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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2
    공감(3)
    schua

공감

한동안 열광했던 정신분석, 지금은 숙성중이다.

 

이제 슬슬 책을 읽고 싶은데 워낙 모르는 분야이다 보니 작가가 누가 좋은지, 내게 적당한 책이 뭔지 몰겠다. 서점에 가야겠다.

 

그래도 미루 낮잠 시간에 한쪽씩 읽는 책 중에 하나가 정신분석책으로 [관계의 재구성]이다.

영화 속 인간 관계를 가지고 정신분석을 하는 책이다 보니 그런대로 읽히기는 한데 역시 남자의 글쓰기와 여자의 글쓰기는 좀 다르단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그전까진 여자들이 쓴 책을 읽었는데 읽는 중에 마음이 참 복작복작거렸다. 그런데 이책은 읽으면서 그냥 응응 그렇구나 정도로 정보만 쌓여갔다. 좀 시시해서 한동안 다른 책을 보다가 최근 다시 읽는데 한 챕터가 공감이다.

 

거기 나온 말은 정말 반짝인다.

 

.............

공감의 문은 열기 힘들다. 정말 절실하게 필요를 느낄 때, 문을 두드리게 되고, 내가 조금씩 빗장을 열고 훈훈한 바깥 공기를 쐬어본다. 밖의 공기가 안으로 들어와도, 친구가 내 안으로 들어와도 내가 그에게 흡수합병되는 것이 아니고, 상처입고 버림받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안전함을 몸소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후 조금씩 반응을 시작한다. 그 미미한 반응에 상대방도 화답한다. 그러면서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절벽 사이를 잇는 가늘지만 확실한 연결선이 생긴다.

............

 

한때 공감 받고 싶어서 미친 듯이 공감하려 노력했던 적이 있다. 아니 20대 대부분이 그런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공감을 넘어 성급한 동일시가 스스로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고 상처를 주고 했던 반복의 시간들.

 

공감을 하는 것도 공감을 받는 것도 어렵다.

최근 어떤 친구가 내 말에 쉬이 공감하는 것을 보고 난 멈칫했다. 너무 쉬워서 그 공감이 거짓 같았다. 그 친군 나의 감정을 알아내고 공감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 안되는 그 많은 디테일이 뭍혀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참 가볍게 느껴졌고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공감하는 것 만큼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는 것도 어렵다는 걸 알았다. 우리 사이엔 너무나 많은 장벽이 숨어 있어서 위의 말처럼 절실한 필요를 느껴야 겨우 겨우 그 장벽들 넘기가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섣불리 공감한다고 했다가는 내 앞의 절실한 필요로 이제 슬슬 문을 열러고 빼꼼이 고개를 빼는 이를 다시 자라목으로 만들뿐이다. 

 

그래서 공감의 전제조건이 있다.  동일시가 아닌 서로가 각자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동일시로 인한 강요된 반성은 공감이 아니다.

그대가 반짝이는 존재이듯, 나도 반짝이는 존재이다.

그대에겐 그대의 맥락이 있고, 나에겐 나의 맥락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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