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감수성들이 꽃피어나기를!

나의 화분 2005/09/30 02:06
레이님의 ['제대로' 보고/듣고/느낄 자유는?] 에 관련된 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 말고도 창작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는 레이의 말에 나는 두말 없이 동감합니다.
그리고 재능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잣대 역시 기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도 100% 동의해요.
 
오늘도 길바닥평화행동을 했어요.
저는 노래를 몇 곡 불렀죠.
매번 노래를 할 때마다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새로운 노래를 열심히 연습해갔어요.
메이데이가 부른 '동지에게'를 불렀죠.
 
그런데요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이 흩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모여 있던 사람들도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제 갈 길을 가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약간 심하게 말하자면 내가 노래 몇 곡을 부르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은 아는 사람들뿐이에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내 노래들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어요.
일단 내가 노래도 "잘" 부르는 것이 아니고, 기타를 듣기 좋게 "잘" 치는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아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맨날 대부분 내가 만든 '생경한' 노래만 부르니까 사람들이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출 리가 별로 없죠.
오늘 길바닥평화행동에서도 그랬어요.
비교를 해서 약간 그렇지만, 내가 노래할 때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가 천규씨가 노래를 할 때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거든요.
나는 생각해봤어요.
내가 노래를 함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을 내쫓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길바닥평화행동에 내가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내가 노래를 부르는 목적은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노래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 나간다면 그것 역시 유쾌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는 내게 뭐랄까 레이의 글은 약간 위안을 주네요.
 
내가 너무 나 자신만을 위해서 노래를 해온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됩니다.
노래를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것은 내게 아주 깊은 해방감을 가져다 주었어요.
나의 억압들을 노래를 통해 풀어내면서 스스로 많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요, 그렇게 즐거워하면서 문화적인 힘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측면에 너무 몰입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았어요.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레이가 아직 나의 노래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데에는 내가 너무 나에게만 향하고 있다는 점도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죠.
 
개개인들의 문화감수성들이 제각각의 색깔과 형태로 활짝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칠께요.
(피어나면 질 때도 있는 법이죠. 하지만 다시 또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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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30 02:06 2005/09/3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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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05/10/05 15:03 Modify/Delete Reply

    적어도 나의 경우, 돕의 노래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니까요. '천박한'(자본주의적) 취향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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