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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문 사노위 53호>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인터뷰]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1년 희망버스 기획단 활동가 김혜진 동지 인터뷰

 

지난 몇 년간 투쟁에서 희망버스운동이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김진숙 동지와 연대하기 위해 시작한 희망버스운동은 노동운동에 성찰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고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전 투쟁을 평가하는데 있어 희망버스 운동에 대한 평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희망버스 기획단에 참여해 활동했던 김혜진 동지를 만나 희망버스 운동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1. 노동운동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상태에서, 한 여성노동자의 헌신적인 투쟁을 계기로 노동운동 밖에서 희망버스 운동이 제안됐다.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보나?

한진 투쟁을 계기로 고공농성 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죠. 이러한 고공농성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것은 대중이 움직이는 투쟁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결국 노동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노동운동이 약화됐다는 건 제가 보기에 노동운동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희망버스가 조직된 노동운동 바깥에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희망버스에 왔던 많은 사람들 중 1/3이상은 조직노동자들 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노조지침에 의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죠. 사례를 얘기해보면 금속에 두원정공노조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조합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 조합원 한분이 희망버스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갔다는 걸 노조간부들이 나중에 알게 됐죠. 노조 참가자가 아닌 일반참가자로 참여했던 거죠.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게 한 절반 정도고 나머지를 단체 활동을 하는 동지들과 그야말로 의식있는 시민들이 채운 것이죠.
저는 조직된 노동자들은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봐요. 희망버스와 같은 장이 열리면, 자발적으로 공장의 벽을 넘어서 조직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노동운동의 시스템은 그런 장을 열어내지 못하고 있고 받아 안고 있지 못한 거죠.

 

2. 희망버스운동에 대해 자발성, 개별의 완강함이 보여주는 큰 힘 등 긍정적 평가들이 많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주체들이 대상화되고 주변화됐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들이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희망버스운동은 2008년 촛불과 2009년 용산투쟁에서 만들어진 에너지가 현실화되었다고 보고 있어요. 촛불을 통해서 우리가 알았던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대중이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희망버스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여기에 용산투쟁을 통해서 모였던 사회적 연대의 흐름들이 희망버스운동으로 이전됐던 거죠. 때문에 희망버스는 자발적인 주체들이 모여서 그 연대성을 확대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희망버스의 운영도 그러했고요.
한계라면 우선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닌 시민으로 호명되었다는 것이죠. 희망버스를 통해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자기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고 주체로 서는 과정이 참 중요했다고 보는데 전반적으로 희망버스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스스로를 주체화되는 과정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었고, 이는 노력과는 별개로 한계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희망버스 운동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영향을 주고, 새로운 전환을 추동하지 못했던 것, 적어도 노동운동의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던 것도 한계인 것 같아요. 하지만 희망버스가 조직노동자 바깥에 있었다거나 노동주체들이 주변화됐다는 평가에는 동의를 할 수가 없어요.

 

3.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이 지났다. 희망버스운동의 교훈을 통해 향후 노동운동의 과제를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박근혜정권 출범으로 사실 압박감이 상당했죠. 정부가 극도의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하면서 공격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박근혜정권도 그럴 능력은 별로 없는 것같아요. 그래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안심도 합니다.
과제에 대해서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단순히 노동조합에서 노조를 더 많이 건설한다는 것으로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다수가 조직노동운동으로 포괄되지 않는 현실에서 기존의 조직노동운동을 재편하려는 것만으로는 답이 있을 수가 없어요. 노동운동에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거죠.
이를 위해서는 공간(의제를 포함하는 개념)을 열어내야 합니다. 희망버스도 마찬가지인데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열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그런데 사노위도 그렇고 이런 공간을 열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고민의 중심이 조직된 노동운동을 어떻게 추동할 것인가로 맞춰져 있는 것이죠.
물론 처음에는 초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하나라도 쭉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공간을 열어낼 수 있을 것이고, 그 공간에는 새로운 주체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역으로 조직이에요. 이러한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사실 처음에 너무 초라하면 좀 그렇잖아요. 이런 부분들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역으로 다시 조직이거든요.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조직노동운동의 시스템도 혁신할 수 있다고 봐요.

 

정리/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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