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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를 마치면

깁스를 한채로 진주까지 갔다 왔다. 화요일에는 공주교대, 오늘은 진주교대. 일주일에 지방에 두번씩이나 불편한 몸으로 왔다 갔다 하려니.. 몸이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깁스를 한 나 때문에 이래 저래 신경 쓰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영회를 하고 나면 난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열한시간 왔다 갔다 한 사람치곤 그런 대로 생생하다. 다큐 상영이 끝나고 나면 두가지 맘이 든다. 너무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갑갑해 하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안한 마음은 다큐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칠고 낮아 지는 것 때문이다. 워낙에 불편한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사람들이 막막해 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조용히 이야기한다. "막막하시죠.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원래는 웃기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워낙에 다큐를 만들 때 화가 나있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런다. 그러면 더 썰렁..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다큐를 만들때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되는 데 어디 화를 낼 때도 없고 그리고 화를 낸다고 바뀔 상황도 아니니...그런 현실 속에서 이주동지들이 살아 왔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막막했던 것 같다. 농성단 대표인 샤말씨가 잡혀 가고 나서의 그 막막함이란... 샤말씨가 대표라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행동이 뭘 의미하는 지. 그렇게 열심히 외쳤던 것들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현실이 화가 났다. 그럼 이 투쟁은 뭔가. 한 겨울 그 추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한 사람들은 뭔가. 정말 십여년을 이 땅에서 열심히 당당히 살아온 이 사람들은 뭔가. 왜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건가. 그때 분노가 뭔지 알게 된 것도 같다. 편집하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마우스를 쥐고 비두씨가 '나 권리 있어'외치던 클립을 트랙에 올리면서도 케이비씨와 헉씨가 잡혀 가던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고 막지 못한 내가 싫어서, 샤말씨가 조용히 '저는 이 투쟁 책임 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도, 라디카 언니가 '마지막까지 동지들이랑 같이 있고 싶다'고 할 때도, 그 말에 '저도 라디카 누나랑 끝가지 할 겁니다' 라고 답하는 굽다씨를 볼때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이리떼 처럼 달려와 굽다씨를 연행하는 클립을 올릴 때도 울었던 것 같다. 한참을 울고 나면 지쳐서 한동안 편집 할 수가 있는데 그러다 그게 서러워 또 울었던 것 같다. 참 노골적이다. 그래서 지금 보면 참 옹졸하고 호흡도 가파른 다큐가 되었고 그런 호흡 때문에 보는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내가 좀 여유로운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경험이라도 많거나 아니면 내공이라도 쎈 사람이었다면 호흡을 조절해 가면서 이주동지들이 가지고 있는 사는 힘들을 다 보여주면서 했을 텐데 그랬으면 더 인간적이고 보는 사람이 더 가슴 깊이 이주동지들에게 혹은 투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때 난 누군가가에게 도발하고 싶었다. '이 봐라 어쩔래 주체가 있는데 이제는 뭔가 좀 다르게 해야 하지 않아. 이 현실을 바꿔야 하지 않아.' 하면서 나의 화를 나누고 싶었다. 보는 사람이 막막해져서 같이 싸울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다큐가 끝나고 불이 켜지기 전의 사람들의 막막해지는 숨소리를 들으면 미안하면서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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