투쟁으로 힘겹게 자본의 공세에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총노동전선의 재구축을 위해

2008년 이후 한국에서의 계급투쟁은 자본의 고도화된 분할 통치 전략(간접고용의 확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의 전면시행 정책 등), 자본의 사적폭력과 국가권력의 공적폭력이 교묘하게 결합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민주노조 사업장을 들쑤셔놓으면서, 전반적인 침체와 후퇴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완전한 패배나 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총노동전선을 다시 구축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내부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당위적 접근이 아닌 절박한 과제로 인식하고 실천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내면서 희망버스 운동 등 자발적 연대를 통한 운동의 혁신을 해나가야 한다. 의제면에서는 비정규투쟁을 계급운동의 사회적 과제로 올려놓고 투쟁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명실상부한 총노동전선을 구축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임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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