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를 그대로 내버려둬

나의 화분 2011/06/07 02:30

6월 2일 새벽 6시에 팔당 두물머리에 공권력을 앞세운 포크레인이 밀고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공모한 국가기구와 건설자본은 막무가내로 토지 공탁을 걸어놓고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 위한 수순을 밟은 다음, 드디어 마지막 폭력 행사에 돌입한다는 소식이었다.

잠이 올리가 없었다.

두리반 일로 연일 몇 시간 못자면서 일을 하면서도 두물머리는 꼭 막아내고 싶었다.

사실 두리반과 두물머리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들 아닌가.

한국의 천박한 토건자본주의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치들을 깡그리 짓밟아버리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두리반과 두물머리는 잘 드러내고 있다.

 

나는 잠을 안자고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고 두물머리에 갔다.

공사 강행 예정 시각이 새벽 6시여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벽 7시 무렵에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나는 긴장을 했다.

2006년 5월 4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새벽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 약 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황새울 들판을 지키려고 했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그 전날 마을로 들어간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었다.

당신도 왔구나!

반가웠다!

그 반가움을 기억하는 나는,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을 꽉 매운 채 밤을 새며 그곳을 지키려던 반짝거리던 천 명 지킴이들의 눈동자들을 생생히 기억하는 나는, 여전히 긴장한 채 제발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두물머리로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날은 이미 밝아오고 시간은 이미 오전 7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자전거가 빨리 나가지 않았다.

매일매일 20km 정도의 단거리는 타고 다녔지만 장거리 라이딩이 오랜만이어였는지 쉽게 지치는 것 같았고, 또 시골의 오르막길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아직 내가 이 길에 자전거로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익숙하지 않아서 이리라, 고 생각했다.

 

두물머리 컨테이너로 들어서자 먼저 유영훈 팔당공대위 위원장이 길에 서서 공사 현장쪽에 사람들이 서서 막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손짓해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말이다.

서규섭, 최요왕, 봄눈별, 말랴, 잇 등 먼저 와있던 농민들과 친구들이 역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농민들과 신부님들, 활동가들이 공사차량 진입로에 모여 있었다.

우리는 공사차량이 들어올 경우 이를 저지할 것을 결의했다.
두물머리는 4대강 소송에서도 농민들이 2012년 말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승소한 곳이다.

포크레인이 들어와 30년간 유기농으로 건강해진 이곳의 생태계를 파헤치는 꼴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보드라운 흙과 그곳에서 자라는 수만가지 생명들을 함께 지켜내고 싶었다.

 

첫번째 공격에서 저들은 간을 보러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저항에 따라 저 포크레인 삽날의 공격을 늦출 수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힘이라도, 한 명의 정성이라도, 한 명의 열정이라도 더 모아내야 한다.

프레시안과 KBS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자들도 모였고, 이 정도면 공사 차량의 진입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도 속속 집결했다.

결국 얼마 후 분위기를 알아챈 저들이 공사차량 한 대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진입 자체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핑계를 대면서 김빼기 작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농민들은 성토했다.

며칠 내로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면서, 이에 속지 말고, 더욱 굳건히 이곳을 지키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대추리와 도두리 농민들의 질긴 자존심을 보았다.

이것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대지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고고한 존엄의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돈으로 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돈을 던져 주면서 먹고 떨어지라는 것은 오히려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황새울 농민들에게서 배웠고, 용산 철거민들에게서도 배웠고, 두리반의 유채림과 안종녀에게서도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제 두물머리 농민들이 같은 싸움을 시작하려고 한다.

고단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몇몇 농민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는 그런 싸움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두가 나서서 함께 짊어져야만 하는 싸움이다.

나는 두리반이 승리로 끝나면 다시 두물머리로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다.

 

두물머리는 흙도 좋고, 햇빛도 잘 들어서인지 일주일마다 가면 풀들이 엄청나게 자라나 있다.

이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곳은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공사차량들이 물러간 뒤 두물머리 유기농 텃밭을 둘러보았다.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닭과 개 소리, 딸기가 익어가는 소리, 파릇파릇 돋아나는 소리, 아이들 소리.. 온갖 소리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고마웠다.

아직 그대로 있어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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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02:30 2011/06/0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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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준호 2011/06/07 04:51 Modify/Delete Reply

    "수고하셨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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