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자유주의 세력에게 포위된 '진보'를 버려라!

자유주의 세력에게 포위된 '진보'를 버려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통합진보당 내 혁신파와 구당권파의 지리한 대립과 갈등은 이제 통합진보당 차원을 넘어 진보운동과 노동정치 전체에까지 평가/전망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현장의 노동자계급은 이 논쟁에서 기권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새로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교훈을 적극 끄집어내고 실천해야 한다.

논의에 앞서 두 가지 점은 미리 확인하자. 검찰의 통합진보당 회원명부 압수수색과 이를 빌미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공동의 대응을 하자. 그리고 통합진보당 사태를 ‘종북주의’ 논쟁으로 이끌어 가려는 지배세력의 시도에 대해서도 경계하자. 그건 별도의 논쟁 사안이다.

 

민주주의는 저들의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는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급조된 상층 중심의 당 통합’이 어떤 귀결에 이르게 되는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당원 전체의 민주적 토론과 합의, 공동의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리더쉽을 창출해내지 못했을 때, 결국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면 서로에 대한 이질감과 불신이 극대화돼서 표출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진보정당이나 노동자계급정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음으로 구당권파의 행태를 통해 드러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경시’에서 볼 수 있듯이,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았을 때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적 절차’가 항상 절대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했고, 격변하는 정세에서는 대중들의 투쟁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뛰어넘기도 한다. 그러나 목적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과정과 절차를 밟느냐도 중요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진보정치가 보수정치의 행태와 다를 게 뭐 있나, 똑같다”는, 일반 시민과 현장노동자들의 냉소와 분노는 이런 ‘상식’의 표현이다. 진보운동이 내부 혁신을 통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켜내지 못한 채 ‘자유주의’세력의 힘에 의해 혁신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해 드러난 진보운동의 비극이다. 노동자계급정치는 이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강제된 진보정당의 혁신

그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몇 몇 자유주의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진보 시즌2’ 운동이나 ‘오큐파이(점령, Occupy) 통합진보당’ 운동이다. “통합진보당 내 다수파의 재구성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민주적으로 개조하자”는 이 운동은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정파들의 낡은 관행과 관습, 패권적 조직문화 등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비판의 칼끝을 “현실과 유리된 ‘노동 중심성’”, ‘저항의 민주주의’에 겨냥하고 있다. 진보운동을 낡은 노선과 이념, 조직문화로 규정하면서, 진보를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하려 하고 있다. ‘개혁적 진보’라는 이름으로. 만약 노동자계급정치 운동진영이 이에 대해 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노동자계급정치는 다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갇혀버릴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제 더 이상 통합진보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었던 진보운동의 재편의 문제이자,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의지해 정치세력화를 꾀해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재구축의 문제이다. 그 방향은 ‘자유주의적 재편’이냐? ‘노동자계급적 재편’이냐이다. ‘닥치고 통합진보당’을 밀어붙였던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조건부 지지 철회’로 책임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에서 후퇴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치적 비관주의와 패배주의 또한 주장되고 있다.

 

‘진보 시즌2’운동이 아닌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노동자계급정치운동은 지금 여기에서 후퇴해서는 안된다. 다시 기존과 같은 방식의 노조상층부의 조합주의적 정치를 되풀이 해서도 안된다. ‘노동 중심성’은 진보정당에서 노동의제를 다루는 것으로, 혹은 노조상층지도부가 진보정당에 결합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기댄 노동자정치세력화’, ‘노조상층부 중심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현장과 지역의 노동활동가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사태 때문이 아니라, 2012년 대선을 통해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임박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격화될 계급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으로 이끌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 중심성’은 이 속에서 현실화되어야 한다.

 

박성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공공부채가 급증한 진짜 이유

공공부채가 급증한 진짜 이유

 

 

공공기관 부채와 무디스의 위협

유럽의 재정위기로 국가부채에 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방송에서는 한국의 국가부채가 몇 퍼센트라는 이야기가 뉴스 자막을 통해 종종 보도되곤 한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한국 공기업 부채 증가를 두고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경고를 날리면서 그리스, 스페인 등과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도 재현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공공기관 부채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2011년 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는 463조 5천억 원이고, 국가부채 규모도 420조 7천억 원을 넘어섰다. 더구나 국가부채의 경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8년 30.1%, 2009년 33.8%, 2010년 33.4%, 2011년 33.3%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공공기관의 부채의 경우 2011년에만 공기업 37억 5천억 원, 준 정부기관 24억 2천억 원이 늘어나 61조 원이 넘게 증가하는 등 최근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2012년 4월 초 한국 공기업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3'까지 내릴 수도 있다는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경고는 심상치 않은 지점이 있다.

 

공공기관 부채, 비효율 때문?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기관 부채의 원인은 비효율적인 경영이다. 즉 민간부문보다 노동 강도가 떨어져서, 같은 업무량에도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노동자들에게도 고임금을 줘서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등장했다. 소위 ‘공공부문 선진화’정책은 바로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제거하여 민간기업처럼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공기업 부채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공기업 부채는 2004년 말에는 83조 8천억 원이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7년 말까지만 해도 138조 4천억 원이었다. 근데 2011년 463조 원이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경천동지할 큰 변화가 일어났거나! 특히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은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 하에 2009년 2만 2천 명이 감축되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그 자리는 비정규직이 채워나가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공공부문의 비용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이 계속되어왔는데도 오히려 부채가 늘어난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부채의 빠른 증가는 무엇 때문인가?

 

부채증가, 진짜 이유

현재 전체 공공기관 부채 463조 5천억 원 중 부채액의 상위에 위치한 공공기관을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 130조 5712억 원, 한국전력공사 82조 6639억 원, 예금보험공사 40조 4884억 원, 한국가스공사 27조 9666억 원, 한국도로공사 24조 5910억 원, 한국석유공사 20조 8000억 원, 한국철도시설공단 15조 5674억 원, 중소기업진흥공단 15조 1125억 원, 한국철도공사 13조 4562억 원 등이다. 전체 공공기관 부채 중 이들의 부채가 80%에 육박한다.

또한 2011년 증가한 공공기관 부채 61조 8천억 원의 경우에도 예금보험공사 13조 3천억 원, 한국토지주택공사 9조 원, 한국 수자원공사 4조 5천억 원, 한국전력공사 10조 4천억 원, 한국가스공사 5조 7천억 원 등이 7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공공기관 부채 증가이유가 한 눈에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경우 세종혁신도시, 미군기지사업, 산업단지개발 등의 국가정책 사업으로 부채가 7.4% 증가하였지만, 자산도 6.7% 증가하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채는 4대강 사업과도 연관이 있는데, 이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에도 영향을 미쳐 부채는 55.6%, 자산은 20.4% 증가하였다. 또한 예금보험공사의 경우 부실저축은행 지원으로 인한 부채증가다.

공공서비스 확대를 위해 낮은 요금과 더 안전한 노동현장을 위해 부채가 증가했다면 그것은 부채가 아니라 정부재정에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정권은 건설자본을 위해, 금융자본을 위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치 관료들의 부정축재까지 배후지원하면서 돈을 써놓고 효율성 운운하고 있는 꼴이다. 그래놓고 부채 때문에 공공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며 민영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결국 자본을 위해 부역하는 자들의 초절정 사기극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노동자민중이 희생을 강요당할 것이 아니라, 자본에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정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하라

[성명]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하라

 

 

또다시 중세식 마녀사냥이 자행되었다. 5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노동해방실쳔연대(해방연대) 회원 4명을 연행하였다. 또 진보넷에 있는 해방연대 공식이메일도 압수수색하였다. 다행히 해방연대 회원 4명에게 청구되었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한국사회의 국가보안법은 이미 수년동안 국내 민주주의인권단체들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도 반민주적 악법으로 지목돼 여러 차례 걸쳐 폐지를 권고 받아 왔다. 그럼에도 소위 ‘국격’을 운운하던 이명박정부가 낡아빠진 악법을 이용해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연대 활동은 무죄

이명박 정부는 영장기각만이 아니라 해방연대 회원들에 대한 수사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 소수 자본만을 위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고통받는 노동자민중과 투쟁해온 해방연대의 활동은 정당하다. 비정규직·정리해고를 양산하면서 소수 1%의 배는 불리고, 99% 노동자민중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해방연대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 없다.

더욱이 이런 주장과 활동이 올바른가를 검증하는 것은 국민이지, 결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치안유지법이 변용된 것으로, 민주주의사회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탄압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른바 선진국 중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선전선동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앞장서서 탄압하는 사례는 없다.

 

공안정국 조성인지 의심

이명박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을 통한 탄압은 더욱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은 사찰공화국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해방연대에 대한 탄압이 검찰의 통진당에 대한 압수수색과 연이어 벌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현 정부가 노동자민중투쟁과 반정부투쟁을 억압하기 위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것이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곳곳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만약 이명박정부가 통진당 사태 등을 빌미로 공안탄압을 본격화하는 것이라면 이는 사회주의운동 세력은 물론이고 전체노동자민중운동, 나아가 민주주의-인권을 지키려는 한국사회 모든 양심세력들의 전면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활동 보장은 민주주의의 바로미터

노동자민중운동을 분단이라는 한국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악용해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탄압하는 것은 더 이상 묵과될 수 없는 반민주적 행위다. 따라서 이명박정부는 국가보안법을 활용한 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운동을 탄압하는 도구이자,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향한 활동을 원천 봉쇄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시켜야 한다. 사노위는 해방연대에 대한 탄압에 맞서 함께 연대할 것이며 사회주의 정치활동 보장,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그것이 곧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더욱 진전시키는 일이며 동시에 이 땅에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해방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사노위(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다가올 격동의 유럽, 불안해하는 자본가들

다가올 격동의 유럽, 불안해하는 자본가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호탄

‘긴축 프로그램 재협상’을 공약으로 건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급부상을 두고 유럽 전체가 떠들썩하다. 유럽의 정치권력자들, 자본가들은 분명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 급진좌파연합의 정책이나 집권의 두려움이 아니다. 겨우 봉합해놓은 자본의 ‘위기’가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터져버릴 것 같은 ‘위기’ 그 자체 때문이다.

지난 각 국 선거에서 보여준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표현은 유로존의 정치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강요해온 ‘구조조정과 긴축’에 대한 거부였고, 그에 따른 정치권력자들의 ‘정치적 파산’이었다. 그 정치권력자들의 파산이 이제 자본의 위기를 억지로 봉합해왔던 중심부 권력자들의 파산으로 다가가고 있다. 프랑스, 그리스를 비롯해 얼마 전 독일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여당 패배는 바로 그 신호탄이다. 특히 그리스의 ‘긴축거부’가 바로 유럽 자본주의의 중심부를 겨냥하면서 ‘위기’의 실체를 점점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긴축논쟁의 실체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자 프랑스 사회당 올랑드는 어느 순간 유로존을 위협할 인물로 등장하고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의 치프라스는 유럽을 파국으로 몰아갈 주범으로 언론의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올랑드가 벌이고 있는 독일과의 긴축/성장 논쟁은 긴축으로 인한 폐해를 보완하자는 것에 불과하며 올랑드 역시 긴축과 자본에 의한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있지 않다. 메르켈-사르코지의 동맹으로 이뤄졌던 '고강도 긴축‘정책에도 재정위기 상황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신재정협약 역시 ’위기‘해법으로 실효성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의 급부상을 두고 벌이는 유로존 중심국들과 자본가들의 협박은 그들의 ‘불안함’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급진좌파연합이 다수당이 돼서 연정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재협상’을 통해 긴축 거부가 실현될 지는 의문이다. 급진좌파연합 역시 ‘유로존 내에서의 해결’이라는 타협적 기조를 가지고 있고 이는 자본과의 파국적인 상황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 유로존 탈퇴 문제는 지배자들 내에서의 고민이다. 긴축을 거부하는 그리스노동자민중들에게 ‘유로존 탈퇴’협박을 해대고 있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경우 그 파급력은 프랑스, 영국, 독일 은행들을 모두 휘청거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소위 ‘위기국가’들이다. 이들 역시 가혹한 긴축에 따른 노동자민중들의 저항이 날로 거세지고 있고 추가적인 긴축 압박은 ‘디폴트’의 도미노현상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한계

지난 3년간 유럽 노동자민중들은 전국적 총파업과 격렬한 거리시위, 광점 점거운동 등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고 구조조정-긴축을 강요하는 집권여당을 갈아치우면서 유로존이 제시하는 해법을 거부해왔다. 그리고 2012년, 자본의 ‘해법’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적 선택은 지난 4년 동안 가장 혹독한 세월을 보냈던 그리스를 정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결이 선거로만 제한된다면 노동자민중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전 유럽으로 확대되고 있는 파쇼극우세력들의 화려한 등장 속에서 유럽의 위기를 자본과의 적당한 타협을 해결하겠다는 ‘개혁’ 정치로는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는 ‘야만’의 자본주의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2012년, 유럽노동자민중들이 그것을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달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은 ‘격동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선지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다시 투쟁의 불을 지피다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다시 투쟁의 불을 지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년 째 지속되면서 월가점령운동에 영감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 경제 전체가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스페인 노동자·민중이 들끓고 있다. 최근 5월 22일에는 스페인 전국 교사와 각급 학생들이 교육지출 감축을 규탄하며 시위를 했고, 지난 5월 12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80여개 도시에서 수십 만 명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이 긴축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번 투쟁은 작년 5월 15일에 시작된 시위(‘15M’)의 1주년을 즈음으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중단되지 않은 것이다. 집회와 농성은 일상적으로는 수 천 명 규모로, 특정 날에는 수 만 명 규모로 나날이 이어졌다. 스페인 국민 80% 이상이 시위를 지지했을 정도이다. 또 11월 20일 총선에서는 집권 사회주의노동자당(PSOE; 사민주의 성향)과 보수우익 국민당(PP) 등 제도정당에 대한 거부를 ‘무효표 던지기 운동’으로 표출했고, 신임 총리가 된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가 긴축의 고삐를 더 조이고 시위를 강경 진압하기 시작하자 투쟁은 더욱 불붙어 연말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멈출 줄 모르는 스페인의 투쟁은 2011년 초 중동지역 민중봉기와 그리스 등 유럽 전역의 파업으로부터 힘을 얻고, 역으로 미국 월가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에 영감을 줬다.

 

각계각층 남녀노소의 각양각색의 요구

중동에서 그랬듯이 ‘15M’ 혹은 ‘분노한 사람들’은 애초 청년들로 시작됐다. 50%에 달하는 스페인의 청년실업율과 긴축으로 인한 교육지출 삭감이 화근이 됐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전 국민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5월 15일 6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필두로 일련의 투쟁을 시작했다. 운동은 곧 각계계층 남녀노소로 확산됐으며, 요구도 다양해졌다. 프랑코 독재를 경험했고 연금을 삭감당한 노인, 난방이 중단된 학교가 싫다는 중고생, 집을 압류당한 중산층, 부도난 자영업자, 구제금융에 항의하는 회사원, 해고와 구조조정에 시달리는 노동자, 수당이 곧 끊길 실업자 - 이들 모두 자신의 요구를 걸고 거리로 나왔다. 또 모든 의사결정을 대중 총회에서 결정하는 등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자본주의 반대’ 등 보다 거시적인 요구를 내세우기 한다. 그렇듯 ‘분노한 사람들’의 요구는 총체적이고 반체제적이다. 그러나 명확한 정치적 전략이나 목표로 수렴되거나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과연 노동자가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2012년 초, 정부가 대대적인 노동유연화 정책을 발표하자 ‘분노한 사람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노동자위원회(CCOO)와 노동조합총연맹(UGT) 등 주요 노총이 2월부터 본격 합류하자 시위는 새로운 힘을 부여받았다. 노동자들은 3월 29일에 전국 총파업을 일으켰고, ‘분노한 사람들’도 각자 동맹 휴업, 상점 휴점, ‘소비 거부’ 등을 벌이면서 파업을 전 사회적인 불복종 행동으로 확장시켰다. 주요 노총들이 여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노동자가 이렇게 조직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분노를 진정한 변혁으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스페인 노동계급이 이 투쟁의 구심 역할을 해야 한다. 이후 투쟁은 기존 정당 및 노조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태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얼마나 앞장서서 투쟁을 이끌고 가는지, 주체와 요구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이를 얼마나 잘 수렴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변혁전략을 짜는 지에 달려 있다.

 

전소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과거의 '오류'를 넘어라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과거의 ‘오류’를 넘어라!

 

 

여전하다. 통진당 사태를 두고 보수우익언론은 색깔 입히기에 혈안이 됐다. 이번 기회에 노동자민중운동 전체를 종북으로 덮어 씌워 여론 재판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하다. 통진당 사태를 통해 드러난 진보정치의 비민주적 조직 관행과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비극은 노동자민중들에게 자본가 정치와는 다른 ‘노동자정치운동’을 회의하게 만들었다.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세력화운동을 둘러싸고 조합주의적 정치세력화의 재현을 논하거나, 정치를 기각하고 대중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해야 한다. 통진당 사태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새로운 노동자계급정치의 전망을 열 수 없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운동에 있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이 두 가지 문제를 짚었다.

 

 

사라진 ‘노동’을 찾아라!

- 노동조합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계급 중심성이다!

 

책임회피

당연하듯 통용되는 일상적 단어나 개념이 때로는 오히려 그 뜻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현재 ‘진보’라는 단어와 개념이 그렇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진보우파’모임을 한다고 하니 이제 진보는 보수의 상대적인 개념조차 되지 못하고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낡은 것이 되었다. 여기 비슷한 비운의 단어가 있으니 바로 ‘노동 중심성’이다.

민주당 후보까지 지지하는 것을 ‘계급투표’라고 강변했던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들은 지난 지자체 선거나, 서울시 보궐 선거에서, 그리고 이번 총선까지 진보정당에 대해 한마디도 없다가 사태가 악화되자 마치 구민노당 당권파들이 모든 것을 망친 양 격노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노동’을 정치의 미아로 만들어놓은 것을 망각하고 이제는 운동 내 좌우를 넘나들며 ‘노동 중심성’을 대안이라 외친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중심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조합주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다

통진당 출범과 일련의 사태를 접한 노동자들은 ‘노동중심성’을 찾자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통진당의 진성당원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40%가 넘고, 조준호 민주노총 전위원장은 노동의 몫으로 공동대표를 했음에도 ‘노동중심성’이 실종됐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것은 ‘노동중심성’이 노동자 당원의 숫자도 아니고, 노동자출신이 대표를 하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보다 정당 내 노동조합의 영향력과 지분이 확대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노동조합은 대중운동이다. 노동조합 내에는 다양한 정치 성향을 포함하고 있고 심지어 비계급-반계급적 운동성향까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당 운동을 결정해 버리면 그 당 운동은 ‘조합주의적 정치세력화’로 귀결될 뿐이다. 그 양상은 우리가 봐왔던 것처럼 노동의제를 의회에 청원하고, 결국에는 노동자들을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의회’에 가둬놓게 되는 것이다.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노동중심성’을 여전히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로 사고한다면 과거의 우를 다시금 반복하는 것이다. 실제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배타적 지지’를 무기로 실리주의, 야권연대연합 독려로 행사되었지, 그 이상으로 진전된 바가 없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정당과 노동조합 모두를 계급적으로 강화, 재편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자정치를 구현할 것인가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노동(조합)중심성’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철저히 복무할 수 있는 정체성, 즉 ‘노동계급 중심성’이다.

진보정당이건 민주노조건 지배계급이 설정한 ‘민주’와 ‘진보’의 개념과 울타리를 넘어 계급성을 찾아야 한다. ‘노동계급중심성’이란 노동조합의 정당 내 지분이 아니라 정당의 계급정체성을 준거로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 노동해방으로 나가는 무기로써의 정치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압력과 입김의 수위 정도(사실상 노조 상층 간부의 그것)를 ‘노동중심성’의 바로미터로 놓은 순간, 비판해 마지않았던 한국노총 상층부가 행하였던 정치와 다를 바 없다. 역사는 이를 ‘배반의 정치’, ‘출세주의자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되찾아야 할 노동계급의 정치

노동자계급정당을 만들려는 이유는 노동조합의 의사를 반영하거나, 지분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정당, 투쟁은 노조”라는 현실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구도를 강화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계급성을 강화하고, 보다 정치화하여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넘어 노동자계급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의 계급적 실천을 만들기 위함이다.

계급의 철학과 지향을 잃은 ‘노동중심성’은 오히려 계급 정치를 혼란케 하는 독이며, 노동조합 관료와 기회주의자들이 ‘노동자 정치’라는 이름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는 탈출구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중심성’은 단순히 노동자가 당원의 다수에 이루는 것에 머물거나, 노동의 의제를 좀 더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과 충돌이 이 사회의 주요한 지표임을 명확히 하고, 노동자가 행위자로써, 계급의 요구와 실천을 기반으로, 집단화되어 정치를 하는 것이다.

 

김재광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인터뷰 - 엄길용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 "아직도 정신 못차렸습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는 통진당 사태를 두고 ‘조건부 지지철회’를 결정했다. 조건부 지지철회는 ‘통진당이 혁신비대위의 쇄신안을 실현할 때까지 지지를 철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2012년 노동자투쟁을 앞두고 ‘대중투쟁을 방기한 채 야권연대에만 목매달았던 지도부의 행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TX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맞서 임단투를 준비하고 있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엄길용 동지를 만났다. 현장에서 2012년 파업을 조직하고 있는 그에게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어떻게 이해됐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직도 정신 못 차렸습니다“

 

통진당 사태에 대한 민주노총 중집 결정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애초에 정치방침에 해당하는 선거방침을 중집에서 결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도대체 중집에게 누가 그런 권한을 부여했습니까? 야권연대를 선거방침으로 세우고 정당투표는 통진당에게 하라는 민주노총 결정은 이번 사태 이전부터 현장에 많은 갈등과 혼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직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현장에 밀어붙였죠. 그런데 통진당 사태가 터진 거예요.

그런데 민주노총이 단호하게 결정을 못하고 조건부 지지 철회로 또 혼란을 주고 있어요. 이런 결정으로는 민주노총이 말하는 노동자정치가 자본가들 정치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기도 어려워요.

 

이번 결정도 그렇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도 민주노총은 피해조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현장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현장 조합원들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일 수 있죠.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민주노총을 통진당과 한통속이라고 이해하니까요. 하지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피해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겁한 거죠. 조합원 교육이나 현장순회 간담회를 하다보면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다 똑같은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진보정치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겠지요.

진보정치에 대한 노동자의 관심은 당분간 약화될 겁니다. 현장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진보정치가 곧 노동자 정치였는데, 기존 제도정치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할 말이 없어요. 잘못된 것이니 새로운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어렵죠. 뭔가 대중들이 보기에도 정말 다르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천이나 지향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통진당에 ‘노동중심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가 반드시 움켜줘야 할 게 무엇인지?

 

아직도 정신 못차린 거죠. 민주노총이 노동중심성을 말하려면 통진당과 분명하게 결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중심성이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 만들어달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노동자들도 많습니다. 이건 순전히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만들어 낸 왜곡된 인식이죠. 국회 많이 진출하는 걸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말해 왔던 지난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의회주의, 대리주의가 결국은 가장 중요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성을 말아먹고 있어요. 지금 통진당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잖아요. 다른 정치를 말해야 합니다. 87년 노동자투쟁만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확실한 정치세력으로 각인된 적이 있었나요. 그런 투쟁을 이끄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그게 새로운 정치세력화운동의 첫 기준이라고 봅니다.

 

인터뷰 정리 : 임용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정치로부터 '후퇴'가 아니라 사회주의 당건설로 '전진'

정치로부터 ‘후퇴’가 아니라 사회주의당 건설로 ‘전진’

 

 

 

기권주의는 답이 아니다

통합진보당 사태 후 다양한 반응과 대안 모색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정치로부터 기권하고, 후퇴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너마저'라는 실망감이 정치적 냉소를 넘어 정치적 기권과 후퇴를 낳고 있다. 이는 87년 이후 각성한 한국 노동자계급이 정치운동의 취약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에 찬물을 끼얹는 짓거리다.

또 다른 정치적 기권주의가 있다. 이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정치적 기권주의로 앞의 자연발생적인 기권주의보다 더 무섭다. 예컨대 임영일 교수는 얼마전 한 인터넷 신문 기고를 통해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라며 질타할 자격이 없다고 옳게 지적한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출하는 ‘민주노총 운동과 산별운동을 강화하고 노동운동은 정당정치로부터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기권주의만 강화할 따름이다.

 

대중운동 강화는 노동자 정치와 동전의 양면이다

지금 선진노동자들이 해야 할 일은 통합진보당 사태-국참당과의 통합, 야권연대, 배타적 지지, 당내 민주주의 파괴 등-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통합진보당과 한 몸으로 움직이며 노동운동을 우경화시킨 민주노총의 정치적 오류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노동운동이 더 정치화되어야 한다. 지금껏 한국 노동운동의 문제점 중 하나가 현장에서의 정치활동이 부재했다는 지적을 부인할 자는 없을 것이다. 대중조직 강화를 위해서는 정당·정치조직이 대중조직 속에서 정치활동을 강화해야 하는 것만큼 대중조직이 정치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미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정당·정치조직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선진노동자들도 하나의 정당으로 뭉쳐 있지 않다. 노동자계급에 기반하는 복수정당 시대다. 여기에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도 진행 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운동의 중심축인 선진노동자들이 당 건설-사민주의 정당이든, 사회주의노동자당이든-의 주체임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선진노동자들이 당 건설에 나서려면 당연히 통합진보당의 모든 행위를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적 결정이 오류였음을 대중조직 내부에서 논쟁해야 한다. 민주노총 중집의 '조건부 지지철회'로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혁신비대위가 구당권파를 탈당시킨다 해도 심각한 문제가 남는다. 구당권파 탈당과정에서 유시민류와 같은 부르주아 정치가 강화되어 더 우경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당면한 시기에 선진노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적 기권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선진노동자들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의 주체로 설 때 비로소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총파업과 정치

정치적 기권주의를 유포하는 또 다른 세련된 말이 있다. 대중투쟁, 특히 총파업과 정치를 대립시키거나 분리시켜 정치를 투쟁과 다른 무엇으로 만드는 것이다. 2012년 지금 당장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개정"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총파업 조직화가 당면 시기 당 건설 임무와 별개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면 총파업이 자연적으로 '정치'의 문제, 당 건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87년 이후 수많은 고비 때마다 우린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으로 대처해왔고 그 결과가 민주노동당에 이은 통합진보당이다. 96~7년 노개투 총파업의 결과가 민주노동당으로 귀결되었으며 노동운동 내부의 의회주의의 강화를 낳았다. 소위 노동운동 내의 국민파와 중앙파가 민주노동당 건설로 나아갈 때 현장파(소위 좌파)는 '현장권력 쟁취! 계급적 연대!'를 기치로 현장투쟁, 총파업투쟁 조직화로 나섰다. 15년이 지난 지금 현장파는 거의 사라졌다. 존재한다고 해도 현장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정당은커녕 변변한 정치조직하나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 다시 선진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조직한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통합진보당 사태, 민주노총의 정치적 오류에 맞선 투쟁, 새로운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 등, 당면한 정치투쟁에 기권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당 건설을 중심으로 총파업 조직화를 배치해야 한다.

 

누구나 한국도 세계경제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얼마 후에는 ‘그리스’발 경제위기가 쓰나미처럼 한국경제를 강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사회적 위기로 확대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우린 그 위기상황에서 써먹을 무기가 없다. 노조관료들에 맞서 투쟁을 확대할 무기, 개량주의 정당에 맞서 투쟁할 무기, 폭압적 국가기구에 맞서 투쟁할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사회주의노동자당이다.

 

정원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이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나설 때다

이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나설 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가폭력

5월 24일 대한문 앞 분향소가 계고장 하나 없이 철거됐다.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는 49재를 막 끝낸 쌍차 노동자들에게 소화기를 분사하며 폭력을 자행하고 쓰레기차를 앞세워 영정사진들과 분향소를 다녀간 이들의 추모의 맘이 담긴 각종 물품들을 휴지 버리듯 쓸어버렸다.

노동자들은 절규했다. 3년 동안 도대체 몇 번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이 잔인한 폭력은 22번째 죽음 앞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은 외롭게 절규만하고 있지 않았다. 이 잔인한 국가폭력에 분노하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그 만큼 대한문을 찾는 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그렇기에 잔인한 폭력 앞에서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 커지고, 투쟁의지는 더 단단해진다.

 

사회적 확대

계속된 대한문 앞 투쟁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의 투쟁,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분명 높아져 가고 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고 있고 다양한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이러한 관심을 더욱 확대해나기기 위해 범대위는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고, 6월초 1,000인 국제 노서명 외신기자회견과 함께 국제행동의 날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학계는 대토론회를 준비하고, 문화예술계는 각종 행사들을, 종교계는 범순례 대행진을, 운동사회 대표자들과 원로들은 분향소를 함께 사수하면서 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쌍용차 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복직시키고 정리해고제를 철회시키기 위한 사회적 흐름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이제 각 지역에서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통해 이 투쟁을 더욱 확산시키는 실천을 적극적으로 벌여내야 한다. 이를 통해 6월에 광범위한 사회적 투쟁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만들어내야 할 중핵

그럼에도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있다.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투쟁계획이 제출돼야 한다. 그러나 쌍용차 투쟁을 비롯한 현안투쟁을 힘 있게 전개하겠다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투쟁계획은 불투명하다. 6월 13일 전국금속노동자대회를 제외하고 나면 총파업투쟁과 쌍용차투쟁을 어떻게 결합시켜내면서 완강한 투쟁전선을 구축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5월 19일 범국민대회는 22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추모하는 마지막 행사가 아니라 ‘죽음에게 죽음을 선언하는’ 날이었고 곧 ‘추모’를 ‘투쟁’으로 바꿔낸 날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사회적 확산을 넘어 조직노동자들의 실천투쟁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쌍용차 투쟁에 실질적인 힘을 만들어낼 중핵이다. 그 중핵을 만들어내지 않고 사회적 여론 확산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도부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노조법 재개정을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그 총파업이 쌍용차 투쟁과 분리되어 조직된다면 그 총파업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말하는 전국적 총파업, 15만의 총파업이 아니라 단사 투쟁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이름을 얹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총파업은 그야말로 말잔치가 되고 말뿐이다.

 

총파업과 쌍용차 투쟁을 분리하지 말아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지역별 총파업 조직화를 토론회와 현장순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현장과 머리를 맞대고 총파업 조직화 방안을 고민하고 현장을 만나면서 파업투쟁을 선전선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단위사업장에도 파업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투쟁을 벌이기 마련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총파업으로 가는 실제적인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정점에 바로 쌍용차 투쟁이 있다. 희망버스에서 보여준 조직노동자의 무기력을 또 다시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명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4호> "두 바퀴로 만드는 차별 없는 세상"

“두 바퀴로 만드는 차별 없는 세상”

 

 

* 4.20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의 날’로 삼고 투쟁한 장애인활동가들 덕분에 4.20투쟁은 잊지 않았다. 그런데 4.20은 훌쩍 지났는데도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경기 장차연)의 ‘두 바퀴로 가는 세상’ 도보순회투쟁이 그것이다. 사노위 신문은 4.20때만이 아니라 5월에도 장애인들의 투쟁을 알리고 싶었다. 원고를 요청했더니 편지 글이 왔다. 생생함을 위해 원문 그대로 싣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동권을 무시하는 경기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진보적 장애운동 연대체로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희망휠체어‘두바퀴로 가는 세상’ 도보 순회투쟁은 이 사회에서 가장 기본권인 ‘인간이면 누구나 이동할권리가 있다’라는 생존권 확보 투쟁입니다. 2011년 수원역 87일간의 투쟁의 연장선으로 아직까지도 교통약자 최약자인 장애인의 이동권은 깡그리 무시하고 우롱하는 경기도 31개 시·군을 향한 우리의 실천적 행동이었습니다.

경기도청에서 5월의 봄비로는 굵은 비를 우비로 막으며, 군포시를 시작으로 안산시,광명시, 김포시, 평택시, 오산시, 수원시를 방문했습니다. 3일차 광명시에서는 시장을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을 장애인들은 한쪽이 삐뚤어지고 반쪽뿐인 나의 온몸으로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광명시에서 김포시로 이동하는 대중교통 수단은 만만치 않게 4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국의 명물인 저상버스에 널빤지가 비치되어 있는 버스 점검도 하였습니다. 운송회사에서는 미리 리프트를 점검헤 5년 이상 장애인의 민원제기에도 나오지 않던 리프트가 작동하는 기이?? 현상도 있었습니다.

평택에서 협상을 하고 마지막 거점인 수원시청을 방문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수원시였습니다.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수원시는 경기도의 수뇌부가 맞았습니다. 우리는 이동권은 생존권이고, 생존권은 기본권이 때문에 예산을 핑계 삼지 말라 했습니다. 하지만 행정 관료에게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뿐이었습니다. 협상중 회의가 속개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계속적인 거짓말을 일삼고, 급기야는 시청에서 철수 해야만 시장과 면담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장 면담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의 인권이 인정 되지 않는 수원시와는 더 이상 인권을 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도보 순회투쟁단과 연대단체는 수원시청에서 수원시장의 공식적 사과와 협상 테이블이 속개되어 기본권 확보 논의가 속개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투쟁은 계속 됩니다

경기도 31개 시군은 이구동성으로 법을 지키지 않아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합니다. 생존권을 립서비스로 넘기는 권력자들 앞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은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적법합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기본권입니다. 그러므로 예산 또한 기본예산에 편성되어야 합니다. 도보 순회투쟁 중에 지역 투쟁사업장 방문도 함께 하였습니다. 재능교육, 쌍용자동차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우리들의 동지였습니다, 수만 명이 모인 범국민운동에 장애인도 함께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차별에 저항하는 투쟁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순회투쟁으로 저상버스100% 도입과 2013년까지 특별교통수단 100% 도입 운영, 활동보조서비스 시추가지원이 모두 합의 되었습니다. 또한 이동권 완전 쟁취를 위한 활동가들의 현장 투쟁 경험으로, 지역 투쟁이 강화되는 큰 성과를 이뤘습니다.

함께 하는 길, ‘두 바퀴로 가는 세상’ 도보 순회투쟁은 경기도 장애인이 평등하게 이동할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형숙(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