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물통을 만들었다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5/10/09 16:12
드디어 뒷물통을 만들었다.
뒷물통이 뭐냐하면 밖에서 용변을 보고 나서 뒷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병이나 통을 말한다.
내가 정토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2001년 무렵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정토회는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캠페인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일회용 화장지를 쓰지 말고 뒷물을 하자'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지렁이를 활용해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집에서부터 이 둘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 내 화장실에서 나는 화장지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집에서야 볼일을 본 후에는 샤워기로 엉덩이를 닦고, 수건으로 닦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굳이 당시에 열풍이 불기 시작한 '비데' 같은 것을 구비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나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비싼 돈을 쳐발라가며 비데를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샤워기로 하고 수건을 닦으면 그런 것이 모두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휴지로 닦는 것이 아니라 샤워기 물줄기로 엉덩이를 닦아내기 때문에 위생상으로도 더 좋았고, 민감한 근육을 손상시키지 않고 적당히 자극을 주어서 엉덩이 건강에도 더욱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계속 집에서 샤워기로 똥꼬를 닦아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밖에서 일을 볼 때였다.
대부분의 화장실에서는 밖에서 일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휴지를 써야 한다.
미리 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들어가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어쩐지 불편할 것 같았다.
밖 화장실에서도 간편하게 뒷물을 할 수 있는 기구(?)가 난 절실히 필요했다.
 
어느날, '휴대용 비데'라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분무기 머리꼭지에 펌프몸통을 한 제품이었다.
몸통에 물을 채운 다음 똥꼬에 펌프질을 하면 마치 값비싼 비데 대가리에서 한 줄기 물이 발사되듯 가는 구멍이 뚫려있는 머리꼭지로 물이 세게 올라오도록 플라스틱 통을 개조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가격은 놀랍게도 만원이 훨씬 넘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난 저걸 살까 말까 무척 고민했었다.
저거 하나 있으면 두고두고 뒷물을 개운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밖이든 집안이든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갈등을 했다.
그러다가 그까짓거 하나에 만오천원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구입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냥 최대한 밖에서 똥을 누지 말고 참았다가 집에 와서 누자고 결심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변비가 별로 없었기에 약간 마려운 것을 참아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을 봐야 할 경우에는 그냥 휴지를 사용했다.
왜냐하면 그 휴대용 비데를 사지 않고서는 밖에서 시원한 뒷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방법이 있는지 조금만 더 절실하게 찾아보았더라면 의외로 쉽게 찾아 냈을지도 모른다.
그 다른 방법은 얼마전 우연히 초희의 블로그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다 쓴 케찹통이나 마요네즈통을 이용하면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무릎을 세게 탁 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냉장고 안에는 거의 다 먹은 케챱통과 예전에 먹다가 채식을 시작한 뒤로 거의 손도 대지 않은 마요네즈통이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약 400ml 정도 용량의 케찹통이나 마요네즈통에 물을 가득 채워가서 일을 본 다음 몸통을 눌러 그 구멍으로 물을 밀어내며 씻어내고, 물이 다 없어지면 빈 통을 짜내 그 바람으로 엉덩이를 말릴 수도 있다는 그 기막히도록 놀라운 아이디어!
무엇보다 나는 돈이 한 푼도 들지 않고 내가 갖고 있던 것, 버리는 것을 재활용 할 수 있다는 그 점이 맘에 들었다.
 
당장 빈 머스타드 소스 통을 물로 씻었다.
그런데 통 내부에 있는 잔여물질들이 잘 씻기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채워놓고 며칠을 기다렸다.
오늘 다시 그 통을 물로 깨끗이 씻었다.
이제 완성이다.
머스타드 소스 통은 거의 무게도 나가지 않아서 밖에 나갈 때 갖고 다니기도 편하다.
이제 나는 어디서든 편하게 뒷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그만 해방감을 오늘도 느낀다.
 
후기) 나는 엉덩이를 비롯해 온몸이 따뜻한 편이어서 찬물로 뒷물을 해도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몸이 차가운 친구는 찬물로 뒷물을 하면 엉덩이가 시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간편하게 뜨거운 물로 엉덩이 부분을 세척할 수 있는 비데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난 몸이 따뜻한 편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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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9 16:12 2005/10/0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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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3 : Comment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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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6/01/05 01:50 DELETE

    Subject: 이걸로 위안이 될 지...

    글들을 읽다가 웃겨 쓰러지는 줄 알았다. 링크된 글들은 필독하셈.
  2. Tracked from 2006/01/05 01:59 DELETE

    Subject: 그대들의 위안을 위하여

    글들을 읽다가 웃겨 쓰러지는 줄 알았다. 링크된 글들은 필독하셈. 썩은돼지님의
  3. Tracked from 2007/01/27 03:36 DELETE

    Subject: I DON'T CARE!

    채식주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에서 ‘인정받는 소수’로 변한 경험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죠.('
  1. 금자 2005/10/09 19:54 Modify/Delete Reply

    아아, 나는 몸이 엄청 차가운데 - -;;; 부러버유 ToT

  2. 뻐꾸기 2005/10/10 08:14 Modify/Delete Reply

    내가 찾던 그것^^......

  3. 매닉 2005/10/10 09:48 Modify/Delete Reply

    빈통을 짜내 그 바람으로 엉덩이를 말릴 수도 있다니! ㅋㅋㅋ

  4. 초흐l 2005/10/10 11:13 Modify/Delete Reply

    뒷물통을 잘 길들여 BoA요
    언니들이 넘는 산 악보 더 이쁘게 다시 그려서 내 블로그에 올려 놓았으니 가져가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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