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가 고장났다

나의 화분 2005/10/11 23:10
집에서 쓰고 있는 보일러가 고장난 것 같다.
잔고장인지 아니면 아예 새것을 사야 하는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지금 불러서 고치느냐 아니면 고치지 않고 그냥 놔두느냐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보일러는 시공한 지 10년 약간 넘었을 뿐인데, 설마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그 보일러에서는 이제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난방도 되지 않는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나는 아예 보일러 없이 겨울을 지내볼까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감기라도 걸려서 앓아 눕게 되면, 냉골에 오히려 병만 깊어지지 않을까 지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난 9월치 도시가스비가 청구되었는데, 즐겁게도 1950원 정도가 나왔다.
9월엔 뭐 매일 찬물로 샤워하고, 그래서 별로 도시가스를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별로 요리를 해먹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그만큼 대충대충 먹고 살았으니 도시가스를 쓸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실은 대충 먹었다기 보다는 김치와 김, 콩자반과 연근 등 이미 만들어진 반찬을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집에서는 밥만 해서 먹었다.
가끔 라면도 끓여 먹었고.
 
일본 나가사키에 사는 토다 키요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환경과 평화를 아주 깊이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이 사람이 지난 2003년에 한국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날씨가 추운 날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집 보일러를 틀어놓고 지내는데 자신은 옷을 아주 두껍게 입고 보일러를 틀지 않고 견딘다고 한다.
빼빼마른 토다 키요시가 두꺼운 이불을 돌돌말고 좁은 자기 방에 앉아 소반 위에 책을 한 권 올려놓고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그 말을 듣고 '나도 다가오는 겨울 그렇게 간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맞이한 겨울들.
실제로 나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기 위해 보일러를 몇 번 틀었을 뿐이었다.
바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집안 온도는 대략 영상 12도 정도가 되었다.
영상 12도면 상당히 따뜻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가만히 방 안에 앉아서 숨을 쉬다보면 입에서 김이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창문틈 사이를 아무리 막아도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까지 나의 초저소비 의지를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바깥 기온이 영상이 되면 집안 온도는 약 15도 정도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나처럼 몸이 따뜻한 사람이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양말을 2겹 껴입고서 견딜만했다.
 
이번 겨울도 비슷할 것이다.
아마도, 난 고장난 보일러를 그냥 놔두고 올 겨울은 사상 초유로 에너지를 절약하며 살게 될 것 같다.
항상 내가 바래왔던 것처럼 2천원 이하로 가스비를 내면서 말이다.
 
두 가지 고민이 남는다.
먼저, 날씨가 아주 추워지면 방바닥이 얼어 터질 수가 있다.
그러면 수리비가 엄청나게 나올 텐데...
그리고 두번째, 목욕은 어떻게 하나?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물로?
모르겠다.
일단 요즘은 아직도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점점 더 날씨가 추워져 견디기 힘들게 되면 물을 가스렌지에 데운 다음 찬물과 적당히 섞어서 목욕을 하면 되지 않을까...
 
제발 아프지만 말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규칙적으로 식사를 해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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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1 23:10 2005/10/1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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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호 2005/10/12 09:22 Modify/Delete Reply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많아요. 그런데 어디가 아픈가요?

  2. 매닉 2005/10/12 09:42 Modify/Delete Reply

    근데 돕, 다른 건 다 괜찮을지 몰라도 방바닥이 얼어터지는게 제일 걱정이다. 겨울에 그런 사고 많이 나거든. 다다미방이나 구들방이면 모를가... 문득 흙집 짓는 걸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3. 동주 2005/10/12 10:40 Modify/Delete Reply

    오늘 한겨레신문에 약골씨 사진나왔어요. 근데 괄호안에 '별칭'이라고 나왔어요. 아랫글에서는 '본명'이라고 주장했는데. 기자에게 항의해야 되지 않을까요? ^^

  4. 동주 2005/10/12 10:41 Modify/Delete Reply

    서울에 살면 춥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나라에 놀러오는 건 어때요? ^^ 바람이 많이 불어서 걱정이지만..

  5. 스머프 2005/10/12 10:50 Modify/Delete Reply

    근데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보일러의 손을 조금 봐주는게 좋을듯 해요.. 님의 결정을 뭐라 할수는 없지만, 자칫하다가 병원비가 더 들수 있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전, 추운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타입~ (물론 더운것도 그렇지만..ㅋ)

  6. 뻐꾸기 2005/10/12 11:52 Modify/Delete Reply

    한 때 보일러에 물공급하는 걸 몰라서 2년동안 얼음처럼 차가운 집에서 산 적이 있었어요. 겨울엔 낮에도 손이 시려 글씨를 쓸 수 없었지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처음엔 정말 괴로왔는데 차차 익숙해지더군요. 그래도 한 겨울에 난방을 아주 안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아주 좋은 침낭같은 게 있다면 몰라도. 아예 안 쓸 것이 아니면 보일러는 고치는 게 좋겠어요. 셋집이면 집주인이 내는 거니 수리비 걱정은 안해도 될 듯(왠지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소리임)

  7. 돕헤드 2005/10/12 15:43 Modify/Delete Reply

    뻐꾸기/전세집에 살고 있는데요, 주인 하고는 2년에 한 번 말날까 말까 하는 정도라서 아예 연락이 되지 않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수리비는 제가 직접 내야 할 것 같네요.
    스머프/ 걱정 고마워요. 제가 생각보다 튼튼하거든요. 병원비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저도 걱정이에요. 그래서 다시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동주/ 제주도에서 돈 많이 안내도 살 집이 있으면 나도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요. 한겨레는 나도 방금 사서 봤는데, 기자에게 항의는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매닉/ 나도 그게 제일 걱정이야.
    지호/ 아픈 곳 없어요

  8. dakdoo 2005/10/12 17:32 Modify/Delete Reply

    서울에 올라와서 2년 간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았었습니다--한 평 반짜리..^^;
    담배 때문에 항상 창문을 열어 놓고 살았는데, 더운 물로 씻을 때보다 찬 물로 씻을 때가 적응이 더 잘 되더군요. 그리고 기온이 떨어지는데 보일러 수리를 미루실 거면 방바닥에 깔려있는 온수관의 물을 꼭 빼주시길 바랍니다.

  9. 돕헤드 2005/10/12 23:37 Modify/Delete Reply

    온수관의 물은 어떻게 빼는지 알려주세요!!

  10. loser 2005/10/13 14:08 Modify/Delete Reply

    http://blog.naver.com/moogum
    무검 형의 블로그. 자전거를 사랑하는 약골의 사진이 있음.

  11. dakdoo 2005/10/13 15:36 Modify/Delete Reply

    사시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 통 방바닥 구석에 있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건물 외벽에 엄지 손가락 만한 밸브가 있고 1원 짜리 동전만한 잠금 밸브를 풀면 누런 물이 흘러 나옵니다. 혹은 오래된 건물의 경우에는 건물 외벽에 수도꼭지로 부터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과 건물 주변을 잘 살피시면 밸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목욕할 때는 바가지를 사용하세요. 샤워기로 하다가는 근육통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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