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라, 자유를!

평화가 무엇이냐 2005/09/29 23:03
2005년 9월 30일 오전 10시 병역거부자로 지난 1년 3개월(원래 1년 6개월이지만 가석방됨)을 감옥에서 보낸 나동이 마침내 출소한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구치소에 가서 나동의 출소를 축하/환영해주려고 한다.
오늘 저녁에 길바닥평화행동을 마치고 아랫집에 돌아와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나동에게 보여줄 축하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는 '즐겨라, 자유를!'이라는 말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만큼 자유가 절실한 사람이 또 있을까?
출소하는 나동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쇠창살 너머로 보았던 나동을 이제 가까이 볼 수 있음에 나 역시 기쁘다.
 
여전히 이땅의 법과 제도는 총쏘는 기술을 배울 수 없다고, 전쟁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자신의 신념을 당당한 실천으로 옮기는 젊은이들을 내 주위에서 앗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그럼 국가의 명령을 받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 가는 것은 비양심이냐'고 반문하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나는 양심에 따른 결혼거부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것은 비양심이냐'고 나에게 반문할까?
나는 양심에 따라 채식을 실천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럼 고기를 먹으면 비양심적인 사람이란 말이냐'고 반문을 해올까?
나는 양심에 따라 비폭력 실천을 한다.
사람들은 그런 내게 '폭력시위는 비양심적이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양심에 따른 거부란 남의 꼬투리를 잡아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다른 종류의 양심에 따른 거부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병역이란 법으로 정한 의무이기 때문에 남들도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결혼이나 육식은 법으로 정한 의무가 아니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반론 말이다.
결혼이야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고, 육식 역시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지만 병역이란 하기 싫다고 해서 맘대로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반론 말이다.
 
이런 반론에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나는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만약 육식이 법에 의해 의무로 지정되어 있으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고기를 먹기 싫은데, 억지로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아마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만약 결혼이 법에 의해 의무로 지정되어 하기 싫은 결혼을 억지로 해야 한다면 어떨까?
결혼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절실히 갈망하게 되지 않을까.
 
이 자유는 결혼을 한 사람에게나 하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이 자유는 육식을 하는 사람에게나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중요하고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자유가 없다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는 것, 고기를 먹는 것이 나 자신의 깊은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해야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소한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자유를 즐긴다는 말의 참뜻은 지금 현재의 법과 제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의 제한된 자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 너머에 있는, 아직 오지 않은 자유를 절실히 갈망하고 이를 위해 실천한다는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다른 종류의 양심에 따른 거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세상은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지라도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는 세상이 아니겠냐고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세상에서라면 적어도 나의 자유가 침해되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이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이 있다고 해보자.
보행자가 건너가도 좋다는 녹색불이 켜졌다.
그런데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횡단보도는 텅 비어 있다.
저 앞에 정차해있던 차들이 보행자가 없는 틈을 타서 그 횡단보도를 그냥 통과해버리는 상황이다.
운전자들은 보행자가 없으니 그냥 통과해버리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그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졌다고 마음놓고 길을 건널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건널 때 나를 보지 못하는 운전자가 언제든 그곳을 통과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약간 멀리서 녹색불을 보고 급하게 달려와 건널목을 건너려고 할 때도 나는 불안해진다.
차들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면 건널목이라도 그냥 질주해버리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녹색불이 켜져 있는 건널목이라면 사람이 있든 없든 무조건 빨간불로 보행신호가 바뀌어 자동차들이 통과해도 좋다는 녹색신호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자동차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나의 불안감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사회란 녹색불이 켜졌을 때 언제든 길을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사회와도 같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녹색불이 켜졌을 때 비록 나는 길을 건너지 않지만 누구든 안심하고 길을 건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진정으로 자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건널목에는 병역거부권이라는 녹색불이 켜져 있지만 여전히 차들은 이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을 한다.
많은 차들은 이 신호를 녹색불로 인식을 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또한 이것을 무시해도 좋은 녹색불로 여기기도 한다.
 
녹색불이 켜져 있을 때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 없는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이 아니다.
내일, 감옥의 문을 열고 나동이 보다 자유로운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지만 그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고, 마음놓고 숨을 쉴 수 있는 자유가 아직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동처럼 진정으로 자유를 즐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다시 한번 내 맘속에 깊이 새긴다.
 
'즐겨라,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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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23:03 2005/09/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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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ksim 2005/09/30 11:51 Modify/Delete Reply

    저도 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갔다가 나동의 출소소식을 보고 너무 좋았어요. ^^

  2. shyxu 2005/10/05 13:05 Modify/Delete Reply

    저도 자유를 즐기고 싶어요.!

  3. 즈우 2005/10/05 13:15 Modify/Delete Reply

    이 글 왠지 다시 읽어도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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